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13. 울진 빛내마을에서

울진 빛내 화전농꾼 칠구영감님의 죽음 남효선l승인2007.11.2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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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물려준 경관 속으로 걸어들어가다

이름이 뭐냐구 칠구여. 김칠구라고 불러. 나이가,
팔십일곱이여. 안태고향이 어디냐고. 어렸을적에
할매가 그러는데 쩌기 강원도 꼬치방우라 그러두구만
그러니까 일곱 살 먹던 해에 영월 꼬치방우에서
봉화 소천이라는델 왔구만

봄이 오면 어른들은 지난 가을 산비얄에 베어놓은
나뭇가지에다 불을 지펴
바람 잔잔한 날루다가 날을 받아
산꼭대기에서 밑으루다 불을 질러는 거여.
그러면 참꽃처럼 이쁘게 잘 타들어가지
한참 탄 연후에 밑에서 맞불을 놓아
그러면 널찍한 밭이 돼.

괭이루다 골을 파서 서숙을 뿌리지.
소가 어디 있는가. 그저 사람 힘으로 다 해내지.
산농사에는 서숙이 젤이야
서숙은 그래도 꽤 까탈스런 곡물이라서
그게 잘안되면 메밀을 뿌리지
달빛에 타들어가듯 환한 메밀꽃을 보노라면
한 시절 좋았던 때도 있었는디.

그러다가 서른 나던 해에 울진 큰빛내라는 델 들어왔어
산 임자는 나라인께
지금도 산간수들이 젤루 귀찮고 무서워.
울진와서 같은 화전뙈기 딸과 결혼했지.
딸 둘 아들 하나에 밤이면 장작을 내다팔고 숯도 구웠어.
숯이라면 박달남구가 젤이지

눈이 허리까정 쌓이는 날이면
살피를 신고 산돼지 사냥을 가능겨
어떤 해는 산돼지를 두 마리나 잡았네
커다란 단지에 고기를 잘게 썰어 간장에 재워두면
이태동안 고기걱정은 없어.

어는 봄날 만산에 참꽃이 허벅지게 피던 날
할멈이 세상을 버렸어. 참으로 슬프더구먼.
누가 볼세라 아무도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제.

어찌어찌 딸 년 둘을 시집보내고
지금껏 혼자 살아.
아니여 아니여 아들놈 하나 있는 거 그거 벙어리여.
낼 모레면 나이가 오십인데. 그 놈하고 둘이 살어.

육십팔년도에 무장공비가 들어 나라에서
지금있는 곳으루다가 소개촌을 지어줬는디
첫 해에 스무 가구가 이제는 두 가구만 남았어.

나라에서 보조금을 주는냐꼬. 아니여 그런거 없어.
이제는 산농사도 못해먹어. 그 놈의 산불 땜에.
외지사는 돈있는 사람들 와서 산판 많이 해먹었어.
그때사 쪽쪽 곧은 황장목이 얼매나 많았는데.

산이 젤인겨. 산전을 일굴 때는 작은빛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얼매나 깨끗하게 불을 놓았는디.
조상님 모실 적에는 집에서 소주를 고았어.
곧잘 노랫가락도 잘불렀는디.

여그 젊은이 아까 가져온 술 같이 먹고 가.
내 집이라 찾아 온 손님한테 찬물이라도
내집 거를 대접해야 되능겨

지금이라도 눈을 감을 수 업능게, 쩌그 저 벙어리
아들놈 땜이여.

-남효선 拙詩, 「해는 져서 어두운데」전문


남효선
울진 서면 빛내마을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화전농군들이 지르는 소리이다.

울진 금강송의 고장 빛내마을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건 소리이다.

울진 서면 소광리, 작은빛내 마을의 금강송 군락지에 들어서면 솔숲이 내지르는 너울을 가슴에 담고 평생 세상 바깥을 떠돌며 산을 지켜 온 화전농꾼들의 소리가 가슴 가득 밀려온다

붉은 빛 금강솔숲 길을 좇아 솔숲이 내지르는 너울을 가슴에 담고 평생 세상 바깥을 떠돌며 강토를 지켜 온 동해 변방 화전뙈기들의 소리이다.

남효선
울진군 서면 소광리(小光里), 작은 빛내 마을로 들어서면 솔숲이 뿜어내는 소리와 향내로 잠시 아득해진다. 이 아득함은 이내 작은빛내마을을 평생 가꾸고 지켜온 화전농꾼들의 땀 냄새로 가슴 가득 밀려온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저 뿌리내리지 못한 채 산으로 쫒긴 화전농꾼들은 이 땅의 또 다른 핍박과 수탈이다. 이들 화전뙈기들은 평생 산을 가꾸고 지키며 '산의 질서'를 만들고 '산의 경관'을 만들었다.

한국 근현대사 이후, 화전농의 거개는 ‘소작농’의 지위도 박탈당한 채 ‘생 목숨 끊을 수 없어 주린 배를 채우고 먹고살기 위해 산으로 들어 온’ 이 땅의 또 다른 핍박과 수탈의 이름이다.

이들 화전농꾼들은 ‘태어난 터전에서 발붙이지 못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산으로 들어와 산의 질서를 만들고 산의 경관을 만들고 산촌 모둠살이의 문화를 가꾸었다.

평생을 함께 해 온 할미가 세상을 버릴 때처럼 초겨울 산바람이 금강솔숲을 흔들던 날, 세상을 뒤로 한 ‘화전 농꾼 칠구 영감’의 구십 평생은 ‘생의 마감’이 아니라 ‘산이 물려준 질서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또 하나의 산의 경관’이다.

남효선 기자

남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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