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페도클레스의 고향 아그리젠토

철학여행까페[9]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l승인2007.10.2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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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엠페도클레스가 몸을 던진 아이트나 화산
그리스 본토가 철학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마라톤 전쟁으로 시작해서 앞으로 혹독한 전쟁을 치루어야 할 운명에 처했을 때, 그리스 식민지인 이탈리아에서는 평화롭게 철학의 꽃이 이미 피어나기 시작했다. 크로톤에서는 피타고라스가 엘레아에서는 파르메니데스가,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엠페도클레스가 남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사상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였다.

영화 ‘대부’의 고향 시칠리아

오늘 소개할 곳은 엠페도클레스의 고향인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이다. 옛날에는 그리스 도시 아크라가스라고 불렸다. 영화 ‘대부’ 때문인지 시칠리아하면 먼저 마피아를 연상하게 된다. 실제로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본 고장이다. 또한 좀도둑도 많아 치안이 불안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시칠리아에 가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행해야겠구나 하고 긴장을 했고 떠났다. 그러나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마피아나 좀도둑으로부터 위협을 당해 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 아름다운 풍광에 정신을 여러 번 잃곤 했다.

내가 시칠리아에 간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플라톤이 죽음을 무릅쓰고 3번이나 방문했던 시라쿠사를 보고 싶어서였고, 다른 하나는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진 엠페도클레스의 고향인 아그리젠토를 보고 싶어서 였다.

나는 나폴리에서 차를 타고 메시나 해협을 건너서 시라쿠사를 먼저 방문했다. 시라쿠사의 모습은 모 회사의 노트북 선전할 때 자주 나왔던 곳이다. 시라쿠사 방문기는 나중에 플라톤을 소개할 때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아그리젠토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라쿠사가 유럽을 향해 이오니아해안가에 있다면, 아그리젠토는 아프리카해안을 향해 위치해 있다.

내가 시칠리아를 방문했을 때는 1월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벌써 봄이 한 창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가뜩이나 시칠리아 풍광에 취해 있는 사람들을 더욱 정신 못 차리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신전에 눈을 감고 앉아 포근한 바람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인자한 여신의 손길이 나를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았다. 눈을 떠서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신전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눈을 감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취해 있는 표정이었다. 바람의 유혹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나는 1월말이나 2월에 시칠리아를 가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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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신전의 계곡에 있는 콘코르드 신전 기원전 430년 경

아그리젠토에 들어서면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신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그리스 본토 보다 남부 이탈리아에서 완전한 모습의 고대 그리스 신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신전의 완벽한 아름다움

아그리젠토에 들어서니 엠페도클레스 항구라고 쓰인 이정표가 먼저 눈에 들어 와 반가웠다. 엠페도클레스는 마라톤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인 기원전 492년경에 아크라가스의 명문 귀족 출신인 메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기원전 496년에 열린 제71회 올림픽 우승자라고 전해진다. 당시 올림픽 우승자는 대단한 영예를 누렸다. 최고의 지배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영예가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흉상이 제작되어 마을 입구부터 전시되었으며 그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엠페도클레스의 할아버지도 그러한 영예를 맛보았다.

할아버지 엠페도클레스는 올림픽에 우승하자 꿀과 밀가루를 가득 채운 황소 한 마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올림픽 우승자이자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엠페도클레스는 할아버지와 달리 운동보다는 철학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일설에는 그가 어릴 적 이탈리아 남부를 떠돌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를 만났다고 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아직 16살도 되지 않았다. 소년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은 스승이 없으며 홀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했다고 자랑하는 노철학자 크세노파네스가 못마땅했던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당신에게서는 어디에서도 현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크세노파네스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자네가 현자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 현자만이 현자를 알아 볼 수 있는 법이니까.”

엠페도클레스는 크세노파네스 말고도 엘레아 학파의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제논과 더불어 파르메니데스에게서 공부를 했다고 하기도 하며, 파르메니데스가 아니라 제논에게 배웠다고도 한다. 아무튼 엘레아 학파의 영향은 그가 쓴 ‘자연에 관하여’라는 책에 반영 되어 있다. 또한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한다.

이동희
시칠리아 신전의 계곡을 순찰 중인 이탈리아 기마 경찰
엠페도클레스는 땅, 물, 불, 공기로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4원소론을 주장한 다원론자였다. 그리고 이 원소들이 서로 합해지고 흩어지는 원리를 사랑과 미움으로 설명했다. 원소들을 합치는 힘은 사랑으로, 흩어지게 하는 힘은 미움으로. 그는 철학자이자 의사였고, 민주주의를 수호한 정치가이자 시인이며,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이자, 종교가였다. 정치가로서 그는 참주정치를 종식시키고 정치적 평등의 원칙에서 시민들 각각에게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으며, 의사로서 도시에 창궐했던 전염병을 막아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화산에 몸을 던진 철학자

그는 마법사이기도했다. 종종 연회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다방면으로 놀랄만한 재주를 가진 그를 시민들은 거의 ‘신’으로 추앙했다. 시민들이 참주 자리를 제안했을 때 거부했던 그였지만 신과 같은 대접은 거절하지 않았다. 이후부터 그는 신처럼 ‘붉은 융단으로 된 긴 옷에 금으로 된 허리띠를 두르고, 청동신발을 신고, 머리에는 델포이 신전에서 쓰는 관을 쓰고’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신과 같은 이적을 자주 나타내 보였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가 60세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기록을 보면 그가 69살, 77살, 109살까지 살았던 것으로 나와 있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최후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그가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진 이야기이다. 그는 모든 의사들이 손을 들고 만 아그리젠토의 판테이아라는 여성을 고쳐 준 다음, 사람들로부터 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신이 되었다고 하는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화산에 몰래 몸을 던졌다. 그러나 화산은 그가 신고 다니던 청동 샌들 하나를 다시 토해내 그의 시도를 헛되게 만들어 버렸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런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에 관한 신화를 기초로 해서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콤플렉스는 ‘삶의 본능과 죽음에의 본능이 결합’되는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영원불사하는 신이 되기를 원했던 엠페도클레스가 바로 그러한 경우라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신과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 점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엠페도클레스가 영원불사의 신이 되려 했다고 해서 누가 그를 교만(hybris)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한한 인간인 이상 영원에 대한 근원적 소망은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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