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은 최근 전국한부모가족지원단체네트워크,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함께 ‘한부모 가족’ 생활권 보호 등을 위한 5대 요구안을 정부와 정치권에 촉구하며 사회적 인식 확산에 나서고 있다. △한부모가족 통합지원시스템 구축 △직업교육기회 및 취업연계 확대·직업훈련기간 동안 생계비 지원 △저소득 모부자가정 지원 대상 한부모 소득기준 상향조정·저소득 한부모에게 최초 2년간 ‘한부모 자립지원금’ 지원 △저소득 한부모 및 자녀에 대한 의료보호 확대 △주거안정을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 등이 그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한부모로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생각보다 많다. ‘한부모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여성한부모 희망쑥쑥 편지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된 민병순 씨의 수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울지 않고 이제 이런 글도 쓸 날이 오다니 웃음이 난다. 저 이렇게 살아요.

#10년의 흔적이 없어진 날

꼭 4년 전이에요. 집으로 등기 하나 날라 왔습니다. 예상도 못했고 준비도 못했는데…. 하루 아침에 모든 게 없어졌다는 내용이었죠. 장마를 앞두고,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었어요. 15일 만 있으면 방학이었죠.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어떡하든 움직여야 했죠. 내용도 모르고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었고 그저 대답 없는 메아리만 울릴 뿐….

집을 비우고 나가야하는 날이 왔습니다. 전 짐을 임시로 보관하기로 하고 트렁크 가방 하나 끌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당장 갈 곳도 없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 1학년 아이가 시험 중이라 학교는 보내야 했죠.

아이들에게 잔돈을 쥐어주고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 도서관으로 오라고 말을 했고 등교를 시켰죠. 보름만 참으면 방학이니 그 때는 할머니 집으로 가자며 보름만 참자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4명에서 3명의 가족으로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드러난 어두운 그림자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 후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잘 가지도 않던 낯선 도서관. 일단 앉아서 어디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캄캄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남편을 수소문 했지만 연락은 닿지 않았고 무섭기만 했습니다.

내 전 재산인 가방을 도서관 사물함에 집어넣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집에 온 우편물을 가지고 직접 알아보고 왜 집이 국가에 공매가 되었어야 했는지, 분당으로, 서울 세무소로 뛰어다니니 그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도박에 정신을 팔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야 필름처럼 확연히 드러나는 현실. 내 이름으로 모든 걸 만들어 내 앞으로 설정이 되어있어 제 집이 공매로 인해 공중분해 된 것입니다. 여기저기 내 이름으로 모든 게 저질러져있었습니다. 난 본의 아니게 경찰서로 세무서로 불려 다녔죠. 가는 곳 마다 저를 책망하기 보다는 모두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나의 10년 추억과 사랑이 끝나가고 있었죠.

#너무 어리석은 나

너무 안일하게, 나약하게, 믿었던 제가 죽이고 싶도록 싫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전화도 되지 않았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제 앞에 나타나서 하는 말은 변명과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준 생활비도 친정아버지 카드를 사용한 것이었고 그것 또한 밀려 있었죠. 끝없는 거짓말…. 거기에 오랜만에 본 눈빛은 우리의 가족이 아닌 낯선 눈빛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시간에도 아이를 데리고 도박장에 갈 정도였습니다. 아이에게 ‘엄마에게 말하면 너 다시는 안 본다’고 협박을 했죠.

#또 한번 버려진 아이들

그 여름, 헤어졌습니다. 약속을 했죠. 아이는 잘 키우겠다고 하길래 위자료도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 사회활동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쉽게 5분만에 끝났습니다. 아이를 보지 못한 며칠이 지나고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엄마십니까. 여기 ○○찜질방인데요, 10일 넘도록 나가지도 않고 있거든요… 저 그리고 아이가 찜질방에서 손님 돈을….”

그렇게 다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 아이들과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엔 친정 식구들이 저희를 멀리했습니다.

#제2의 집과 아이들의 후유증

시원한 가을이 왔지만 여전히 우리 짐은 임시 콘테이너에 있었고, 잘 곳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죠. 잠은 근처 여관에서 임시로 자기로 했고, 낮에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가까이 사는 오빠한테 잠만 재워 달라고 말 했지만 조카가 고등학생이고 우리아이들은 초등학생이라 시끄러워 올케가 싫어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학교를 보내고 난 다음 난 도서관에서 '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의문을 가지고 책을 미친 듯이 읽었고, 중간에 전자정보실로 올라가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아이들은 방과 후 도서관으로 와서 책보고 숙제를 하고, 도서관이 끝나면 김밥 한 줄을 셋이 나누어 먹고 여관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1학년 아이는 학교에서 설사를 시작해서 매일 옷을 가지고 불려갔습니다. 4학년 큰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이 얼굴에 번져 모자로 가려야 했고, 병원을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잔인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공부할 때 우리 아이들은 알 수 없는 병과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으로 아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 전화하면 받지도 않고 온갖 욕만 들어야 했던 아이들…. 책을 보면서 눈물 흘리던 모습. 지금도 아픕니다.

