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주동자’를 만나다

민주화 열망, 요동치는 버마를 가다[2] 버마=이유경l승인2007.12.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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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특파원이 돌아왔다. 어김없이 아시아 분쟁의 현장에서 글을 보냈다. 이번엔 민주화 열기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버마다. <시민사회신문>은 9월 항쟁 이후 다시 국제사회의 기억 밖으로 흘러가고 있는 버마의 이야기를 현지에서 생생하게 다시 들춰낸다. /편집자

이유경
한 승려가 랑군 최대 사원 쉐다곤 파고다를 걷고 있다. 지난 8,9월 시위의 주동 세력으로 주목 받은 버마 승려들은 군사정부의 종식을 입에 담는 등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88항쟁 이래 약 20년 만에 처음 목격된 8, 9월 대규모 시위 정국은 과연 얼마나 준비된 것일까? 기본권에 대한 탄압이 상상을 초월하고, 내부 동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취재 길에 ‘준비’가 없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몸통’이 있었다는 얘기다. 크든 작든, 세든 약하든, 어쨌든.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점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포코쿠 사태가(9월 5일 중부 버마 포코쿠의 시위 승려들이 폭행당하면서 전국적 시위에 불을 붙였던 사건) 터지면서 후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씩씩한 청년 셋은 가칭 ‘총파업 위원회’(GMC:General Movement Committee) 간부 일단이다. 사태가 터지면서 군부 못지 않게 ‘주동자’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나는 여러 경로로 거쳐 ‘세컨 라인’을 접촉한 후 그를 통해 이 조직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며칠 만에 인터뷰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그 간부들을 나는 랑군 시내 ‘안전한’ 한 가라오케에서 만났다. (다음 호 인터뷰 참조)

위원회는 9월 27일-통상 일본 기자 나가이 겐지가 사망했다고 언급되는?가장 강경한 진압이 펼쳐지던 바로 그 날 ‘각계 각층 인사’들로 긴급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다들 떠나는 조국에 여전히 남아 몸부림치듯 ‘민주화 음모’를 꾸며온 ‘잔존세력’들이 2005년 하반기부터 석방되기 시작한 ‘88세대’ 지도부들을 만나면서 ‘내부민주세력’으로 최근 1~2년 새에 조금씩 커왔음을 반증해주는 실체였다.

국제사회가 조루한 버마에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었지만, 지난 한 해 ‘88세대 그룹’에 의한 자잘한 시위도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여성활동가들도 대부분 88세대 그룹의 조직원들이다.

여기에다, "주민들의 기부로 먹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빈곤을 외면할 수도, 사회의 모순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한 승려의 말이 암시하듯 승복을 벗고 무장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물론, 상황이 야기한 반 강제적 전술이긴 하지만) 버마 승려들의 ‘투쟁 참여적’ 전통도 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군부는 ‘성역’과도 같았던 그 승려들을 군화 발로 무참히 짓밟으며 개별적 혹은 피상적으로 흩어져 있던 국민들의 분노까지 조직화 해놓았다.

이유경
샨 주 낭쉐지방에 저녁 보시행렬에 나선 승려들.

때문에 지난 8, 9월의 시위는 빠르고 거대하게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었다. 언론은 주로 랑군의 경우만 다루었지만 불어났던 시위는 버마 전역 66개 도시로 번졌고 최소 227건의 데모가 있었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이 참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NLD 당원, 28세)

"너무 신났고 무섭지 않았다."(NLD 여성위원, 40대)

"환상적이었다. 버마 국민들은 이 정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변호사, 60)

이렇게 말하는 이들 모두 총격 진압 이후로 두려움이 엄습한 건 사실이라고 꼬리표를 붙이긴 했지만, 그날의 감격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신났고 무섭지 않았다”

이렇게 시위대를 흥분시키고 시위확산의 도화선이 된 바 있는 승려들이 이번에는 나까지 ‘흥분’시켰다. 그들은 "이 정부가 끝장나길 원한다"며 여타 활동가나 조직들로부터 들어보기 힘들었던 ‘과격한’ 발언들을 뱉어냈다. 군부와 승려들간에 더 이상 화해조처가 있을 수 없음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권이 바뀌고 우린 그 민주적인 정부와 가난한 국민들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이 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교육과 경제가 얼마나 열악한 지를 우린 잘 알고 있다."

승려 폭행사건이 빚어졌던 중부 버마 포코쿠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승려들은 이렇게 단호했다. 그들은 탄쉐 장군과 아웅산 수치와의 대화를 지지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고 입 밖으로 내뱉은 유일무이한 세력이기도 했다.

실제로 만달레이 시민 타타(여, 26)의 말을 들어보면, 시위사태를 계기로 승려들은 더욱더 정치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녀는 이른 새벽 보시를 구하는 가정 방문길에 승려들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력 진압 이후 승려들이 수그리고 침묵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물론 많은 승려들이 도망 다니고는 있지만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정치화 되었다. 이 정부가 얼마나 나쁘고 잔인한지를 방문길에 말하고 다닌다."

지난 2003년 데파윈 학살 당시 아웅산 수치의 보디가드였고 그 사건 이후 6개월간 옥살이를 한 모조 아웅(28)은 시민들 역시 더더욱 의식화되었다고 강변했다.

"그전에는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정치 얘기를 이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쑥떡 대는 걸 들을 수 있다."

