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의 선구자 데모크리토스

철학여행까페[10]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l승인2007.11.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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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압데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휴양도시 카발라

압데라는 데모크리토스의 고향이자 소피스트로 유명한 프로타고라스의 고향이다. 나는 그리스 북부에 있는 압데라를 찾아가기 위해 새벽에 이스탄불 골든 혼의 입구에 있는 실케지 역으로 갔다. 실케지 역은 유럽에서 오는 오리엔탈 특급의 종착역이자 유럽으로 가는 시발역이었다. 1883년부터 1977년까지 이스탄불-파리 간 기차가 운행되었다. 이 오리엔탈 특급 노선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때문에 유명해졌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실케 지역 근처 페라팔라스 호텔에 묵으면서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을 썼다고 한다. 나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소설로 써서 더욱 유명해 진 이 오리엔탈 특급 노선을 언젠가 한번 타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특급 열차가 운행되지 않는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운행되지 않아도 나는 그 레일을 따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실케지 역에서 그리스 북부도시인 상티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약간의 오리엔탈 특급 노선에 대한 환상과 함께. 그러나 기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이 깨졌다.

데모크리토스의 고향 압데라

그때 정말로 나는 열차를 두고 왜 철마라고 하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낡은 열차가 계속해서 덜컹 거리는 수준이 마치 말 뛰듯 했다. 과자를 집어 입에 넣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철도 노선이 너무 노후해 철로 사이의 틈이 너무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태로 한참 덜컹 거리고 가다보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차에 비해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렸다.

오랜 시간 끝에 그리스 국경에 도착해서 상티로 가는 열차로 갈아탔다. 상티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었다. 상티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는 아침 일찍 압데라로 떠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압데라로 가기 위해 정류장에 가서 버스표를 끊어 보니 데모크리토스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초상이 새겨진 버스표를 보면서, 시골 도시에서도 철학자를 이렇게 기리고 있어 반가웠다.

이동희
트라키아 해안을 접하고 있는 고대 도시 압데라

그런데 이 도시가 배출한 또 한명의 유명한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를 기리는 조형물이나 초상은 보이지 않았다. 플라톤이 기록한 ‘프로타고라스’라는 단편을 보면, 프로타고라스라는 당시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였다. 그에 반해 데모크리토스는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에도 별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치는 뒤바뀐 것 같다. 아테네에 있는 그리스 정부의 핵연구소의 이름부터가 데모크리토스이고, 데모크리토스를 기념하는 주화와 화폐도 발행되었다. 압데라라는 시골도시를 방문했을 때도 데모크리토스의 흉상은 있지만 프로타고라스의 동상이나 흉상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보들의 천국’

압데라는 평범한 시골 촌락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했다. 데모크리토스나 프로타고라스가 살았던 고대 도시 압데라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 세워 진 박물관이 있었지만 특별한 유적은 없었다. 아무리 찾아 봐도 고대 도시의 흔적이 없었다. 박물관에 물어 보니, 고대 도시 압데라는 해안가 쪽으로 5Km 정도 더 떨어진 곳에 있었다. 촌이라 택시도 없어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오랜 여행에 피곤했던지 어깨에 멘 카메라 가방이 무척 무거웠고, 간혹 눈발이 내려 춥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하니 고대 도시 압데라는 해안가에 위치한 작은 고대 도시였다. 아직 발굴과 개발이 덜 되어 그대로 황폐해 진 채 남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압데라는 바보들의 천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어리석고 고지식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유명하다. 18세기에 뷔일란트(Christoph Martin Wieland, 1733~1813)가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이라는 유명한 책을 쓰면서 그 사건이 일어 난 도시를 압데라로 정할 정도이니까.

데모크리토스는 이 도시에서 기원전 460년경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 해에는 의성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데모크리토스의 가계를 쭉 따라 올라 가보면 오디세우스가 나온다. 오디세우스를 선조로 두어서 그런지 데모크리토스도 여행광이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아버지는 압데라의 재력가이자 유력가였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제2차 페르시아 전쟁 중 그곳을 지나던 크세르크세스 왕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할 정도였다고 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 100 달란톤을 가지고 세상을 두루 다니며 가능한 많은 스승을 찾아 다녔다. 100달란톤은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정도 되는 돈이다. 그는 돈이 수중에서 한 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집트, 페르시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현자와 학자들을 만나 학문을 배웠다. 그도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여행을 하고 가장 이상한 것들을 찾아 다녔으며, 셀 수 없이 많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또한 학식 있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이를 풀이하는 데 나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소위 토지 측량학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데모크리토스는 빈털터리였다. 압데라가 속한 트라키아의 법률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은 조국의 땅에 묻힐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는 죽은 다음에 바다에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자 급히 ‘자연에 관하여’ 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 책을 읽은 압데라 시민들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 그를 위해 돈을 모으고, 죽으면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

“영혼조차 원자로 이뤄졌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원자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아톰’(Atom)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 세계는 원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질적으로 모두 같지만 크기와 기하학적 형태, 즉 모양이 서로 다르다. 모양이 서로 다른 원자들이 궤도를 따라 돌며 때때로 충돌해 서로 달라붙기도 하고, 서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원자들이 운동을 하면서 사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누가 이 원자들을 만들어 낸 것인가?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의 수는 무한하며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감각이나 사고 더 나아가 영혼조차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영혼은 원자의 운동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유물론의 선구가 된다. 그에 따르면 행복한 영혼이란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안정되어 큰 동요로부터 벗어 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의 배열과 위치를 항상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에 영혼을 안정시킬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데모크리토스에게는 왕좌 자리에 앉아 골머리를 썩히기보다 차라리 기하학의 문제를 풀며 소박하게 사는 것이 영혼을 더욱 유쾌하게 행복하게 하는 길이었다.

이동희
압데라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데모크리토스의 흉상이다.

누가 데모크리토스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페르시아의 왕의 자리를 준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게는 페르시아의 왕국 보다 차라리 (기하학에) 필요한 원인을 밝히는 것이 더 가치가 있소.”

내가 압데라에 가서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물질적 만족이 아니라 행복한 영혼의 삶이었다. 그러기에 오랜 여행에 몸은 지치고 고되더라도 영혼은 행복하였다. 바보들의 천국에서!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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