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잘사는 평화’를 찾아서[5] 김승국l승인2007.11.1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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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내발적 발전’

내발적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료 관계상 아시아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내발적 발전의 사례를 소개한다. 아시아 지역의 내발적 발전 사례를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①타이의 개발 승려들
타이의 사회참가형 불교(socially engaged buddhism)를 선도하는 승려들은 아래로부터의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국가체제와 밀착한 보수불교(상좌부 불교)를 혁신함으로써 상좌부 불교 특유의 개인적 해탈에서 벗어나 사회적 실천, 사회개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깨달음(진리)의 내용을 바꿨다. 즉 위로부터의 개발에 대항할 수 있는 마음의 개발, 인간개발 노선을 취했다.

<시민사회신문 DB>
아시아 지역의 내발적 발전 노력은 평화패러다임에 기초한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에 있었던 국내 버마 평화단체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 장면.

②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운동(Sarvodaya Shramadana Movement)
이 운동은 스리랑카의 전통문화인 불교와 간디주의에 기반을 두고 개인·가족·지역·국가·세계 등 모든 차원에서 사람들의 ‘깨달음과 행복’을 겨냥한 비폭력 운동이다. 사르보다야는 ‘슈라마다나’(shramadana, 능력을 서로 나누어 가짐)라고 불리는 노동 캠프를 조직하고 민중이 주체적으로 개발에 참가하여 자비·지혜 등의 불교적 가치·정신문화에 눈뜨는 것을 장려한다. 최근의 프로그램으로 빈곤경감(PEEP), 여성·빈곤층의 능력 배양, 유아보육(ECDP), 농촌기업(REP), 관리능력 연수(MTI), 농업기술 서비스(SRT), 수입향상(IGP) 등을 중시하고 있다.

③간디와 프레리(Paulo Freire)의 이론에 따른 교육(교육제도 밖의 지역·사회 교육), 방글라데시의 BRAC(Bangladesh Rural Advanced Committee) 교육 프로젝트,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 방식의 교육

④도시의 내발적 발전: 도시 슬럼(slum)의 자립운동
아시아의 전 지역에서 근대화와 더불어 폭발하고 있는 슬럼의 주거문제와 관련하여 주민운동의 차원에서 조명한다. 슬럼에 거주하는 도시빈민층은 ‘주거권’이라는 새로운 인권개념을 내걸고 다양한 주거생활·생활문화를 창조하면서 주민참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민중조직(PO)과 주민조직(CBO)의 활동을 스리랑카·타이 등에서 검증할 수 있다.

⑤인도 서북지방의 '자영 여성노동자 협회‘(SEWA): 최빈곤 여성의 능력배양 프로그램
인도 서북지방의 구자라트 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SEWA의 최빈곤여성 자립·능력배양 운동이다.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는 간디주의자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구성원의 대다수가 차별받는 문맹자이며 일터에서 착취 받는 하위 카스트 여성들이다. 이들 여성들은 노점상·행상, 가내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일하고 있다. SEWA는 이들 여성 영세 자영업자들의 협동조합을 운용하고 있다. SWEA의 협동조합은 간디의 스와데시(지역 자급) 정신을 따르고 있으나 내발적 발전운동에 다름 아니다. SEWA는, 하위 카스트 여성의 노동권, 생산의 소유권을 옹호하고 여성들의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여성의(더 나아가서는 지역사회·국가의) 경제적 자립에 공헌하고 있으며,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는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⑥적정기술의 창출에 주력하는 NGO운동
내발적 발전을 경제기술의 측면에서 떠받치는 적정기술, 중간기술을 인도네시아 중부지방의 현지인에게 습득시키는 운동이다.

⑦필리핀의 지역산업
필리핀의 뿌리 깊은 경제자립론, ‘또 다른 발전론’과 관련하여 지역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필리핀은 1950년대 말부터 민족적 공업화론, 경제자립론의 흐름이 강한 탓으로 1980년대 이후의 세계화론·IMF의 구조조정론에 비판적이다. 공예품·식품·구두·의류 등의 지역산업이 필리핀 경제를 밑바닥에서 지탱해주는 존재로서 중요하다. 실제로 지역산업이 제조업 생산물의 99%, 고용의 50%, 부가가치의 25%를 차지하므로 내발적 발전의 측면에서 지역산업을 육성하는 운동이 매우 중요하다.

