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12. 울진 북면 징게골에서

“시제(時祭)는 동족집단의 결속과 위세 과시 의례” 남효선l승인2007.11.1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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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시월은 시제(時祭)의 달....한달 이상 지속

남효선
향촌사회의 음력 시월은 시제의 달입니다. 이때쯤이면 각 문중에서는 가을걷이를 끝내고 날을 받아 시제의례에 나섭니다. 시제는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전통제례로서 문중원의 결속과 향촌사회 내의 타 문증과의 위세를 재확인하는 동족 집단의례입니다.

음력 시월은 시사(時巳, 시제. 시향사)의 달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사일이 잠시 한가해지는 시월이면 각 문중은 시사준비로 분주해집니다. 문중의 최고 어른은 음력 시월 중에 날을 받아 자손들에게 시사 일을 알립니다. 이때쯤이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도 바쁜 일상을 하루쯤 뒤로 미루고 고향을 찾아 시향사에 참석하지요.

한국의 전통사회는 ‘효(孝)’와 ‘충(忠)’을 기본 가치로 국가나 사람살이의 질서를 가다듬고 또 이를 뿌리깊게 정착시켜왔습니다. 이 중 조상제례는 효와 충을 실천하는 실천질서이자 자신의 존재와 자신을 둘러싼 씨족집단들 간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존재확인 공간인셈이지요.

최근 호적법의 개정으로 과거 전통사회의 ‘부(父) 중심’의 엄격한 질서와 구분들이 모계를 동반하는 양성존중의 질서로 재편되어 새로운 보편적 질서로 나아가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향촌사회의 시월이면 시향사는 엄격한 통과의례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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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를 떠받쳐 온 조상제례는 시간과 공간을 깃점으로 다양한 명칭으로 치러져 왔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기제사입니다. 기제사는 대개 집안의 종손을 중심으로 4대까지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례의식입니다. 또 설날이나 추석에 지내는 차례 또한 기제사의 봉사(奉祀)범위 내에서 치러집니다. 이와는 달리 시사는 기제사의 봉사범위인 4대조까지를 제외한,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례입니다.

시사철이 다가오면 문중 내의 각 파(派)는 한 달 내내 시사지내기로 분주해집니다. 특히 그 해의 유사(有事, 집사)를 맡은 집에서는 온 가족이 시사제례를 모실 음식 장만에 눈코뜰새 없이 분주해집니다.

전통사회에서 시사는 각 가정의 의례가 아닌 집안이라는 씨족집단의 의례인 까닭에 많은 비용이 수반되었습니다. 때문에 각 문중에서는 시사를 수행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제답(時祭沓)’이나 ‘위토(位土)’를 장만하여 이에 대비해왔습니다. 곧 시제답이나 위토는 오로지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낼 시사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위한 토지였지요. 때문에 이같은 시제담이나 위토는 대부분 각 문중의 종손이 소유하여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농촌사회 인구의 대량 도시 이탈로 휴경농지가 증가하면서 시제답이나 위토가 묵자 최근에는 집안들끼리 비용을 갹출하여 시사제를 모시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시제는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례의식이라는 단순성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집안 내에서 자신의 신분을 주장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시제는 자신의 문중과 타 집안의 문중 간의 위세를 가늠해 보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반면 문중 전체가 참여하는 시사의례가 강화되어 나타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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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사와 명절제사인 차례가 집안 내의 사회적 결속을 강조하는 의례라면 시제는 동족집단의 신분 결속과 위세를 확보하는 제례이자 문중원 밖의 향촌사회 내의 타 씨족집단에 대한 위세를 과시하는, 이른바 문중 차원의 대외 홍보용 집단의례인 셈이지요.

시사의 절차는 명절제사인 차례와는 달리 삼헌(三獻)을 하며 분향, 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삽시, 합문, 계문, 헌다, 철시, 사신, 철찬, 음복의 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울진지방에서는 위의 절차가 모두 끝나면 반드시 산신제(山神祭)를 지냅니다. 산신제가 끝나면 시사의 모든 절차가 끝나는데 재사(齋舍)가 있을 경우에는 재사에서 음복을 하며 재사가 없을 경우 묘소 앞에서 음복을 합니다. 음복이 끝나면 제물을 참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를 ‘봉시준다’고 합니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시제를 지낸 뒤 고르게 나눈 봉시는 당시 아이들에게 유일한 먹을거리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시제일이 되면 문중의 어른들 뒤를 좇아 집안의 아이들이 열을 지어 뒤따르는 모습은 당시의 정황을 가늠케 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마침 담양전씨 반정파의 후손들이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리 소재 조상 묘솔르 찾아 시제의례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울진 북면 신화리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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