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일랜드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19] 정창수l승인2007.10.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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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들이 있다면 단연 아일랜드인들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격정적인 기질이 비슷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반면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기 민족이 가장 순수하며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맹목적 애국심을 가졌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역사가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매우 닮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일랜드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옆에 있었고.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한국과 같이 수난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래서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

기가 막힌 사실은 일본인들이 “한국은 우리의 아일랜드”라고 하면서 영국의 식민정책을 모방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했다는 것이다. 토지수탈이나 언어말살 등이 학습의 효과이다. 이러니 더 닮게 된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유럽연합(EU) 국가 중 민족적 자부심이 가장 강한 나라는 단연 아일랜드라고 한다. 이런 나라를 7백년이나 지배했으니 그들의 상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을 증오한다. 이런 증오는 단순히 식민지였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감자대기근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먹고 있었다. 17세기부터 영국은 가톨릭 신도의 토지소유를 금지했다. 따라서 대부분 가톨릭 신도인 아일랜드인들은 대부분 소작농이 되어 소출이 많은 감자를 재배할 수밖에 없었고, 주식이 되었다.

단일농작물을 재배할 경우 피해가 발생하면 가공할 상황이 발생한다. 그 결과 일찍이 없었던 흉년이 일어난다. 1846년부터 5년간의 대기근이 끝나자 850만 인구는 660만으로 감소했다. 대부분은 굶어 죽었다.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비극이었다. 최근 200년 만에 인구가 다시 400만에 도달할 정도이니 피해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멜더스의 인구론에 입각해서 과잉인구 감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수백만톤의 식량이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영국인 지주들에게 식량은 상품일 뿐이었다.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식량을 빼앗아 가니 당연히 아일랜드인들은 분노했고, 수많은 봉기가 일어난다. 영국은 잔인하게 진압했지만 1922년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다.

하지만 이 독립은 인구의 60%가 신교도인 북부를 뺀 불안전한 독립이었다. 마침내 1969년에는 폭동이 발생하고 IRA(에이레공화국군)가 조직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3천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기나긴 전쟁이 계속되었다.

최근 북아일랜드는 점차 평화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 영국보다 잘 살게된 남쪽 아일랜드사람들은 북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것마저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정창수 역사기고가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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