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가 존재한다

기억을 넘어 현실극복 기록하기, 제2회 여성노동영화제 전상희l승인2007.11.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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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
“사랑합니다, 고객님.”

전화기를 들고 114를 누르면 들려오는 상냥한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사랑한다’는 고백은 듣는 이에게도, 말하는 이에게도 거북한 것이 사실이다. 2007년 한국의 전화교환원들은 이렇게 감정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비단 지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벨이 1876년 전화를 발명하고 역사 속에서는 전화교환원이 늘 있었다. 이들은 과연 그 시대에 어떤 의미로 읽혀질 수 있었고 어떤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었을까.

캐나다의 캐롤린 마르텔 감독은 1903년부터 약 100년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화교환원들의 모습을 새로운 편집기법을 동원해 몽환적인 느낌의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영화 ‘전화교환실의 유령’에서 전화교환원은 단순히 ‘미소 띤 목소리’가 아니라 ‘무한한 발전의 우주에서 떨어지는 별’이다.

2004년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영화가 지난 3일 홍대에서 관객과 만났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여성노동자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2회 여성노동영화제의 개막식에서다. ‘작전명: 女 7007, 기억을 넘어 존재하라’란 슬로건을 내걸고 홍대 앞 상상마당시네마에서 6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전화기 뒤 교환원은 누구

‘7007’은 1970년대 공순이라 불린 여성노동자들부터 2007년 거리로 내몰린 KTX,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현실을 아우른다는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기획국장은 “역사 속에서 사람들에게 여성노동자로 단지 기억되는 것을 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억을 넘어 존재하라’란 문구를 슬로건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여성노동자회는 지난 2004년 제1회 여성노동영화제를 개최한 바 있다. 처음이다 보니 상영할 영화를 모으는 데 힘이 들었다. 여성노동과 관련한 영화들은 흥행면에서나 수입면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 제작되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제1회 영화제 때 ‘여성노동자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어라’란 영화제작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영화가 갖는 영향력에 주목한 여성노동자회는 꾸준히 영화제작에 관심을 쏟았다.

배 기획국장은 “영상을 통해 대중들이 현실을 직접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여성노동자들이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소통의 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2회 영화제가 개최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는 여성노동자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체제작한 영화가 쌓이기를 기다렸다”며 “1회 때보다 자체작품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배 기획국장은 덧붙였다. 또한 올해는 여성노동자회가 창립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2회 여성노동영화제에 출품된 '2007 이랜드'의 한 장면.

공유와 소통, 그리고 확산

여성노동영화제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공유와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2007년은 특히 여성의 비정규직화, 빈곤화 등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많았다. 지난 7월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이후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무차별적 해고와 외주화, 저임금 등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영화를 통해 여성노동자들 스스로 직시하고 사회에 알리는 역할도 여성노동영화제의 몫이다.

이번 영화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진행됐다. ‘이주노동자로 산다는 것’이란 세션에선 영국에서 살아가는 중국이민여성의 고된 삶을 그린 ‘고스트’, 일본남자와 결혼한 필리핀 여성들의 삶을 담은 ‘후쿠오카의 필리피나’, 캐나다 내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인 ‘국경을 넘어’ 등이 상영된다.

‘우리는 투쟁한다’란 세션에선 파업과정에서 노동자로 변해가는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2007 이랜드’, ‘구로선경오피스텔을 찾다’, ‘시청에서 쫓겨난 그 후’, ‘우리는 KTX 승무원입니다’ 등 현재도 여전히 투쟁중인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을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세 번째 세션인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에는 악조건 속 여성노동자들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전화교환실의 유령’, ‘경계를 넘어’, ‘하우스키퍼’ 등의 영화들이 상영된다.

스스로 카메라를 잡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어라’란 세션은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어 공모전에 접수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부대행사로는 ‘꿈꾸는 여성, 카메라를 들었다’ 포럼도 4일 열렸다. 아직은 활발하지 않지만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미디어 활동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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