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나 토론회에서 시민운동위기론이 대두될 때마다 대안 가운데 하나로 풀뿌리운동, 지역운동을 꼽을 때도 ‘정말 그럴까?’, ‘중요한 것 같긴 해’, ‘하지만 나에게 맞는 활동은 아닐꺼야’라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십 수년 동안 한 동네, 한 단체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지겨워서 못 견딜 것 같아 일찌감치 지역운동은 생각도 안했다.
하지만 그에게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에너지와 밝은 기운이 늘 넘쳐났다. 무엇보다 그의 활동가로서 삶이 참 행복해 보였다. 한마디로 그가 퍽 매력적으로 보였고 나도 그런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역운동의 멋진 모델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친분이 있는 지역 활동가 분들에게는 그런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쑥스럽다. 그분들이 다 잊으셨길 바랄 뿐이다.
구청장은 남미로 외유를 다녀오고, 구의회는 제대로 구정감시의 기능을 다하지 않고, 초안산 자락에는 또 골프연습장을 만들겠다하고, 이랜드 사태는 계속되는 등 지역 단체들과 힘을 합쳐 이슈를 만들고 싸움을 한번 크게 벌어야 할 일들이 계속 터지고 있는데 그림이 잘 만들어 지지 않았다.
내 의욕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데 다른 분들은 아직 출발선에 서 있지도 않아 보였다. 나름대로 지역운동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동네에서 이런 상황이라니. 혼자 끙끙대다가 지치기를 몇 번 하고 나니 도대체 지역운동에 흥이 나지 않고, 사무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올 여름 3개월 남짓 기간 동안 나의 지역운동은 위기를 겪었다.
우연한 기회에 공감 대화라는 교육을 8주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교육 과정 중에서 자신의 욕구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에 나는 내가 왜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활동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다.
온갖 대의명분으로 포장된 겉치레를 치우고 보니, 주위로부터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나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지역운동의 변수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머리로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성과를 집착하고, 성과가 잘 안 나오니 활동 자체가 힘들었던 거였다.
좀 더 내 욕구가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더니 구청장이나 구의회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이 나를 행복하게 하거나 가슴 설레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활동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평소 접하던 모습들이 다르게 보이고, 나의 반응도 달라졌다. 대부분 지역의 활동가들이 그렇듯이 내가 사는 동네의 활동가들도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회의 진행이나 일을 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회의를 하다가 자식 키우는 일이나 남편과 있었던 일들로 빠지는 건 다반사다. 살이 빠졌다거나 예뻐졌다며 서로 치켜세우고,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반찬 솜씨를 칭찬하면서 뭐 재미난 일이 없을 지 머리를 맞대고 수다를 떤다. 이전 같으면 함께 수다를 떨면서도 내 머리 한편으로는 회의를 마무리할 것을 걱정을 했을 텐데 이제는 수다 같은 회의 속으로 빠져드는 게 마냥 즐겁다.
회의를 하는 건지 수다를 떠는 건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그것을 투박하더라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솔직히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지혜를 모아 함께 할 사람을 찾고, 마음이 모이면 작지만 그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동네 아줌마를 포함한 활동가들의 솔직한 수다로 시작한 모임에서 다음 달 저소득층이 많은 곳에 마을 도서관을 만든다. 운영은 수다에 동참했던 8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또 한 쪽에서는 2년 동안 청소년 체험학교를 진행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살려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그분들은 즐겁게 활동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내가 매력을 느꼈던 그 활동가도 무슨 ‘반대 운동’ 같은 것은 잘 안한다고 한다. 아직 나는 마음 한편으로는 구청이 잘못하는 거 지적하고, 난개발에 반대하는 일을 미뤄둔 것 같아 찜찜하다. 하지만 지역 활동 2년을 채워가는 내가 좀 더 긴 호흡을 가지려면, 지금 중요한 것은 지역의 변화라는 거창한 구호보다 내 욕구가 무엇인지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이창림 도봉시민사회복지네트워크 팀장
이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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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