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유지의 조건이 되는 발전

‘잘사는 평화’를 찾아서[4] 김승국l승인2007.11.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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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John Rawls)는 ‘모든 인간은 효용의 극대화를 겨냥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을 부정하고 ‘어떤 사회가 민주적사회로서 시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자유, 불리한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회원리의 윤리성 문제를 제기한다.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효용주의를 최고로 삼은 사회이론(합리적 선택론)에 따라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누적된 사회제도의 기초를 이룬다는 생각)에 대하여, 사회 그 자체의 성립의 기초를 이루는 자유·기회의 평등·약자에 대한 배려를 요구한 점에서, 롤스의 효용주의 비판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롤스의 '공리=효용주의 비판'은 기본적으로 서구전통의 개인주의적 자유·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하여 복지사회의 일체성을 지키려고 의도하는 규범적 논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효용주의 비판을 더욱 진전시킨 사람이 아마티아 센이다. ‘Entitlement'(권리의 원인·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의 구매력, 갑자기 일어나는 권리의 박탈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능력)과 ‘Capability'(잠재능력)에 바탕을 둔 아마티아 센의 효용주의 비판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권리의 원인과 잠재능력

‘Entitlement'는 인간의 권리에 의거하여 인권을 보장하는 물리적 기반을 지칭하는 개념인데, 어떤 사람의 권리행사에 의해 타자가 Entitlement를 상실하여 빈곤·기아가 일어나는 일이 있다. Entitlement란 권리의 행사에 의해 획득하거나 상실하는 재화 서비스의 지배 또는 그것들에 접근하는 정황에서 단순한 규범적 개념이 아니다.

어떤 인간의 Entitlement 정황은 그 인간의 기본활동(functionings)을 결정하게 된다. 인간의 기본적 활동이란 충분한 영양섭취, 요절의 방지, 질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의료를 받는 등 삶과 관련된 기본적인 활동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행복하며 지역생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의 조합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의 잠재능력(capability)이 명백해지는 것이다. ‘Capability’란 인간이 기본활동의 선택을 통하여, 여러 가지 가능한 생활 속에서 선택해가는 것을 가리킨다. 기본활동을 실현시켜가는 능력은 ‘인간의 후생=잘사는 생활’(well-being)을 실현시키고 더욱 잘사는 생활의 달성 여부는 기본활동의 선택을 실현하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다.

김상택 기자
개인의 자유&인권을 기초로 한 개별적인 지역 사회집단의 잘사는 생활 잘사는 평화는 간단하지만 지향점에 놓을 화두다. 지난 5월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을 접어 의견판에 붙이는 반전반핵평화 동아시아국제회의 참석자.

아마티아 센은 경제성장을 다루는 통상의 경제학이 빈곤·곤궁·잘사는 생활·기본적 필요의 충족·생활의 질 등 인간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답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개발 경제학이 이런 문제를 과제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한다.

개발 경제학은 결국 사람들이 얼마나 더 잘사는 생활·잘사는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윤리적인물음에 대답하는 학문이며, 기본활동의 달성 여하와 관련되어 있다. 기본활동은 단순히 재화·소득에 의한 행동(doing)이나 상태(being)의 실현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본활동의 조합에서 어떤 조합을 선택하는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 이처럼 기본활동의 달성·활동범위의 확대를 개발이라고 생각한다면, 개발/발전은 조합을 선택하는 자유의 확대에 다름 아니다.

아마티아 센의 ‘경제개발/발전’ 담론은 거시경제의 성장론에서 크게 벗어나 개인의 자유·인권을 기초로 한 개별적인 지역·사회집단의 잘사는 생활·잘사는 평화에 관한 것이다. 잘사는 생활·잘사는 평화를 위한 개발·발전 담론이 아마티아 센의 인간 발전론의 핵심이다. 아마티아 센은 인간발전 중심의 평화주의 노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아마티아 센의 인간발전론은 개인 차원의 잠재능력(capability)을 과제로 삼기 때문에 민중참여, 시민사회의 개발주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펴낸 ‘Development as Freedom’에서 개인의 자유와 (이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의 관련을 다루고 있으나 정책환경 문제(공공정책·비영리 활동의 연결 문제)가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또 다른 발전’은 가능하다

'development'를 개발로 해석할 때 개발의 주체와 객체가 달라 타율적·외생적·외발적인 어감이 있으나, 발전으로 해석할 때 발전의 주체와 객체가 일치하므로 자립적·내생적·내발적인 어감을 준다. 어감상 ‘발전’에는 이미 ‘내발적 발전’(endogenous development)이 내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발적 발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화론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개발과 서구형 근대화가 동의어로 파악되는 단선적인 개발론 즉 서구형(특히 미국형) 개발이 유일한 개발이라는 논의에 대한 대항 담론 중 하나가 내발적 발전론인바 ‘또 하나의 발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대화론은 미국형 근대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한편 이를 뒤집은 종속론 역시 미국 중심의 신식민지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양자 모두 국제관계를 단일한 단계적 발전계(發展系) 또는 착취·피착취의 위계체계로 보는 점에서 비슷한 형태이다. 양자의 공동된 특징은 각각의 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독립변수로 평가하지 않는데 있다.