#아이들의 몫 그리고 경제적 고통

큰아이가 화가 나서 돌아와서 말합니다. "엄마 수업시간에 쪽지가 날아와요. 너네 이혼했다며 엄마랑 산다며 사실이야?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고."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그저 책을 읽게 만 해줄 뿐. 그 땐 저도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라 뭐라 말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가족사진이 필요하다고 내 놓으라 합니다. "가족사진 없는데 어떡하라고" 화가 났습니다. 우리끼리 찍은 사진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안된답니다. 아, 이렇구나. 이혼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는구나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방 하나를 겨우 얻어서 짐을 옮기고 새벽엔 신문배달을 했고, 잠깐 자다가 오후엔 학원 강사 자리를 구해서 11시까지 일을 하고, 주말엔 편의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학원도 잘 되지 않아 금방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했고, 점점 아이들이 귀찮아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리는 집안일, 늘 허기진 아이들, 주말만 되면 쓸쓸해하는 아이들, 밖으로만 도는 아이들….

명절이 와도 갈 곳이 없습니다. 친정도 가지 않습니다. 세뱃돈 많이 받았다고 친구들이 말하면 화가 난다며 거칠어지는 아이들. 점점 지쳐가고, 저금은 할 수도 없고, 미래도 보이질 않습니다.

아이가 이빨이 깨지는 사고가 나서 부어두었던 아이 보험이 생각나 보험회사로 전화했더니 ‘이미 몇 달 전에 아빠가 해약해갔다’는 말을 들어야했죠. 기가 막혔습니다. 아이 앞으로 들었던 적금도 모두 해약해갔더군요. 같이 살지 않아도 적금이나 저금을 해약해 쓸 수 있다 하더군요. 기가 막혔습니다. 아이 적금까지…. 아이가 그렇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었어요.

한국여성단체연합

민병순 씨(오른쪽)가 지난달 7일 열린 '여성한부모 희망쑥쑥 한마당'에서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왼쪽)로부터 편지공모전 최우수상 상장을 전달받고 있다.

#다시 도서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을 포기하고 싶어지고, 요구만 하는 아이들 때문에 지쳐갔습니다. 말도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 입이 나온 아이들 억지로 도서관으로 끌고 갔습니다.

겨울방학 때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자료를 찾아 박물관을 찾아다니기 시작하고, 무료행사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난 책에 의지하며 울었다가 웃었다가, 책을 읽으며 목록을 완성했고 아이들도 열심히 쓰고 적게 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도서관입니다, 이번에 가족다독상으로 선정되셨어요.” 별거는 아니지만 아이들도 나도 오랜만에 가져보는 웃음이었습니다.

큰 아이는 1등으로 중학교를 들어갔고, 작은 아이는 이제 4학년으로 학교에서 인정받는 ‘책벌레’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눈 뜨면 책을 보고 잘 때까지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난 지금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언젠가 책을 써보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4년 전 내게 찾아온 불행을 원망하며 세상을 향해 독을 품었었습니다. 현실 사회의 기본적인 세무, 상식, 경제 개념도 없었던 나. 안일하게 산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 내야 했습니다.

남을 의식하고 아빠얘기만 나오면 ‘지방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 전화가 옵니다. ‘아들을 가르치는 ○○과목선생인데, 어떡하면 그런 자신감을 가진 아이로 키울 수 있냐’고 내게 묻습니다. 우리 아이가 “전 지금 엄마랑 만 살고 있어요”라며 솔직하게 웃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며 엄마인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기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 거짓 행복을 만들지 않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꾸미지를 않고 지금도 충분히 견딜 수 있고, 자기 인생을 산다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지금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편한 건 아닙니다. 아직 풀어야 할, 겪어야 할 문제가 계속 내게 다가올 것입니다. 움츠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이혼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었던 아이들. 어쩜 더 아플지도…. 견딜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아직은 잘 모릅니다. 이 고통이 무엇을 얻게 했는지. 아들만 둘인 나, 언젠가 저 아이들도 내 곁을 떠날 것입니다. 떠날 때 엄마로 인해 떠나지 못하게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난 내 길을 갑니다. 세대주인 나, 나를 따라다닐 ‘이혼녀’라는 딱지…. 딱지를 가리고, 숨기고, 지우려 하지 않으렵니다. 나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 그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리라 결심합니다.

2007년 9월 20일 다시 시작하는 길에서
민병순

정리=전상희 기자

정리=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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