영부인이 ‘대통령 부인’이라고?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12.11.23 13:5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일반명사 영부인 영애 영식에 대한 오해

사전을 본다. 영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언론인’들의 글 모음을 뒤져본다. ‘대통령 부인’의 뜻으로 쓰인 ‘영부인’이 무지 많다. 이 얘기는 오래 전부터 여러 사람들의 입에 널리 회자(膾炙)되어온 주제다. 영부인(令夫人)은 ‘대통령(大統領) 부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무지(無知)는 계속된다. 문맹(文盲)인가 싶은 또는 글의 뜻에 둔감(鈍感)한 어떤 이들의 글쓰기, 혹간 이런 이들의 생각과 글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무참(無慘)한 생각도 든다. ‘영부인’이라 쓰고는 ‘영(領)부인’ 즉 대통령 부인이라고 알아들으라는 것이다. 그 영부인은 사전에 없다. 그런데 독자 중에는 그렇게 오해할 이도 있을 터다.

대통령 부인도 존경을 받을만하면 ‘대통령 영부인’으로 불릴 수 있다. 필자도 친구인 서재기 씨에게 “요즘 귀하(貴下)의 영부인은 잘 계신가?”하고 그의 아내의 안부를 묻는다. 좀 과장된 어투지만, ‘어(御)부인’이라는 칭호를 쓸 때도 있다. 영부인은 일반명사다. 영(令)이나 어(御)는 경칭(敬稱)의 낱말이다. 존경을 표하는 착한 말이다.

휘(諱)라는 말이 있다. 휘자(諱字)라고도 쓰는 이 말은 ‘돌아간 (높은) 어른의 살았을 때의 이름’이다. 왕의 이름처럼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이름인 것이다. 숨기다, 두려워하다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높은 사람의 이름이나 행세(行世)는 내놓고 얘기하는 것이 두렵다. 자연히 꺼리고 싫어하는 이름이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 뜻은 휘지비지(諱之祕之)란 숙어로 오늘날에까지 전해진다. 사람이나 일이 두려워 콕 집어 말하지 않고 우물쭈물 얼버무려 넘기는 것, ‘흐지부지’가 바로 그 휘지비지다. ‘그 누구의 이름’은 부르기도 두려웠던 참담(慘憺)한 독재자(獨裁者)의 시대, 그 기억 다시 새롭다.

‘영부인’은 그 시절의 ‘두려운 주제’ 즉 諱 중 하나였다. 남의 딸을 높여 부르는 ‘영애(令愛)’라는 일반명사도 함부로 쓰면 안 되었다. 대통령 딸 즉 ‘영애(領愛)’로 그 뜻이 전이(轉移)되어 경호(警護)의 대상이 됐다. ‘남의 아들’을 부르는 영식(令息) 단어도 같은 처지였다.

그런 이름들을 제한 ‘나머지 인간’들은, 부끄럽게도 존엄(尊嚴)하지 못했다. 골방에서 고문을 당해 어떤 이들은 맞아 죽기도 했고, 스스로를 불살라 그 꽃이름들을 유전(遺傳)하기도 했다. 스스로 나서서 더러워진 이도 많았다. 말조심은 생존의 조건이었다. 이젠 적어도 인간의 존엄에 관한 한 ‘흐지부지’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인간은 잉여(剩餘)일 수 없는 것이다.

그 시대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은 여러 모양과 깊이의 생채기로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고참 기자의 눈에 비친 우리 일부 언론인들의 ‘영부인’이란 말에 관한 인식(認識) 역시 그 증후군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겨내야 할 숙제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다만 말의 뜻을 몰라, 둔감해서, 또는 이미 입에 익은 말이어서 무심코 그 말을 그렇게 쓰고 있다면 이 또한 더 큰 숙제다. ‘뜻과 말로 먹고사는’ 이들의 어휘(語彙) 곳간에 들어찬 내용물들이 그런 식의 초점 없고 흐리멍텅한 ‘소리’들에 불과하다면 참 세상은 흐지부지한 곳이 될 터다.

말은 뜻의 틀이다. 언어는 생각의 기반(基盤)이다. 말이 어긋나면 뜻은 굴레 속 즉 기반(羈絆)에 매인 채 헤매게 된다.

이런 지적에 침소봉대(針小棒大) 평지풍파(平地風波)라고 웃을 이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어떤 언어는 속뜻으로 더 절실(切實)하게 말한다. 영국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년)가 시 <순수(純粹)의 전조(前兆) Auguries of Innocence>에서 들려준 ‘한 알 모래알 속에서 세상을 본다’는 귓속말은 맵디매운 경고이자 통찰(洞察)이다.

토/막/새/김

아내의 호칭(呼稱)이나 높임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통령의 아내는 ‘대통령 부인’ ‘대통령 영부인’이다. 여사(女士)에 ‘님’을 붙인 여사님은 ‘영부인님’과 함께, 어색한 대로 다만 현장에선 실용적(?)인 것 같다. 영어의 퍼스트레이디와 같은, 따로 마련된 말은 없다. 광복(光復) 이후에야 비로소 대통령이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겠다.

왕의 아내는 왕비(王妃)였다. 귀부인(貴夫人) 영정(令正) 영규(令閨) 합부인(閤夫人) 영실(令室) 등이 영부인과 함께 다른 이 또는 상대방의 아내에 대한 한자말 경칭이다. 아주머님 사모님 등이 요즘 많이 쓰이는 말.


강상헌 시민의 자연(www.citinature.com) 발행인

강상헌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