1970년대에 풍미했던 근대화론에 대항하여 각 지역·공동체에 자기 고유의 자원·문화·독창력에 대응한 발전의 길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선전-후진의 단선적 발전의 길을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계통의 길을 걷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내발적 발전론은 1990년 전후부터 새롭게 일어난 지역주의 발전론의 이론적인 지주가 되었다. 세계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국가의 경계가 낮아지고 새로이 지역주의가 발흥하고 있다. 이 지역주의는 세계화에 대항하여 유럽이 소규모 세계화(mini-globalization)를 만들어내는 측면, 자기의 자원·문화·독창력를 중시하는 내발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내발적 발전론보다 약간 늦은 1980년대 중반에 새롭게 등장한 개발 패러다임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패러다임이 있다.

이를 평화와 관련하여 언급하면, 로스토우(W.W.Rostow)의 5단계 경제성장론(전통적 사회 단계→이륙준비 단계→이륙단계→성숙 단계→고도대중소비 단계)을 수용한 제3세계 국가들의 평화 상실(peacelessness)에 대한 평화경제의 대안으로서 자력갱생의 내발적 발전론이 등장한 측면이 있다.
갈퉁은 자력갱생의 내발적 발전론이 평화유지의 요건이 된다고 강조한다. 갈퉁은 부자 나라 사람들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현재의 생활양태를 변경하는 것이 긴급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제3세계 나라들이 석유 등의 귀중한 에너지 자원을 자국에서 정제하여 소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원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을 거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선진 공업국들이 현재의 고도 소비생활 양식을 유지하려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활양식의 단순화, 자국에서 얻을 수 있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태양열·지열·풍력·수력 등)의 활용은 평화유지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선진 공업국들도 자력갱생의 내발적 발전의 길을 긴급하게 모색해야한다.”

내발적 발전의 5가지 측면

지금까지 내발적 발전의 총론을 기술했으므로 이제 각론에 들어간다. ‘내발적 발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하마슐트 재단이 지난 1977년에 출판한 ‘또 하나의 발전’은, ‘악성 개발(maldevelopment)을 낳는 경제성장 우선형의 발전’을 대신하는 ‘또 다른 발전’의 내용으로서 아래의 5가지 측면을 제시한다.

①기본적인 필요에 관련되어 있다(need-oriented)
이는 발전의 목표가 재물의 증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정신적인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한다. 오늘날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피지배·피억압 대중의 의식주·교육·위생 등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게 과제이다.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인간이 자기표현·창조·평등·공생 등의 필요,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필요를 충족시켜 가는데 있다.

②내발적이다(endogenous)
이는 스스로 주권을 행사하고 자기의 가치관·미래전망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의 내부에서 생기는 발전의 모습을 가리킨다. 이러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단선적인 것이 아니고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경제사회 단위의 역사적?구조적 정황에 따른 복수의 발전 모델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발전 모델의 복수성에 대하여 존중해야한다.

③자립적이다(self-reliant)
내발성의 기반은 자립성이다. 각 사회의 발전은 각각의 자연적·문화적 환경 아래에서 해당 사회구성원이 지닌 활력을 생기게 하고 그 경제사회가 가진 자원을 이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한다. 자립형 경제의 형성은 국민경제·국제경제(집단적 자력갱생)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근간은 Carey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역경제의 자립성이 핵심이다.

④생태적으로 건전하다(ecologically sound)
지배적인 경제성장 우선형의 발전에서는 환경보전 측면이 자주 무시되고, 자자손손의 세대가 향유할 환경자원?생태계를 파괴하고 다음 세대뿐 아니라 현재의 세대의 빈곤화를 초래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또 다른 발전’은 지방적인 생태계에 다음 세대의 이용에 대한 배려를 추가하며 현재의 세대?다음 세대가 함께 환경자원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고 이를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을 도모한다. 이와 동시에 적정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모든 자원에 대하여 사회성원 모두가 공정한 이용기회를 보장 받는다.

⑤경제사회 구조의 변화에 바탕을 둔다(based on structural transformation)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의사(意思)·정책결정에 참가하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기 위해서, 사회관계·경제활동·경제활동의 공간적인 분포·권력구조 등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농촌·도시에서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며, 이러한 경제사회구조의 변화가 없이 ‘또 하나의 발전’을 세계적인 규모로 달성할 수 없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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