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해림 한정선의 금수회의록 해림l승인2013.10.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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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들썩거렸다. 숲의 보물을 빼돌린 자가 보물 지킴이인 하이에나였기 때문이었다.
보물지킴이인 하이에나는 뻔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명에 따라 보물을 다른 곳으로 옮겼을 따름입니다.”

동물들 앞에 불려나온 하이에나는 퉁명스런 한 마디 뿐, 명령을 받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보물은 천재지변 시를 대비해 동물들이 모아온 비상식량이었다. 숲의 공동재산인 그것을 함부로 손대거나 조금이라도 축내는 자는 엄벌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숲의 수장인 여우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동물들이 여우의 굴을 에워쌌다.

여우가 머리에 바윗돌을 얹은 것 같은 엄숙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여우는 보물을 숲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 다짐한 다음, 말미에 뚱딴지같은 극비사항을 털어놓았다. 그것은 전 수장들의 정상회담 내용 중 한 토막이었다.
“물소가 숲의 경계지대를 북의 수장한테 넘겨주겠다고 했었답니다.”

여우의 말이 동물들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묵은 원한들을 깨웠다.
단번에 편이 갈린 동물들은 보물을 까맣게 잊고 ‘물소 놈의 뼈를 파서 북 숲으로 보내라’, ‘거룩한 물소의 혼백을 더럽히지 마라’는 둥, 서로 말 탑을 쌓았고, 어떤 무리는 숲의 도둑떼한테 자신들의 토굴도 털릴지 모른다고 웅얼거렸다.

그 해 여름, 숲은 태풍과 함께 온 물난리를 겪었다. 낮은 지역의 굴들이 무너져 많은 동물들이 다치고 물에 쓸려가 죽었다.

보물 장소를 공개하고 비상식량을 나눠달라는 목소리가 더욱 거셌다.

이번에는, 여우가 난데없이 자신의 수하를 광장에 세우고 죄를 물었다.

곧 동물들은 뼈다귀 한 개를 두고 으르렁거리는 들개 떼처럼 그 죄질과 중량을 따지느라 옥신각신했다. 그 사이, 보물은 까치발을 하고 모두가 뻔히 아는 곳을 옮겨 다니다 정글의 어느 지하로 꼼꼼 숨었다.

여우와 하이에나는 혀를 물고 엎드린 동물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해림 한정선

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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