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길을 알려주다

내 인생의 첫 수업[24] 조명래l승인2007.11.28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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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말한 게 하버드 대학교수가 말한 것과 비슷하네.’

이 말은 나의 장인이자 은사이신 고 강민 교수(전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정치학회 회장)가 지난 1977년에 쓰신 논문 초고를 학부 3년생이던 나에게 읽게 하고 말한 소감에 대한 논평이었다.

일개 학부생이 교수님의 원고교정을 봐주는 것도 영광인데, 깊은 지식 없이 읽고 내뱉은 몇 마디를 세계적인 석학이 언급한 것에 견주어 주다니. 참으로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그러면서 내심으론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 대학교수가 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대학시험에서 낙방이란 실패를 학자의 삶을 통해 길게 넘어가고자 했던 오기가 그러한 결심을 하게 된 까닭이었다. 교수님들 중에 훌륭한 분을 사표로 삼으려 했고, 학자로서 그 분들의 삶의 방식을 닮아보려고 했던 것은 그러한 사연 때문이었다.

"하버드대 교수 말과 비슷하네"

나는 학교에서 학자로서 가장 많은 존경을 받던 강민 교수의 수업을 빼 놓지 않고 들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늘 앞자리에 앉았고 또한 도발적인 질문을 하곤 했다. 교수님의 눈에 일찍 들게 되면서 학부생으로서 나는 연구조교와 같이 연구실과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책을 어떻게 읽고, 글을 어떻게 쓰며, 자료들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학자로서 가족생활은 어떠한 것인지 등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후에 학자의 길을 걷게 되는 ‘인생수업’은 교수님과의 대화와 논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공공정책과 관련된 국가론을 연구하던 교수님은 해외학계에서 출판된 학술지 논문, 잡지, 저작들을 늘 읽고 계셨다. 나를 만날 때마다 당신은 나를 앉혀 놓고 읽고 계신 학술논문이나 책의 내용을 소상히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또래 학생들에 비해 국제저널의 명칭, 학자들의 이름, 이론들을 일찍이 많이 알게 되었다.

교수님은 참으로 학문하시는 것을 즐기셨다. 세상이 돌아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개념과 논리로 탐구하는 ‘학문하기’의 즐거움을 교수님은 늘 몸소 실천하셨던 것이다. 나는 남다른 문답의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되면서 교수님의 그러한 학문하기의 기쁨을 온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중간에 내가 예의 도발적인 질문을 하곤 하면 이를 중심으로 문답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은 스승 플라톤과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눈 문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체온을 나눠준 스승의 진리

이런 와중에 교수님은 학회에 발표할 원고를 쓰면 내게 교정이나 내용에 관한 코멘트를 부탁하곤 했다. 내 지적이 하버드대 교수와 비슷하다는 말씀은 스승과 제자간의 이러한 관계 속에서 나왔다.
당시 교수님의 말씀이 각별히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나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신 점이었다. 이는 사람에 관한 단순한 신뢰가 아니라 선생님의 인간애 속으로 연약한 한 인간을 끌어들인 뒤 당신의 체온을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또한 그 말씀은 평생을 통해 터득한 학문의 의미를 후학에게 아낌없이 전수해주는 것이었다.

스승의 글을 읽고 오간, 이 문답이 내가 치른 인생의 첫 수업인 된 것은 말씀에 담긴 이러한 의미 때문이었다. 이 수업을 치른 뒤부터 나는 학자가 되기 위한 첫 관문으로 대학원 진학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덕분에 대학원 입학시험에서 전체수석을 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 수업의 진가는 내가 지금까지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의 길을 굳건히 걷고 있는 그 자체에 있는 것 같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

조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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