⑧인도네시아 발리 섬에 있는 촌락의 내발적 역동성
발리 섬의 농촌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세계는 사회집단·사회관계의 네트워크가 중층적으로 짜여 있거나 상호 협동하는 등 내발적 변화의 에너지를 배출하고 있다. 발리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정치적·종교적 측면에 직접 관여하는 공동체 조직인 반자르(banjar), 수바크(subak)라는 수리조합(관개용 수로의 건설·정비 등을 에워싼 의무·경비 부담을 나누는 조합), 쁘막산 뿌라(pemaksan pura)라는 사원의 신도집단(특정의 사원을 유지·관리하거나 제의를 시행하는 신도집단), 수카(seka)라는 자원봉사 집단을 통해 내발적 발전의 요소를 찾을 수 있다.

⑨태평양 도서(島嶼)지역의 사회 자립 가능성
태평양의 도서 지역은 자원의 부족 때문에 대외 의존도가 높고 세계 경제체제의 주변부에 위치 지워지는 운명에 빠져 있다. 요즘 이 지역에서 내발적인 자립을 강구하기 위한 도서 사이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새로운 자립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개발 지상주의 패러다임’ 비판

앞에서 설명한 참가형 발전·인간 발전·내발적 발전은 ‘개발 지상주의(至上主義) 패러다임’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 ‘자력갱생을 통한 평화 패러다임’을 제창한다.

개발 (지상주의) 패러다임은 경제개발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며 달성 가능한 정책목표라고 생각하는 관념 틀이다. 개발이 실시되는 지역에 사는 인간들의 생존환경(subsistence)이 맨 먼저 희생되는데, 이런 희생도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이와 같은 개발 지상주의 패러다임을 전제로 개발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내걸고 국가적인 동원을 도모하는 이데올로기가 개발주의(developmentalism)이다.

개발 최우선이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개발 지상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발주의에서 개발의 주체는 국가이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정책목표를 설정할 때 ‘개발 패러다임’을 은폐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었다.

개발주의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즉 자본주의)를 기본 틀로 하지만 산업화의 달성(즉 1인당 생산의 지속적 성장)을 목표로 하고, 그것에 도움이 되는 한 정부가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용인하는 형태의 경제시스템이다.

개발주의는 명백하게 국가(혹은 유사한 정치적 통합체)를 단위로 설정되는 정치경제 시스템이다. 그 경우, 의회제 민주주의에 대해서 얼마간의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세계화 시대의 개발 지상주의 패러다임은 구조적 폭력을 낳는 온상이므로 이를 지양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개발 지상주의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운동이 요청된다. 이 운동은 ‘민중들이 자력갱생하며 잘 사는 평화’를 증진하는데 기여해야한다. 민중들의 ‘Subsistence’(자연 생태계의 속에서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재생산해가는 틀, 개인과 집단의 본래성을 발현시켜 영속시키는 조건의 총체) 보호를 제1의 목표로 삼는 평화경제의 틀을 마련하는 운동이 되어야한다.

‘풍요함=쾌락’을 지향하는 경제평화(Pax Economica)가 아니라 폭력(개발 지상주의의 구조적 폭력)을 없애는 민중평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①경제평화에 대항하여 ‘Subsistence에 의존하는 민중평화’를 실현하는 담론을 내와야한다. 이 대항담론은 ‘근대화·개발주의·국가’를 상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 ②쾌락 지향의 개발 지상주의·개발 패러다임을 취하지 않고 구조적 폭력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개발 패러다임의 모순과 구조적 폭력을 동시에 없애는 작업이 생각보다 어렵다. 이반 일리치의 평화론에 구조적 폭력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한편 구조적 폭력의 대가인 갈퉁이 개발 패러다임 비판에 소홀한 점을 미루어볼 때, 개발 패러다임과 구조적 폭력을 연결지우며 평화를 증진하는 중요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개발 지상주의가 약속하는 쾌락을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은 욕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③개발 지상주의 패러다임 대신에 평화 패러다임을 삶의 가치로 삼는 평화운동을 의식적으로 전개해야한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운동에 앞서 개발 중독·서구지향적인 개발주의 중독에 걸려 있는 가치관부터 고쳐야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은 노릇이다. ‘비서구(非西歐) 제3세계 운동의 기수인 사르보다야 운동이 서구 근대(제국주의)의 주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서구 지향성의 중독은 심대하다. 서구 지향성의 중독에 걸려 있는 한 개발주의의 중독에서 벗어나 민중평화를 지향하기 힘들다.

평화·민중평화(민중을 위한 평화)·평화경제를 말하려면 개발 중독부터 제거해야 한다. 개발 광풍을 잠재워라. 그렇지 않으면 개발에 의한 침략(삶·생활세계에 대한 침략)을 허용하게 된다. 개발중독 상태에서 평화를 위한 개발(발전)을 거론조차 할 수 없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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