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시인 호메로스의 트로이

철학여행까페[5] 이동희l승인2007.10.0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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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트로이 성벽

지난번에는 밀레토스, 에페소스, 사모스, 콜로폰 등 고대 도시 출신의 철학자들을 소개했다. 이 고대 도시들이 속한 지역을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오니아 지역이라 불렀다. 이오니아지역에서는 왜 이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출현한 것일까?

중계무역 황금기의 이오니아

철학자들이 이렇게 출현한 까닭은 기원전 6~8세기에 중계 무역 및 해운업으로 황금기를 맞은 이오니아 지역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오니아 지역의 문화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곳에는 그리스인들의 정신적 원조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가 있다. 이오니아 지역은 일찍이 호메로스가 활동했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상당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오니아 지역을 떠나기 전에, 비록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리스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서양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호메로스와 그가 노래한 트로이 지역을 소개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한 플라톤 조차도 자신이 쓴 ‘국가’에서 호메로스야말로 “가장 시인다운 시인이며, 비극 작가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야말로 그리스인의 교육자라고 부른다. 그리스인들의 정신을 항상 한데 묶어 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 것은 그리스어를 빼고는 순전히 호메로스 덕택이었다. 영국의 고전학자 키토가 말한 것처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인의 바이블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 호메로스의 작품을 전거로 해서 교육을 받았고, 예술가와 사상가들도 호메로스에게 의지했다. 플라톤이 당시의 이해에 따라 호메로스를 “헬라스의 교육자”로 소개했듯이 호메로스는 그리스 정신의 교육자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호메로스를 알아야 한다. 호메로스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의 저술가들은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그가 기원전 770년경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본다. 호메로스가 태어난 지역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오늘날 스미르나 지역에서 태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우세하다. 스미르나 지역은 지금 터키의 이즈미르 지역이다. 이곳은 에페소스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이즈미르는 터키에서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뒤를 잇는 커다란 항구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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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트로이 목마
고대 그리스의 정신 역할


호메로스는 이오니아의 궁정을 돌아다니며 예부터 그곳에 전해 내려오던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야기들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고 한다. 그가 노래한 트로이는 이즈미르에서 이스탄불 쪽으로 버스로 6시간 정도면 가는 거리에 있다. 이스탄불 쪽에서는 마르마라해를 옆에 끼고 서쪽으로 5시간 정도 내려가면 좁은 해협이 나타나는데, 그곳을 건너 15킬로미터를 더 가면 트로이 유적지가 있다.

트로이 지역을 최초로 발굴한 사람은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라는 독일 상인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모두가 신화라고 믿었던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실제적인 역사이야기라고 믿었다. 그는 상인으로 평생 쓰고 남을만한 돈을 번 다음에 어릴 적 꿈인 트로이 발굴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은 끝에 트로이의 성문으로 추정되는 것을 발굴해 냈다. 이 성문은 트로이 성이 함락된 후 대화재로 소실됐을 때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슐리만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 고대 신화의 세계를 보면서 그 동안의 어려웠던 발굴 작업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그는 흥분해서 이렇게 외쳤다.

“이 신성하고 숭고한 기념물은 그리스 민족의 영웅적인 영예를 말해 주리라. 이는 앞으로 오랫동안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항해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왕성한 지식욕을 지닌 미래 젊은이들의 순례지가 될 것이다. 학문 전반, 특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학을 향한 끝없는 감격의 원천이 되기를!”

그러나 슐리만이 발굴한 이 성채는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도시였다. 트로이 지역에는 아홉 번에 걸쳐 도시가 건설되었다가 파괴되었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도시는 제6도시(기원전 1800~1300)로 추정된다. 이때 슐리만이 발굴한 것은 제2도시(기원전 2600~2450)였다.

트로이는 로마 시대 도시인 제9도시부터 선사 시대인 제1도시(기원전 2920~2450)까지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슐리만은 발굴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겹겹이 쌓인 유적층을 성급하게 파헤쳐 내려가 오늘날까지 트로이의 다른 유적층을 발굴하는 데 애를 먹게 만들어 버렸다.

슐리만은 트로이 발굴을 중단하기 전날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보물을 발견했다. 그는 인부들을 쉬게 하고 아내와 더불어 보물을 옷에 감추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로 가져갔다가 나중에 베를린 박물관에 기증을 했다. 이때 슐리만이 발굴한 많은 보물들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거의 사라져 버렸다가 현재는 모스크바 박물관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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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성 상상도

슐리만 덕분에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순전히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기초한 서사시라는 것이 밝혀졌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호메로스의 노래 속에 담긴 중요한 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면 호메로스는 신화적 사고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신의 위치를 완전히 지상으로 끌어내린 사람이었고 전승된 신화로부터 벗어나 신에 대한 사고를 자유롭게 했던 인물이다.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신들의 발언이나 행태는 더 이상 거룩한 종교적 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일리아스’에서 묘사한 신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제우스와 헤라를 보라. 남몰래 바람을 피우다가 부인인 헤라에게 들통 나서 체면을 구기고 바가지를 긁히는 제우스의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이지 않은가. 크세노파네스가 호메로스의 신관에 대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처럼, 호메로스는 그리스 신들에게서 마법적 성격을 걷어내고 지극히 인간적인 “합리적” 생각을 이식해 놓았다. 호메로스는 또한 자연과 세계에는 정해 진 규칙과 법칙이 있어 신도 맘대로 할 수 없고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인간과 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는 정해진 법칙이자 운명인 모이라(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3명의 여신을 일컫는 이름)가 있다. 호메로스에게서 자연과 세계는 신이 주사위처럼 갖고 놀 수 있는 기구가 아니라 신과 분리되어 이미 법칙적으로 정돈된 어떤 것이며, 신도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만물의 근원에 대한 합리적 물음

호메로스의 생각은 만물의 생성과 원인을 신에게로 돌리지 않고 오케아노스 혹은 스틱스라는 강물에서 찾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그는 오케아노스가 신들의 근원이라고까지 주장하며, 오케아노스를 신이 아니라 신의 요소인 물로 본다. 이것은 서양 철학이 시작되는, “만물의 아르케는 물이다”라는 탈레스의 생각을 앞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호메로스가 주로 활동하던 지역인 이오니아에서 만물의 근원에 대해 합리적 물음을 제기했던 철학자들이 등장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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