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헌 종부에게 조선의 숨결 듣다

국도를따라 8- 사동마을에서 남효선l승인2007.10.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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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영남사림의 배태지, 해월헌

울진 기성면 사동마을은 바닷가에 맞닿아 있는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해촌마을인셈이지요. 학자들은 반농반어의 마을을 해촌으로, 어업만으로 살아가는 마을을 어촌으로 구분합니다. 울진연안, 동해의 연안마을은 이 구분에 다르면 대부분이 해촌마을인 셈입니다.

사동마을은 울진지방은 물론 이른바 전통 반촌(班村)으로 여겨지는 안동이나 봉화 등지에서도 알려질만큼 이름이 나 있는 곳입니다.

해월헌(海月軒)과 이 고가의 주인이었던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선생 때문입니다. 해월 황여일 선생은 조선조 선조 때의 이름난 문장가이자 유학자이며 대시인입니다. 흔히 국문학계에서 조선조의 3대 시인으로 白湖 임제, 오산(五山) 차천로, 해월 황여일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중 오산 차천로와 해월 황여일은 외교문서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남효선
울진지방의 영남사림의 산실인 해월헌. 해월헌의 편액은 조선조 선조 대의 정치가이자 대 문인인 아계 이산해선생이 기성 황보마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쓴 친필이다.

해월헌은 황여일 선생의 별구(別購)입니다. 당초에는 사동마을 마악산 기슭에 있었으나 해월 선생 사후에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습니다. 해월헌은 정면4칸, 측면3칸의 팔작기와집으로 전면에는 누마루처럼 생긴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둘렀습니다. 1985년도에 문화재자료로 지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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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헌의 안주인인 종부는 올해로 아흔일곱의 나이를 드셧습니다. 종부의 자세에서 넉넉한 조선의 어머니와 엄격한 선비 가의 품세가 고스란히 묻어나옵니다.


해월헌이 눈길을 끄는 것은 건축물의 단아함에도 있지만, 당호인 해월헌 액편과 툇마루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시 편액(詩 篇額) 때문입니다. 해월헌의 당호는 아계(鵝溪) 이산해 선생의 친필입니다. 아계 이산해 선생은 조선조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인입니다. 문장이 매우 빼어나 ‘문장 8가(文章八家)’로 일컬어졌습니다. 해월헌의 편액과 건립 기문은 아계선생이 당파에 휩싸여 기성면 황보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썼습니다.

해월헌을 떠받치고 있는 또 다른기운은, 이곳이 울진지방에서 유일하게영남사림학파의 학맥과 정신을 배태한산실이라는 점입니다. 이 곳 해월헌과 해월헌의 주인인 황여일 선생을 모시는 명계서원을 중심으로 퇴계 이황을 깃점으로 하는 영남사림의선비정신이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월헌에는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의 시를 비롯, 오산 차천로, 백호 임제, 약포 정탁, 백사 이항복, 상촌 신흠 선생 등 당대의 내노라는 문인들의 시편이 오랜 역사의 부침을 간직한 채 빼곡하게 걸려있습니다. 이 중 차천로와 신흠, 이항복은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낯익은 이름이어서 또 다른 감회를 자아내줍니다.

해월헌을 이루고 있는 황여일 선생의 종택은 동해 연안지방의 옛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ㅁ자 형’ 와가입니다. 흔히 이같은 구조의 와가를 ‘뜰집’이라고 부릅니다. 전통사회에서 반가(班家)의 건축구조는 남성공간과 여성공간으로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흔히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해월헌도 이같은 전통양식의 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해월헌은 7칸 규모의 ㅁ 자형 정침과 별구인 해월헌 그리고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침은 중문을 중심으로 서편에 사랑채와 동편에 안방을 배치했습니다. 또 안방과 사랑방 사이에 대청마루를 놓았으며 중문으로 나가는 안마당에 ‘우물’을 배치했습니다.

집안에 우물을 배치한 것이 사뭇 눈길을 끕니다. 대개 일반민가에서는 마을 공동우물을 사용했음에 비해 감히 엄두도 못 낼 건축구조인 셈입니다.

옛것에 대한 관심이 천박한 상술과 부의 가치로 전락한지 오래여서, 이곳 해월헌도 수 차례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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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 오랫동안 공직에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와 쇠락하는 고가를 지키고 있는 종손 황의석 할아버지는 “몇 차례 도둑이 들어 도저히 해월 할아버지의 유품을 관리할 수 없어 2004년도에 안동에 자리한 국학진흥원에 모든 유품을 기증했다”며 흉흉한 세상의 인심을 전했습니다.

종손인 황의석 할아버지는 올해 아흔 일곱 세 드신 노모를 모시고 고가를 건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침 100세에 가까운 노 종부는 가을볕이 뜰 안 가득 내려 쪼이는 대청마루에 앉아 텃밭에서 손수 거둔 고춧가루를 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3년이 모자라는 100세의 노구임에도 앉아 있는 기품에서 반가의 절도와 예절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습니다. 오랜 시간의 흐름에도 한줌 흐트러짐이 없는, 넉넉하면서 단호한 품세였습니다. 울진 기성 사동마을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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