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하는 염소

한정선의 금수회의록 한정선l승인2015.06.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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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림한정선

바람에 콩밭이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아비염소가 걸음을 멈추고 콩잎을 따먹었다.

 “밭주인이 알면 어떻게 해요?”

새끼염소가 물었다.

 “몇 잎만 살짝 맛을 본 것이다.”

아비염소의 대답에 새끼염소가 새순과 넝쿨손을 끊어먹었다.

아비염소는 논귀에서 어린 벼를 맛보았고, 새끼염소도 따라서 어린 벼를 뜯어먹었다. 벼가 한 이랑쯤 이발한 것 모양 뜯겼다.

새끼염소는 긴 턱수염과 퉁퉁한 뿔을 가진 어른염소로 자랐다.

염소는 꼴을 뜯고 와도 저녁이면 간간이 까치발을 하고 말구유의 건초를 슬쩍 끌어내려 먹곤 했다. 어느 저녁, 말이 발굽으로 선을 긋고는 앞으로는 더 이상 자기 것을 먹어선 안 된다고 일렀다.

어느 이른 새벽에 염소는 말구유로 다가가 건초를 한 입 맛보았다. 입 속에 퍼지는 마른 풀 향이 미치게 좋아서 또 한 입, 씹을수록 달아서 또다시 한 입, 조금 더 먹어도 말이 모를 거라고 한 입, 그렇게 한 입 씩 끌어내려 먹다보니 구유가 텅 비었다.

말이 잠을 깼을 때, 염소는 바닥에 떨어진 건초를 발굽으로 흩었다.

“넌 뿔과 수염만 자랐구나.“

말이 염소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마구간 밖으로 밀어냈다.

“원래 맛보기도 하잖아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정강이가 부러진 염소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억울해했다.

한정선  helims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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