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론의 평화지향적인 전환

‘잘사는 평화’를 찾아서[3] 김승국l승인2007.11.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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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가 강조하듯이 “필요한 것은 지속가능하며 공정하며 민주적인 성장을 위한 정책이다. 이것이 개발의 동기이다. 개발은 소수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 아니며, 국가의 엘리트들만을 살찌우는, 몇몇 무의미하고 보호받는 산업을 창설하는 것도 아니다. 개발은 도시의 부자들을 위해 프라다와 베네통, 랄프 로렌과 루이 뷔통을 들여오면서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을 비참한 상태로 방치해 놓는 것이 아니다. 모스크바의 백화점에서 구찌 핸드백을 살 수 있음이 러시아의 시장경제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개발은 사회를 변모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며 모든 사람들이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보건과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김상택 기자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 성장주의 담론은 이 시대 다시 지목해야 할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에 있었던 '찾아가는 평화통일 아카데미' 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사회를 변모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며 모든 사람들이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보건과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평화지향적인 개발(발전)론이 새롭게 등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자본중심형 개발론에서 인간중심형 개발론에로의 전환이 평화경제의 측면에서 요청된다.

제2차 대전 이후 발전도상국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개발론’은 70~80년대 들어 커다란 전환을 한다. 과거의 개발론(근대화론)이 자본·물질 중심인데 비하여 새로운 개발론은 인간중심적이다.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유행한 개발론은 경제규모를 확대하고(경제성장)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여 사회경제의 기반시설(infrastructure)을 정비하는 데 주요한 목적이 있었다. 도로·철도·항만·발전소·공항 등의 정비효과가 산업화로 연결되어, 그 효과가 사회전체에 고루게 미치게 하면 사회저변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빈곤도 결국 해결된다고 상정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개발론은 수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경제성장에 의한 공업화에 성공한 국가들도 있지만, 이 공업화는 환경파괴·공해를 가져왔다. 또 경제성장의 은혜가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지지 않은 끝에 빈부의 확대를 불러일으켰다. 특권계급은 부를 얻었으나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변함없이 가난한 채 경제성장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다.(藤文彦)

1945년~60년대의 개발론이 낡은 모델로서 예기했던 성과를 거둘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방법론을 1970년대부터 내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개발론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개발은 단순히 경제규모를 확대하는 것으로만 달성될 수 없다. 과거의 경제성장 중시의 정책은 그 폐해가 크다. 개도국 사람들의 생활개선을 겨냥하려면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자·여자들이 중심이 된 활동을 할 수 있는 과정을 구축해야한다. 이를 위해 개도국 사람들을 제1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낡은 개발론의 자본 중심 모델과 새로운 개발론의 인간중심 모델을 비교·평가한 챔버스(Robert Chambers)의 논문을 보면, 후자의 인간중심 개발 패러다임이 더욱 평화지향적임을 알 수 있다. 자본 제일이 아닌 인간 제일의 개발(발전)론이 평화경제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평화 지향적이며 인간중심적인 개발 패러다임을 만든 학자들의 논리를 중심으로 평화를 위한 개발(발전)론을 정립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 작업을 위해 참가형 발전론, 인간발전론, 내발적(內發的) 발전론을 소개한다.

참가형 개발

‘Whose Reality Counts?’라는 저서를 펴낸 챔버스는, '주체적 참가형 농촌조사법‘(PRA: Participatory Rural Appraisal)과 ‘주체적 참가에 의한 학습·행동’(PLA: Participatory Learning and Action)을 제시한다. ‘Participatory'를 두문자로 삼는 PRA·PLA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개발에 참여하는 인간중심형 개발(발전)론이다. ‘개발’에 스며 있는 타자성(他者性)을 지양하고 자발성을 높이려는 뜻에서 ‘Participatory’를 단순한 참가가 아닌 ‘주체적 참가’로 번역했다.

챔버스의 참가형 개발 모델은 1970년대 이후에 새로운 개발론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 연구자·실무자들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것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가 ‘1990년대의 개발협력에 관한 정책성명’을 1989년에 발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 성명은 “사람들의 생산적 에너지를 자극하고 모든 사람들이 생산과정에 광범위하게 참가할 것을 장려하며, 이익을 더욱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개발전략과 개발원조의 중심적인 요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개발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가해야하고, 사람들이 개발의 편익을 되도록 평등하게 향수할 수 있어야한다는 인식이 상호 연관되어 있음을 이 성명을 강조한다.(藤文彦)

