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주고 파는 시장 ‘아고라’

철학여행까페[13]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7.11.26 10:1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영원한 철학의 고향 아테네 (2)

이동희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있는 아고라

“아테네는 이제 그리스를 가르치는 학교이다.”

페리클레스가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가 된 아테네를 두고 한 말이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극적인 승리를 이룬 후 그리스 전체의 중심이 되었다.

파르테논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의 문화적 중심이라면, 아고라는 아테네의 민주정치의 중심이다. 과거 군사정권시절에 우리나라 대학교에서도 대학 광장을 ‘아크로폴리스’라고 명명하던 때가 있었다. 누가 그렇게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과거 군사 정권시절에 민주주의를 열망하면서 민주주의의 상징을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와 연관시켰던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상징은 아크로폴리스가 아니라 ‘아고라’다.

아고라를 가려면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 와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거쳐 내려가던지 아니면 모나스티라키 광장 쪽으로 나 있는 문을 지나 아크로폴리스 쪽으로 가면 된다.

시장이자 민회의 장소

아고라는 어떤 곳인가? 아고라는 물건을 주고 파는 시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말’을 주고 파는 시장이기도 했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시장’ 뿐만 아니라 ‘민회, 민회가 열리는 장소’를 뜻했다.

아테네의 민주정체에서 민회를 대변하는 기관은 500인 협의회(Boule)였다. 500인 협의회의 회원은 상임의원들로 아테네의 10개 부족에서 각각 50명씩 추첨으로 선출되었다. 협의회는 민회를 소집하고, 민회의 일정을 주관했다.

국가의 중요한 사안들은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에서 결정되었다. 민회는 당시 행정을 책임진 10명의 스트라테고이(장군들)들이 정치를 잘못하는 경우 그들을 추방하거나 사형을 처할 수도 있었다. 또한 민주정체가 위협받지 않게 하기 위해 참주가 될 만한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도시 밖으로 추방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아고라는 정치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아고라는 시장으로서 경제의 중심지 역할까지 했다.

그러니 아고라에는 항상 시민들로 북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개 시민들은 거주외국인, 노예, 어린이, 여자를 제외한 성인 남성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관습에서 시장은 남자들이 봤다. 전쟁을 통해 확보된 수많은 노예들 덕분에 집안에서 별로 할 일이 없게 된 아테네 시민들이 자주 가는 곳이 아고라였다. 페리클레스는 가뜩이나 소일거리 없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일당을 지급해 민회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아고라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이었다. 시장에서 흥정을 할 때도 말이 중요했지만, ‘민회’에서는 더욱 중요했다. 민회에서 정책 입안자는 스스로 나서서 시민들을 설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반대자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켜야만 했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아테네의 법정에서도 말은 무척 중요했다. 아테네에서는 매년 6천명의 배심원단이 추첨으로 선출되었다. 재판이 열리는 날에는 이들 가운데 추첨으로 배심원을 선정했다. 배심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인지는 재판의 경중에 따라 달랐다. 소크라테스 재판 때에는 501명의 배심원들이 재판을 담당했다.

이동희
아고라에서 바라다 본 파르테논 신전

당시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소한 당사자가 직접 나와 고소한 이유를 밝히고 형량을 제시하기도 했고, 고소당한 피고도 직접 출두하여 스스로 변론을 펼쳐야만 했다. 그러니 고소인이든 피고소인이든 말재주가 없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고와 피고에게 법정연설문을 대신 써주는 법정 연설가 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원고나 피고가 법정연설문을 직접 읽어야만 했다.

소피스트의 등장

이렇게 아테네의 사회생활에서 말이 중요해 지자 이에 부합해서 나타난 철학자들이 소피스트들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아고라에서 말을 파는 자유 직업인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여러 가지 지식을 돈을 받고 전수했지만 그래도 가장 수요가 많은 것은 사람을 세련되게 설득할 수 있는 말 재주, 즉 웅변술이었다. 요즈음 논술 교육 수요가 많은 것처럼 아테네에서 출세하려면 말을 잘해야 했다. 그들은 비싼 돈을 받고 웅변술을 가르쳤다. 당시 가장 비싼 수업료를 받았던 소피스트는 프로타고라스였다.

에우아틀로스라는 사람이 프로타고라스에게 수업을 받기로 했다. 그는 프로타고라스의 수업료가 비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수업료를 내지 않으려고 이런 조건을 처음부터 스승에게 내걸었다.

“내가 첫 번째 소송 사건에서 이기게 되면 스승의 가르침이 참된 가르침이라는 것이 증명되니 그때 수업료를 내겠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를 가르쳤다. 수업이 다 끝난 후에 프로타고라스가 수업료를 요구하자 제자 에우아틀로스는 수업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첫 번째 소송 상대자로 스승을 법정에다 고소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내가 소송에서 이기면 비싼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내가 소송에서 지면 가르침이 잘못 된 것이니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프로타고라스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에우아틀로스여, 그대는 어떻게든 수업료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길 걸세. 자네가 진다면 패소했으니 법의 심판대로 내게 수업료를 내야 할 것 아닌가? 반대로 자네가 승소했다고 하세. 그러면 약속대로 수업료를 내야하지 않는가?”

이동희
민회의 500인 협회 회관이 있던 자리인 Metroon
이 프로타고라스의 일화는 당시 소피스트들이 사용했던 현란한 말기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두 사람의 논리는 결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각자의 주장대로 따라 가면 서로 상반되는 결론에 도달하기에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이 발생한다. ‘진리’ 나 ‘진실’ 보다는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든 이기려 하는 말기술에 치중하면서 소피스트들에게는 궤변가라는 악명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소피스트라는 말은 원래 지(知)자, 현자를 뜻했다. 소피스트는 어떤 분야에 깊은 지식이나 지혜를 가진 사람을 뜻했다.

유명한 소피스트 철학자로는 앞서 소개한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등이 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인간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다. 인간은 각기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해석한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관점은 절대적일 수 없고, 다양하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프로타고라스처럼 소피스트들은 상대적 입장을 견지했다. 법을 놓고서도 소피스트들은 다양한 상대적인 의견들을 나타냈다. 트라시마코스는 실정법은 약한 자를 억압하는 권력자의 도구라고 주장했다. 칼리클레스는 이에 반대해 법률이란 강자에 대한 약자의 보호막이라고 주장했고, 리코프론은 법 질서를 시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상호적인 보장으로 보았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바탕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상대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소피스트들의 철학에는 그리스 민주주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소피스트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진리나 절대적 도덕적 가치를 신봉하지 않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사실 소피스트들은 일종의 자유사상가이자 계몽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철학의 주류가 되면서 소피스트들은 자유사상가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 점은 플라톤이 민주정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들 덕택에 다양한 의견과 활발한 토론 문화가 아테네에서 꽃을 피웠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열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집요하고도 능란한 ‘말’ 로서 소피스트들을 곤궁에 처하게 한 소크라테스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