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서 연꽃을 만나다

[국도를따라 5]- 왕피천 굴구지마을에서 남효선l승인2007.09.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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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외길은 첩첩산길...

강이 내려다보이는 외길은 첩첩 산길입니다. 산중으로 들어가는 길이 대개 그렇듯 굴구지 마을로 들어가는 길 또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입니다.

남효선
울진 왕피천 유역은 전국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 보전지역입니다. 지난 2005년 지정된 이후 사람들 발길이 막히자 이곳에는 수달, 산양, 꼬리치레도룡농 등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고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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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자락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자리한 저수지는 부레옥잠이 되살아 나면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며칠 전 가을장마로 왕피천은 몸집 가득 물을 싣고 흐르고 있습니다. 왕피천(王避川)은 울진군 온정면과 영양군 수비면에 걸쳐있는 금장산(金藏山, 849m) 중턱의 자그만 샘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8.5㎞의 강입니다. 왕피천은 영양군 수비면 일대를 흐르는 장수포천(長水浦川)과 통고산 남쪽을 끼고 흐르는 신암천(新巖川)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흐르다, 선유산(仙遊山) 서편에서 매화천과 합하여 성류굴 앞에서 불영계곡을 쉼없이 달려 온 광천(光川, 빛내)과 어우러져 동해로 흘러들지요. 왕피천 유역은 울진사람들에게는 젖줄로 여겨지는 소중한, 우리나라에서 몇 남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때문에 정부는 지난 2005년 왕피천 유역 102.84㎢를 생태· 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습니다.

이는 환경부가 전국에 걸쳐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 10개소 전체면적의 50%를 차지하는 광활한 규모입니다.

울진 왕피천은 전국 최대 생태보전지역
사람발길 닫자 수달 · 산양 · 꼬리치레도룡농 되살아나

당시 왕피천 유역 생태 · 경관지역 지정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 지지체는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물론 생태경관지역 지정에 따른 사유권침해, 생활불편 등이 이유였지요. 그러나 이같은 마찰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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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왕피천 유역 보전을 오히려 반기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생태보전지역 지정 당시 이 곳에는 온천개발과 댐 건설계획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울진 군민들은 온천개발과 댐 건설로 자연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은 셈이지요.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왕피천은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이 전체 면적의 95%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우수한 식생과 빼어난 경관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최근 환경부는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에 대한 원활한 보전.관리를 위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관리방안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왕피천 유역 자연생태계의 자원 목록화와 관리인력체계 등 자연자산 보전관리체계와 보전 지역 내의 마을과 폐광처리 등 기반시설 확충, 그리고 생태탐방로, 생태학교 조성 등 생태자원을 이용한 지속가능개발 방안이 그것입니다.

이제 주민들은 자연자원을 보전하고 이를 관리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지요. 비로소자연자원이 파괴와 훼손의 대상에서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으로 그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는 셈이지요.

굴구지마을은 생태.경관보전지역 초입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왕피천을 이마에 끼고 마을 앞에는 다락논이 층층으로 발달돼 있고, 30여호의 가구가 산기슭을 등지고 이마를 맞대고 있는 아름다운 산촌이지요. 층층 논과 마을 사이에는 굴구지마을과 함께 살아 온 성황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마을지킴목이지요.

굴구지 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10리 쯤 오르면 ‘오르마’ 마을에 닿습니다. 본래 4가구가 살았으나 한 가구만 남기고 모두 대처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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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마 마을에는 본래 4가구가 화전을 일구며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이들이 사용하던 샘우물만이 사람살이의 흔적을 껴안고 남아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남아있는 ‘샘우물’만이 사람살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면서 우물 곁에 사발 하나를 남겨두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갈증을 덜어주기위한 배려이지요.

오르마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지킴이 성황목 소임을 맡고 있는 노인 한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이곳으로 들어와 왕피천과 함께 생활하는, 왕피천 지킴이 김태범(78)할아버지입니다. 년령은 할아버지이지만 지금도 산중을 집 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정정한 분입니다. 김태범할아버지는 생태보전지역 지정에 대해 “정말 잘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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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왕피천 오르마 마을로 들어와 왕피천 지킴이로 생활하는 김태범 할아버지

왕피천 지킴이 김태범 할아버지, “생태보전지역 지정 정말 잘했다”

“나도 처음에는 반대했지요. 지정이 되면 집 한칸도 맘대로 못짓고...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하니 정말 잘한 일입니다. 그때 지정이 되지 않았으면 이제 이런 곳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냥꾼에, 등산객에, 고기잡이꾼에... 숱한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지정된 이후에는 싹없어졌습니다. 사람발길이 없어지자 수달이니, 산양이니, 사향노루가 맘 놓고 뛰노는 천국이 되었습니다. 물속에는 꼬리치레도룡농, 한둑중개 같은 멸종위기종이 다시 생겨났지요.”

김태범할아버지는 관리체계에 대해서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올 해의 경우에, 울진지역에서는 통행을 철저하게 차단했으나 왕피천 상류에 위치한 영양군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넘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상류 쪽이 관리되지 않으면 아래쪽에서 아무리 단도리해도 헛것입니다”

보전지역이 두 개의 지자체에 걸쳐있어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김 할아버지는 최근 집 앞에 있는 묵은 논을 파서 자그마한 저수지로 만들었습니다. 작은 규모의 저수지를 울진지방에서는 ‘포강’이라 부릅니다. 이곳에 할아버지는 붕어, 잉어, 뱀장어를 방류하고 사료 대신 산 민물새우를 함께 방류했다 합니다. 민물새우는, 사람으로 치면 손자까지 낳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테면 먹이사슬을 만들어준 셈이지요.

마침 김태범 할아버지가 만든 포강에는 흰 연꽃이 햇살을 잔뜩 머금고 피어났습니다. 산중에서 문득 진리를 만나듯, 머리 속이 환해졌습니다.

남효선
산중에서 가을 볕을 가득 머금고 피어난 흰 연꽃을 만났습니다. 진리를 만나듯 머리 속이 맑아졌습니다.

또 할아버지는 고향마을인 바닷가를 떠난 산중생활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마당 한켠에 붉은 해당화를 심었습니다. 해당화는 본래 갯가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그럼에도 용케 산중에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달았습니다. 해당화 곁에는 200년 남짓된 배롱나무 한 그루가 오랜 연륜을 과시하며 붉은 꽃을 가득 피워올렸습니다.

김태범 할아버지는 겨울에 꼭 한번 들리라고 당부했습니다. 왕피천 자락을 품고 있는 설경이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울진 근남면 굴구지 오르마 마을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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