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로비.편법 상속.무노조 경영 위기

삼성 차명계좌 비자금 관련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검찰과 다수 언론들은 ‘떡값 명단’만을 재촉하고 있다. 양심선언을 기자회견을 주도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 의혹이 국가 대사임에도 연예인 추문 대하듯 한다”고 탄식 할 정도다. 떡값에 시선이 집중된 사이에 왜 삼성이 이토록 집요하게 검찰 등 국가 기관, 언론, 학계 사회전반을 전방위 관리 해왔는가에 대해선 관심이 적다는 지적이다.

삼성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해온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삼성 전방위 로비의 이유를 미래의 불법, 탈법행위 적발을 피해가기 위한 ‘보험용’이라는 일반적인 시각 외에 크게 3가지로 제시한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는 지난 8일 삼성그룹이 우리은행과 굿모닝신한증권에 불법차명계좌를 개설해 비자금을 운영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조사하고 있지 않은 금융감독원을 항의방문하고 조사촉구 및 금융감독원장 면담요청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사진제공=참여연대>

◇삼성 입맛대로 산업.금융정책 유도=첫 번째는 삼성이 그룹의 경영전략에 맞춰 경제&산업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회장의 숙원이던 자동차 산업 진출을 위해 시장포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지난 1994년 청와대와 정치권 지원으로 자동차사업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금산분리정책 폐기를 통한 은행소유 시도가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예로 지적된다. 삼성은 경영의 안정적인 ‘실탄’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 금융산업 정책의 근간인 금산분리 정책의 폐기 여론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삼성은행 설립 로드맵 내부문건 공개로 확인되는 것처럼 삼성은 지속적으로 재경부관료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금산분리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일개 그룹이 정부정책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반박했지만 금산분리정책 폐기를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을 비롯한 다수 경제관료와 보수정치인들이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편법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 입막음=두 번째 이유는 삼성의 편법 불법 경영권 승계에 따른 사회적 비판 여론을 무마시킬 뿐 아니라 이 회장 구속이란 돌발 상황을 막자는 것이다.

1990년 중반 기준 5대 그룹인 삼성, 현대, LG, 대우, SK 가운데 석유화학과 이동통신에 그룹전체 경제력이 집중돼 있는 SK의 경우를 제외하면 IMF환란 이후에도 계열사들의 대규모분리 과정을 겪지 않으면서 경영권 승계를 안정적으로 진행해온 그룹은 삼성이 유일하다.

지난 1997년에 작성된 ‘2005년 경영 환경의 변화와 그룹의 장기 경영 전략’ 보고서에는“경영권과 소유권의 일체화를 공고히 하면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이라고 적시돼 있다. 10년이 지난 오늘 삼성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1997년 9월 삼성전자의 사모전환사채(CB) 주식 전환을 통해 미국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신분으로 150억원을 벌면서 시작된 경영권 대물리기는 △1996년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발행 △1997년의 삼성전자 전환사채 발행 △1999년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2001년 e삼성 등 이재용 씨 보유 인터넷벤처기업 주식 계열사 매입 등으로 이어졌다.

삼성에 대한 검찰의 ‘특별’ 대우도 결국은 삼성 로비의 힘이라는 지적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은 경영권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또는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 이건희 회장은 비슷한 혐의 내용으로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소환조사를 받지 않았다.

이 회장은 1995년 전직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처음 재판정 섰을 당시 “내가 왜 이 자리에 섰는지 검사가 원망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X파일 사건 등으로 소환조사가 점쳐졌음에도 검찰은 이 회장을 소환하지 않았다.

◇창업주 무노조 경영 원칙 사수=이건희 회장은 1987년 이후 급격히 변한 노동환경에서도 이병철 전 회장의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인사.노무 관리 비용이 다른 기업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노무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 주변에서는 구조본 차원에서 그룹 전체의 노무관련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고, 지역별로도 각 계열사의 노무업무를 총괄하는 기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김갑수 삼성해고자투쟁위윈회 위원장은 “노조 설립 시도 등으로 법적인 분쟁이 발생하면 구조본의 법무팀이 파견된다”고 말했다. 2004년 삼성SDI휴대폰 위치추적&도청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그룹 차원의 노무관리는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해온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삼성 내에서 노조설립 움직임이 있으면 노무관리자들이 사원들에게 국정원, 검찰 직원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경찰이 노조설립 움직임이 파악하면 삼성으로 연락한다는 식으로 삼성조직의 힘을 사원들에게 주입시킨다”며 “이러한 말이 일부는 사실이고 또 일부는 현실을 과장해 도전할 수 없는 거대한 괴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 관련 전문가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이 그룹 내에서 크게 도전받지 않았던 데는 삼성그룹 노무팀과 인사팀에서 직원들에게 강조했던 ‘삼성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실제로 유효했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97년 IMF환란 이후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삼성=안정된 직장’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았다. 조 교수는 “삼성의 생산기지로 여겨졌던 수원에서 노조 설립 운동이 주도적으로 나타난 이유는 IMF 이후 연구개발 부서를 제외한 사업부들이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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