DAC는 1990년대 말에 ‘저변이 넓은 성장’(broad-based growth) 개념을 제창하면서 경제성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참가형 발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그런데 참가형 개발에 기증자(donor)로 참여하는 측의 태도가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면 참가형 개발이 신자유주의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참가형 개발(발전) 모델의 서양적(미국적)인 측면으로 말미암아 서양 중심주의로 인식될 수 있다. IMF의 구조조정 이후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려는 기증자 측의 정책의도에 변함이 없다. 참가형 개발을 에워싼 정치적 원조는 서양을 모범으로 한 자유주의적인 것을 상정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구조조정의 관을 쓰지 않아도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기조라는 지적이 있다.(Simon, 2002) 인간개발을 위해 개인에게 선택을 위임하는 발상이 신자유주의적 발상과 합치하여 참가형 개발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떠받치는 수단으로 이용될 여지도 있다. 참가형 개발의 ‘능력 배양’(empowerment) ‘참가’도 신자유주의와 친화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인간 개발(발전)론

워싱턴 합의와 같은 ‘인간의 얼굴을 외면한 개발정책’을 지양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정책을 지향할 필요성에 따라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론이 등장하게 된다.

'인간개발'의 발상은 유엔개발계획(UNDP) 등의 유엔기구에서 제기되었고 이를 사상적으로 종합정리한 학자가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다.

‘개발의 목적을 인간에 두라’

UNDP는 1990년도부터 ‘인간개발 보고’라는 연차보고서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개발의 목적을 ‘인간개발’에 두고, 국제적인 개발협력의 목적을 인간개발 쪽으로 전환할 것을 호소한다. ‘인간개발’이라는 개념을 안출한 배경을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개발이란 GNP의 성장, 소득·부·재화의 생산, 자본축적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소득을 얻는 것은 그의 인생의 선택일지 모른지만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전체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개발은 사람들의 선택을 확대하는 과정이다. 다양한 선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건강한 생활을 지내고 교육을 받고 인간다운 생활에 어울리는 자원에 접근할 수단을 갖는 일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자유, 인권보장, 자기존엄도 중요한 선택이다. 이 보고서에 또 “인간개발은 인간의 잠재능력(capability)-보건·지식의 개선-을 형성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 능력을 어떻게 이용하고 발휘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능력의 이용이란 일·여가·정치활동·문화활동 등의 여러 측면에 나타난다. 만약 인간개발의 정도에 따라 인간능력의 형성과 능력의 이용 사이에 어긋남이 드러날 때 인간의 잠재능력의 커다란 부분이 낭비될 것이다.”(UNDP의 1990년 ‘인간개발 보고서’ 1쪽)

여기에서 인간개발의 기본개념으로 ‘capability'(능력)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아마티아 센의 개념이다. capacity는 어떤 것을 산출하는 힘을 지칭하나 capability는 인간의 여러 활동·상태(doings and beings)를 실현하는 자유·능력을 의미한다(capacity+ability). capability의 형성·이용은 개인의 능력임과 동시에 공공정책의 책임이기도하다. 공공정책의 책임이란, 능력의 형성·발휘를 보장하는 정책환경 형성의 책임이다. 이 정책환경의 형성과 관련하여 1993년의 UNDP 보고서는 인간개발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참가(people's participation)가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NGO·NPO 등의 시민사회가 개발과정에 참가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1995년의 코펜하겐 사회개발 정상회담을 위해 준비한 보고서는 인간개발을 위한 ‘인간의 안전보장’(safety net)이라는 발상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안전보장을 위한 정부·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1995년의 사회개발 정상회담은 시민사회의 참여 없이 인간개발과 그것을 보장하는 사회개발이 있을 수 없음을 선언한다. 이로써 개발이념이 경제성장에서 전 세계적인 빈곤·실업?사회분열을 막기 위한 '인간중심형 발전‘(human-centered development) '민중중심형 발전’(people-centered development)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가 성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개발의 주체가 종래의 경제성장 시대에는 정부·기업이었으나 새로이 ‘제3의 개발주체’로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19세기에 형성된 고전파·신고전파 경제학의 ‘효용’(utility)을 기초로 하는 주관주의적 가치관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벤담(Bentham)의 공리주의에 의하면 사회적인 쾌락을 최대로 만드는 것이 사회의 이익=행복의 최대화이다. 이러한 공리=효용주의에 대하여 밀(J.S. Mill)은 ‘사람에 따라 효용의 질이 다르다. 효용 즉 쾌락은 반드시 인간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 만족한 어리석은 자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한계혁명 이후 한계효용 제로(0)의 상태가 자원의 최적배분을 보장한다는 정태균형(靜態均衡)의 가설이 신고전파의 가치론이 되었다. 이러한 한계효용설은 벤담의 공리·효용주의를 계승한 것이다. 경제학은 이러한 입장에 따라 끝없는 욕망=효용=행복의 충족을 겨냥하는 경제인적(經濟人的)인 인간상의 가치관을 만족시키는 학문이 되었다. 효용주의는 어떠한 인간의 어떠한 효용일지라도 등질의 한 단위로 받아들임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평등주의적 시장경쟁 사회의 윤리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시장경쟁에서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s)가 일어나 빈부격차·지역격차·공황·실업·독점·과점·투기·공해·환경파괴 등이 확대되는 현상이 인지되었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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