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10. 강원도 철암마을에서

“탄광촌 철암을 기억하라” 남효선l승인2007.11.0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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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주민이 함께 만드는 ‘문화탄광촌’ 철암

황지에서 발원하는 낙동이 제법 큰 몸피로 부쩍 늘어나는 길목에 철암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석탄산업이 사양화로 들어서면서 탄광이 애물단지로 변하기 전까지 철암마을은 태백시청 소재지인 황지와 장성과 함께 태백권역에서 손가락 꼽히는 큰 광산촌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뿌리 뽑힌 사람들이 ‘검은 노다지, 석탄’을 생명줄로 움켜쥐고 식솔들을 거두며 새롭게 일군, 부자마을 철암동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을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4층 건물의 철암역사가 당시의 마을의 위세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남효선
1990년초 석탄산업합리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탄광이 문을 닫자 국내 최대의 석탄수송지였던 철암마을도 시간이 멈춰버린 폐광촌으로 전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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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鐵岩)의 옛이름은 ‘쇠바우’마을입니다. 철암이라는 지명은 마을의 북쪽에 있는 백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있는 높이 20여m에 달하는 커다란 입석에서 쇠(철)를 녹였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집니다.철암동은 새뜨리(間坪), 피내골, 좁씨골, 매산골, 버들골, 새터 등 6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철암역이 처음 개원하면서 마을이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암역은 영동선과 영암선을 이어주는 기점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석탄 수송기지로 이름높았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장성동 일대의 탄전에서 캐낸 석탄을 운반굴을 통해 이곳 철암역에서 전국으로 수송되었습니다.

태백문화원의 기록에 의하면 1759년도의 철암마을의 인구는 17호에 70여명이 화전을 일구며 사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었습니다.그러나 1935년 이곳에 삼척탄광이 문을 열고 이어1939년에 철암역 공사를 시작으로 40년도에 개통이 되면서 철암마을은 국내 최대의 석탄수송지이자 규모가 큰 탄광촌으로 변모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석탄공사 철암갱이 자리잡았으며, 1980년말까지 이곳의 인구는 3000여 호수에 16000여명이 모둠살이를 일군, 규모가 큰 탄광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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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석탄수송지인 철암역의 뒷편에 자리한 선탄시설. 이 선탄사설은 국가중요민속자료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석탄선탄시설입니다.

현재 철암역사 뒤편에 있는 철암갱의 폐석장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폐석장의 문화재명칭은 ‘철암역두 선탄시설’입니다. 2002년 5월27일에 지정됐으며, 원탄저장 및 운반(벨트 콘베어), 경석선별 및 파쇄운반, 1 2 3차 무연탄 선탄, 이물질 분리(침전), 각종 기계공급 및 수선창 등 5개분야의 20개 주요 시설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탄시설은 90년대 초반까지 국가 주요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아 온 석탄사업의 산 역사를 보듬은 채, 텅빈 탄광촌을 지키고 있습니다.

철암마을 뒤편에 자리한 ‘두골산(頭骨山)’은 호식총(虎食塚)의 전설이 왕성하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93년, 이른바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유수의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자 전국 최고의 석탄수송지로서 그 위용을 자랑하던 철암역사도 24시간을 밝히던 불빛을 닫았습니다.

탄광이 문을 닫자낮밤으로 흥청거리던 철암마을은 이제 죽은 듯 웅크려 있습니다. 철암역사로 들어오는 어귀에 세워진 주상복합상가는 빛바랜 간판만 걸린 채 주인 잃은 오래된 자전거 몇 대만이 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키던 사람들도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이제는 천 여명도 안 되는 노광부들만이 철암의 찬란한 기억을 지키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흥청거리던 탄광촌에서 폐광촌으로 이름을 바꿔 단 이곳 철암에 새로운 움직임이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60년간 이 땅을 밝히던 석탄에너지의 찬란한 꿈들이 ‘기억의 벽’이라는 소중한 집단창작활동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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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철암이 집단창작단과 주민들에 의해 '문화탄광촌'으로 되살아 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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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와 민예총 산하 공공미술추진위원회의 제안 공모를 통해 선정된 ‘할아텍’이 철암역사의 벽에 ‘멈춰버린 철암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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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석탄산업의 역사가 활황기의 찬란한 불빛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셈입니다.

‘철암역사 거리벽화’는 철암역 옹벽 100m와 역 후문 3층 건물 벽면에 입체부조 형식 및 타일도기, 외부 채색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학생과 주민이 함께하는 주민 참여형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벽 1’ 벽화에서는 거대한 탄광촌이었던 철암의 역사와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린 광부들의 주거공간을 형상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기억의 벽 2’는 현재의 주민들이 대도시와 상대적 문화 소외지역으로 느끼기를 거부하는 곳으로 지난날 삶의 기록과 함께할 때 가치가 살아난다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거리벽화를 주도하는 집단창작패 ‘할아텍’은 “석탄산업 사양화로 사람이 떠나고 지역경제가 붕괴됐지만 여전히 검은 석탄가루가 날리고 있는 철암이 중요한 탄광도시였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기억시키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할아텍은 “미래의 지역 철암이 지난 날의 삶의 기록과 함께 할 때 그 가치도 살아나는 것”이라며 “이러한 염원을 사실적 표현과 상징적 형태로 담고자 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또 하나의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현재 7년째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할아텍의 작업으로 철암은 ‘시간이 멈춰버린 죽음의 폐광촌’에서 ‘황홀하고 아픈 기억을 함께 오려내 다시 살아 꿈틀거리는 문화 탄광촌’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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