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상요구 무더기 계약해지 배경

지난달 28일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열린 고 유해진 노동자 추모집회에는 건설노조 조합원 외에도 남색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 조끼를 입은 이들이 눈에 띄었다. 묵념에서 다른 노동자들보다 더 깊게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지난달부터 서울우유와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있는 화물연대 경기지역의 서울우유지회 조합원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지난 31일 ‘밥줄’인 본인 소유 냉장차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사건 정황=이날 새벽 서울우유 안산 공장 앞에서 고철환 씨와 박 모 씨가 고 씨의 냉장차에 운전석 지붕 위에 올라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렀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공장 정문에서 바깥을 향한 CCTV의 자료화면이 유일한 물증이다.

지난달 28일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열린 고 유해진 노동자 추모집회에 참가한‘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조합원들이고개를 수그린 채 앉아있다. 이들 가운데 한명이 지난 31일 자신의 차에 휘발유를 끼얹어 분신을 시도해 한강성심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방화로 결론 내렸다. 사건을 담당하는 안산단원 경찰서는 지난 2일 방화혐의로 박 모씨를 불구속구사하고 있다. 지능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조사결사 단순방화로 결론 내린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은 2도 화상을 입어 한강 성심병원에 입원 중인 고 씨도 치료가 끝나는 대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서울우유도 CCTV 화면을 토대로 단순 방화라는 입장이다. 고 씨가 자기 몸에 휘발유를 거의 끼얹지 않았고, 함께 있던 박 모씨가 만취상태였다는 것이 방화로 단정하는 이유다.

하지만 노동계.시민사회의 입장은 다르다. 당시 파업 중이었던 주변 여건을 볼 때 분신시도였다는 주장이다. 해고 불만 방화로 단정하기엔 생계수단을 버리는 힘든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정작 지붕위에서 휘발유를 끼얹은 고 씨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안산단원경찰서에서 박 모 씨를 접견한 김영기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박씨가 ‘죽었어야 일이 해결되는 데 그러지 못했다’고 토로했다”며 “두 명이 같이 죽겠다고 자기 차에 올라가서 불을 붙인 상황인데 구속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차에 불을 내는 것이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와 주변상황, 결과의 위험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논란의 또다른 점화=분신논란의 계기가 됐던 파업에서 지부원들의 요구는 서울우유 협동조합과의 직접 협상이었다. 서울우유 협동조합 측은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지입차주들의 화물연대 가입과 이어진 직접 대화요구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우유 협동조합 측은 지금까지 지입차주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 불만이 없었지만 화물연대가 들어와 선동했다고 강조다는 입장이다.

서울우유 협동조합은 병원에 입원 중인 고 씨 등 20명의 지입차주들에게 운송을 집단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미 지난달에 무더기 계약해지를 통보를 한 상태다. 협동조합 물류팀은 남은 집행부도 곧 계약해지 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화물연대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는 셈이다.

서울우유 물류팀이 계약조건이 나쁜 게 아니라면서제시한 수도권 냉동탑 지입차모집 공고문에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긴급 모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운송업자와 계약하는 사업자일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고용과 계약해지를 결정하는 것은 서울우유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모집과 해고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원청업체인 서울우유가 지입차주들과 협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법적으로 운송회사와 지입차주간의 문제’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권두섭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는 “서울우유 사례는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고용관계가 형성되는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직 전체의 문제다”며 “지금까지 특수고용직을 위한 입법을 미루고 있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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