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간 민주, 평화, 개혁, 진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세력의 다양한 존재들은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승리의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 의미를 갖게 되는 1987년 체제는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완수해야 할 역사적 과제는 사실상 여전히 완료된 것이 아니다.
그런 지점에서 역사적 고투와 성취를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에게 권력이 넘어갈 판인 현실에 대해서 비장한 자세를 갖지 않는 한 오늘의 문제를 풀 수 없다. 누구 하나 뚜렷하게 민심을 잡지 못하고 있고, 합쳐봐야 이길까 말까 한 상황에 대한 패배주의가 대선은 일단 건너뛰고 총선에서 어떻게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의 정치 공학적 계산에 바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대선을 치루고 나면 총선은 과연 승산이 있을까?
오늘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어야 할 문제의식은 ‘역사의 헤게모니’에 대한 태도이다. 정파적 헤게모니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한, 역사의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은 실현되기 어렵다.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하는 일에서 우선 성공하지 않으면, 역사의 진보는 쉽지 않다는 현실인식을 철저하게 하는 일이 지금 무엇보다도 관건이다.
이걸 고리로역사의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고 재창출 확대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이번 대선은 정파적 이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역사의 헤게모니는 넘겨주고 마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 수 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 싸움은 더더욱 힘겨워진다.
FTA 저지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에 있어서도 노무현 정부의 결정을 뒤엎기가 이리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에 적극 추종하고 협력하는 세력의 집권은 과연 어떤 현실을 만들어 낼 것인가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게다가 물질주의와 도덕적 불감증 그리고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를 그대로 관철시키려들 권력에 우리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 삶을 맡기게 되면 이 나라가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인지 또한 내다보기 어렵지 않다.
좌로는 민노당에서 우로는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틀에서 보면 한나라당 집권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고 적어도 냉전에서 평화로, 부패에서 개혁으로, 대자본에서 중소기업과 노동자로, 신자유주의적 독점체제에서 빈부격차를 극복할 민생해법이라는 공통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물론 각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정책이 다르고 이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날카롭게 적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큰 틀 안에서 권력이 일단 넘어가면 이런 차이도 별 의미가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형편에 작은 싸움은 그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역사의 헤게모니를 상실한 세력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한국 정치는 이제 북과 한반도의 미래를 걸고 큰 그림을 그려가면서 대 노동당 정치를 해야 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역사의 진보적 성취를 밑바탕으로 해서 이제 좀 더 확실히 밀고나가야 한다. 여기서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자면 답은 명백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깨진다는 사실이다. 패배하고 나서 수습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그렇지 않아도 역사적 에너지가 충만하지 못한 상황에서 패배 이후의 사태는 “그래 너 한번 해봐라” 식의 체념적 무관심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감히 제안한다. 민노당에서부터 신당과 민주당 그리고 시민사회 제 세력은 속히 만나 하나가 되는 방도를 짜내라. 진보적 시민 민주주의를 지향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을 옹호하는 세력도 이에 포함된다.
반한나라 전선은 오늘의 현 정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로 볼 때 매우 중대하다. 여타의 싸움은 우선 권력의 역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나서 해도 뒤늦지 않다. 후보 단일화이든 연정이든, 중요한 것은 어떤 역사적 권력을 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최소공배수의 합의이다. 그러고 나서 합의된 대표선수도 뽑고, 정치권력 구조의 내용도 미리 치밀하게 짜서 국민들 앞에 내놓아야 한다.
뭉치면 역사는 우리의 것이 되지만, 대적 앞에서 작은 싸움에 치중하는 세력들은 몰락을 스스로 준비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지 않을까?
김민웅 본지 편집인·성공회대 교수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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