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일본을 말하다

美주도 MD, 日평화헌법 무력화시키는 ‘트로이의 목마’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l승인2015.08.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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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도쿄 촛불행동 10주년

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과의 관계를 살펴보기에 앞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개념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전체제의 대칭적 개념이라고 할 때, 크게 네 가지의 요소를 생각해볼 수 있다.

▲ 지난 2009년 8월 7일 도쿄에서 열린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에 어둠을 -한중일 안티야스쿠니 촛불행동(이하 촛불행동)” 행사 모습.

한반도 평화체제란 무엇인가?

첫째,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 즉 정전 상황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고 주요 교전 당사자들과 현재 군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상호 불가침을 약속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평화협정 체결을 의미하는데, 평화협정의 체결은 평화체제의 법적인 요소이자 가장 상징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협의의 평화체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둘째는 한반도 교차 승인의 완성이다. 이미 한국과 일본은 중국 및 소련(러시아)과 국교를 수립한 상황이다. 이에 반해 북미, 북일 수교는 계속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는 남북한 사이의 대결형 법․제도의 청산으로, 남측의 국가보안법 및 헌법의 영토 조항과 북한의 노동당 규약의 개폐 등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군축도 대단히 중요하다.

개념적으로 볼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평화체제는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개념이지, 분단체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 국제관계에서도 중대한 전략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선’인 38선은 ‘동북아 세력균형선’으로도 작용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향후 미일동맹 대 중러협력체제 사이의 전략적 갈등이 본격화되면 38선은 동북아 세력균형선으로 고착화될 우려가 있고, 이는 한반도 차원에서 분단이 고착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동북아에서 미일동맹과 중러협력관계 사이의 전략적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변 4강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화될 경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남북한 사이의 구심력이 강해질수록 주변 4강이 잡아당기는 원심력도 함께 수반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한반도 정전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무력화의 상관 관계는?

한반도 문제와 일본의 관계를 분석하기에 앞서, 두 지역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한 한반도와 태평양 최북단의 섬나라 일본은 지리적으로 대단히 가깝다.

이러한 ‘지리적인 인접성’은 1592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지정학적인 악연’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앞세워 조선을 침공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민감성이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이 시기부터 일본이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추구하면서 한반도를 대륙 점령으로 가는 가교로 삼으려고 할수록, 중국 등 대륙세력이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삼고자 하는 요구도 강해졌다. 에도 막부가 쇄국정책을 추구하면서 이러한 지정학적 쟁탈전은 주춤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조선이 러시아나 청나라와 손을 잡고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간혹 떠돌기도 했다. 한반도가 대륙 세력의 영향권으로 넘어가면 일본을 향해 뻗친 ‘대륙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 시기에 싹트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기에 접어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쟁탈전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됐다. 일본은 팽창주의 야욕을 다시금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패자(覇者)였던 청나라는 빠르게 쇠락했다.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유라시아의 동부로의 진출을 본격 타진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열강도 아시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쟁탈전은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미일간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거쳐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맞물리면서 전화(戰火)가 유라시아 전역을 집어 삼켰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는 미국 주도로 짜였다. 일본을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할 방파제로 인식한 미국은 그 완충지대를 한반도에 만들었다. 한반도가 광복과 함께 분단을 맞이한 핵심적인 이유이다.

▲ 2015년 8월 8일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공산 진영의 오판과 연결되고 말았다. 북한-중국-소련의 ‘북방’ 삼각동맹과 한미일 ‘남방’ 삼각동맹이 구축되면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불리해질 것이라고 여겨 한국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3년 넘게 이어진 한국전쟁은 결국 ‘종전’이 아니라 ‘휴전’으로 끝나고 말았고, 그 휴전선은 남북한의 분단선이자 동북아의 세력균형선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뿌리내린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비정상적 관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아니 21세기 들어 더 위험한 상황을 잉태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의 노태우 정부와 21세기 초엽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반도 탈냉전과 평화를 향한 여정은 그 빛을 보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다.

1990년대 초, 2002-2004년, 그리고 2014년 세 차례에 걸친 북일관계 개선 시도도 일단 무산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대북 관계 시도가 좌절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미국의 태도가 결정적인 사유로 작용했다.

그러나 정전체제로 대표되는 한반도 현상 유지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안락한 소파’처럼 여기려 하지만, 기술적으로 핵보유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북한은 ‘못 살겠다. 바꿔보자’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러한 목표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 사이에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동상이몽도 커지고 있고, 일본은 북한 위협과 한반도의 불안정을 이유로 평화헌법을 하나 둘씩 무력화하려고 한다.

한미일이 군사적으로 결속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러관계도 준동맹관계로까지 강화되고 있다는 점 역시 대단히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대단히 특기할 만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일본-미국은 ‘단일전장권’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하려고 해왔다. 단일전장권이란 한반도 유사시 한국은 물론이고,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 기지가 존재하는 일본, 그리고 괌과 하와이, 더 나가 미국 본토도 북한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맞서 한미일 세 나라가 군사적으로 결속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논리이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강해지면서 미국의 단일전장권 논리는 현실적인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삼아 한미일 삼각동맹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일본 평화헌법 체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일본의 평화헌법이 북한위협론을 이유로 점차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간의 집단적 자위권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 논의는 ‘정보 공유’ 단계에서 시작됐다. 즉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그 정보를 일본이 미국에게 신속하게 전달해달라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일본의 요격 단계’이다. 북한 미사일이 미국 영토로 향할 경우 일본이 중간에서 요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적 기지 공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한미, 미일로 이원화된 MD 작전을 3자 통합으로 가려고 한다. 작년 12월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미국 주도의 MD가 일본의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 일본 평화헌법과 한반도 정전체제

일본의 평화헌법은 ‘군사력 보유 금지’와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교전권 불인정’을 두 축으로 한다. 이 평화헌법 자체가 ‘적극적 평화주의’이다. 이러한 평화헌법은 일본의 번영과 아시아의 평화에 크게 이바지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베 신조 정권은 같은 이름으로 평화헌법 자체를 무력화하려고 한다.

일본 국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어지자, ‘해석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평화헌법의 밑돌을 하나 둘씩 빼내고 있다. 이건 <뉴욕타임즈>의 지적처럼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동북아 평화를 가능케 했던 기둥 하나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평화헌법의 무력화는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어,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평화체제 구축을 더욱 어렵게 할 소지가 크다.

동북아에서 불안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한미동맹과 북한이 ‘한반도판 상호확증파괴’를 야기할 정도로 군사력을 축적하고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상호간에 억제가 작동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전체제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이걸 평화적으로 현상 변경, 즉 평화체제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반도는 정전과 평화의 사이가 아니라 정전과 열전의 사이에 놓이게 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한반도 평화체제가 멀어지고 정전체제의 불안이 가중되면, 한반도 유사시 대비를 이유로 일본의 평화헌법 무력화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렇듯 일본 평화헌법과 한반도 문제는 길항 관계에 있다. 하여 지켜야 할 것은 일본의 평화헌법이지, 한반도 정전체제가 아니다. 거꾸로 바꿔야 할 것은 한반도 정전체제이지, 일본의 평화헌법이 아니다.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인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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