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을 위해 소신과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조속히 폐지하라!”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되고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한다!” 전자는 전국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가 10월 15일 전국 시도대표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이고, 후자는 지난 7월 18일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가 당원 총투표를 앞두고 내놓은 입장이다.

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과 함께 대통령 공약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배제가 이미 위헌 판결을 받았음을 상기시켰다. 양자의 논쟁은 철길과도 같아 만나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들의 기득권과도 연결되어 있어 더 복잡한 문제다. 현장에서는 젊고 참신한 인물이 지방의회로 들어가려면 오히려 공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 문제는 좀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지방선거 정당공천 금지는 법 개정이 굳이 불필요하다는 점이다. 정당이 결정하면 언제라도 공천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공직선거법 제47조 제1항은 정당에 ‘선거에 있어 선거구별로 선거할 정수 범위 안에서 그 소속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조문으로만 보면 각 정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거구별로 소속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는 지방선거 정당공천 금지에 필요한 법 개정을 상대방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핑계를 대고 있다. 일방적으로 공천을 하지 않았을 때 다른 당이 정당 공천을 통해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지, 진짜 지방 정치의 개혁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제까지 지방정치의 내용을 중앙정부(국회를 포함)에서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지방의원 선출에서 정당이 공천을 할지 말지에 대해 각 지방의회에 조례로 결정하도록 맡겨 버리면 안 될까? 굳이 국회에서 정해 전국 지자체에 획일적으로 내리 먹여야 할까?

미국에 정치 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주마다 카운티마다 정말 다양한 제도가 병존한다고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동장에 해당하는 지위를 선거로 뽑는 곳도 있고, 상급기관에서 임명하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꼭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해당 지방의회에서 상황에 따라 결정해서 다양하게 하면 문제가 될까?

우리 사회에서 지방의 크고 작은 문제를 중앙정부에서 결정해 전국에 공통된 기준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년에도 주소 시스템을 변경했고, 좌측통행은 우측보행으로 바뀌었다. 각 시도별로 또는 시군구별로 자체적으로 결정해서 시행해도 별 문제가 없을 많은 일들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중앙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정하는 메커니즘을 고수하고 있다.

4대강 문제도 그렇고 뉴타운 개발도 그렇다. 한강은 경기도와 서울이, 낙동강은 경상남북도와 대구, 부산이 결정했다면 어땠을까? 각자 시도별 상황에 따라 환경을 강조하는 쪽, 개발을 강조하는 쪽이 경쟁을 하면 향후 서로를 벤치마킹하면서 좋은 쪽으로 수렴되지 않았을까?

중앙정부에서 결정하고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방식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국고에서 집행하는 많은 예산을 시도와 시군구로 넘겨주면 해결될 문제이다. 1960년대 전국적인 국토개발계획은 정부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이해가 된다. 허나, 이미 우리나라는 올림픽 같은 큰 행사도 여수나 대구, 평창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 마련되었다.

해당 지역에서 정당공천이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각자 지역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의원들이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은 아무튼 해당 지역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한다. 많은 분들이 쉽게 ‘토호’나 ‘유지’ 같은 말을 써가며 비난하지만 지역에는 많이 배운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발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결정하면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 결정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역의 시민단체와 이익단체, 해당 지역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주민 일반의 이익에 더 유리하게 결정하도록 사회적 소통이 일어나야 하는 문제다.

아직 민의 역량이 그렇게까지 안 되는 곳은 어떻게 하냐고? 설혹 역량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중앙정부가 나서서 대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해당 지역의 민간 역량이 성장하도록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자치는 자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권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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