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관련 내부문건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사태를 관망해 온 검찰, 금융감독원 등 조사당국이 추가적인 단서가 나온 뒤에도 삼성 수사를 미룰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삼성 비자금 의혹을 소극적으로 다루는 언론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5일 삼성로비 2차 기자회견을 열어 비자금 조성 경위가 담긴 내부문건을 공개할 예정이다. 로비의 구체적인 실체가 밝혀질 전망이다. 사제단의 한 신부는 지난 1일 평화방송을 통해 “검사 뿐 아니라 대법원 판사도 명단에 포함돼 있고, 윤종용 부회장 등 삼성 고위경영진의 모임으로 알려진 9인회 회의에서 로비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들이 오갔던 정황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검찰, 금융감독원 등 조사당국이 지금까지 태도를 견지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지난달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관련 자료를 검토한 후에 수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아직까지 구체적인 수사계획이 없음을 시인했다.

검찰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시민사회의 특검제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민변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검찰 간부 수십 명이 관여되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편에서 검찰이 수사 주체로서 적정한 지 의심스럽다”며 “신뢰 위기를 자초한 검찰에 수사를 맡기기 보다는 특검을 통하여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국회 등 관련기관은 즉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삼성에 차명계좌를 개설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우리은행에 대한 조사권과 감독권을 가진 금융감독위원회도 지난 1일 브리핑에서 “우리은행의 자체조사 결과를 보고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당분간 적극적인 감독권 행사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모든 의혹의 시발이자 진상 규명 중심이 불법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한 실체 파악이라는 점에서 금융감독기관이 여태까지 조사에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조속한 조사 착수를 촉구했다.

한편 보수언론의 소극적인 보도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민언련은 지난 31일, 사제단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30일과 31일의 삼성 비자금 관련 보도 모니터 결과를 발표했다. 민언련은 30일 보도에서 한겨레, 경향, 서울신문을 제외한 중앙일간지들은 기자회견 내용을 사회면 단순사건이나 공방기사로 처리했고 31일에는 한겨레, 경향, 조선을 제외한 신문들이 단신성 기사마저도 게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은 언론계 자성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일부언론을 제외하고 방송을 포함한 나머지 언론들은 이번 비자금 의혹을 구석에 처박았다”며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 조처에 ‘언론자유 침해’라고 목소리 높였던 언론사들이 ‘경제권력’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을 크게 보도하는 것만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날 언론노조도 성명을 내고 “정치권력을 향해선 막말까지 쏟아내며 비장한 비판자 행세를 해온 언론들이 재벌 삼성을 향해선 입을 닫아버린 처사를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 정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삼성 가족으로 남을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심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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