종합해보면, 시민들이 입 조심을 단단히 하는 것도 맞지만(특히 외국인 ‘여행객’에게), 동시에 군부의 잔학상을 새롭게 상기 받으면서 반정부 감정이 끝을 보고 있는 것도 틀리지 않은 얘기가 된다. 이렇게 8, 9월 시위사태는 버마 군부가 모든 영역의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장기적으로 보면 제 무덤파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시민들은 지금 ‘진짜 주동자’와 ‘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진짜 주동자’는 과연 누구이며 어디에 있을까?

‘때’를 기다리는 시민들

그 동안 국제사회와 언론은 아웅산 수치를 버마 민주화 운동의 ‘꽃’으로, 그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을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 주자로 묘사해왔다. 더 나아가 잔인한 군부가 해온 ‘짓’과 균형이 잘 맞지 않는 ‘모호한’ 비폭력 평화주의 노선만을 칭송하며 다른 주체들의 잠재력이나 노선을 서서히 매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마학생민주전선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19년간 무장투쟁을 벌여온 학생 군들은 그러나 비폭력 노선만을 칭송해온 국제사회의 태도와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정세를 타고 거의 모든 지원이 끊겨버렸다. 설상 가상, 최근 시위 정국에 고무된 민주전선은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노르웨이 엔지오의 지원마저 끊기게 생겼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래왔다. 버마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지해온 미국의 경우를 보자. 퍼스트 레이디인 로라 부시가 직접 나서 군부를 비판할 만큼 버마 민주화에도 챔피언인 부시 행정부다. 그러나 그들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 정세는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같은 무장투쟁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다 끊어 놓았다. 90년대 민주전선을 지원해 온 유에스에드(USAID·‘구호단체’인 듯하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제3세계 ‘엔지오’들을 지원해 온 미국의 ‘외교 정책’ 도구다)도 2001년 ‘민주전선’의 ‘재무장’을 이유로 지원을 끊었다. 무장을 해제한 적 없는 민주전선을 ‘재무장’을 이유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건 조금 코믹한 얘기가 되고 마는데도.

"신입 모집을 재개했고 이미 몇 명 도착했다."

10월 중순 랑군으로 향하기 직전에 인터뷰했던 민주전선 땅케(Than Khe) 의장 역시 9월 사태 이후 웬만한 주요 외신과 전부 인터뷰했다며 흥분되어 있었다. 식량 부족으로 신입모집을 중단했던 민주전선이었다.

"국제사회가 진정으로 이 군사정권의 전복을 보고 싶다면 논리적으로 따져보아도 무장투쟁 그룹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린 마약거래도 하지도 않고 어떠한 불법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는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재정비와 신입모집에 고무된 민주전선은 그 ‘흥분’ 때문에 최근 그나마의 지원세력마저 되려 잃고 말았다. 최근 발표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그 성명이 ‘화근’이 되어 노르웨이 버마위원회(NBC)는 ‘무장투쟁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우린 사회사업도 하고 있는데…." 민주전선은 그들이 운영하는 난민캠프와 학교 등을 거론하며 NBC의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듯한 멘트를 날렸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비폭력 지지 노선은 민주화 투쟁을 몸으로 치뤄온 무장투쟁세력들을 약화시킨 동시에 버마 내부에서 군부의 잔혹함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내부 민주 세력들의 바람과도 상당 부분 부조화를 보여 왔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총파업 위원회 내 소수민족진영조차 "휴전협상 중인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을 압박하여 무기를 다시 들게 함으로써 군부에 다시 압력을 가하는 것"도 위원회의 주요 전술이라고 설명할 정도다.

반면 국제사회가 지지해온 비폭력 노선의 챔피언 민족민주동맹 한타민 대변인은 "시위 같은 걸 조직하는 건 우리의 정책이 아니다. 대신 우린 성명으로 우리의 의사를 표명한다"는 무기력한 답을 주었다. 심지어 당서기이자 최고 대변인인 우르윈은 내게 지난 9월의 시위가 "종교적 파업"이기에 "대중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까지 말해 현실 인식 능력을 의심케 했다. 이런 지도부의 입장은 앞서 인용한 민주동맹 일반 회원들의 흥분된 발언과도 상당한 괴리감을 보이고 있다.

이유경
밀림에서 이동중인 학생 게릴라들.

그렇다면 무기력한 민주동맹은 버마 민주화 운동의 무용지물일 뿐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버마 내부를 취재하며 당 지도부와 당 정책은 무기력하지만 민초들에 뿌리내린 그 조직양상은 민주화 운동을 위해 대단히 값진 몸체라고 늘 생각해왔다. 당 자체가 선봉 투쟁하는 일은 없었지만 시위에 참여하고, 잡혀가는 면면들은 민주동맹 당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 시위 정국에서도 200여명의 당원이 검거되었고 옥중 고문으로 사망한 이도 있다. 어찌 보면 당원들의 욕구를 당이 제대로 소화하고 있지 못한 모양새라고나 할까.

무기력한 NLD, 그러나 값진 몸체

자, 대규모 시위가 사라지면서 또 다시 잊혀져 가는 버마지만 10월에도, 11월에도 여전히 검거와 투옥, 고문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취재 초기 인터뷰한 총파업 위원회 간부들도 10월 말부터 11월 초순께 모두 검거 혹은 실종되었고 훗날 그 악명 높은 인세인 감옥에서 모두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검거상황을 ‘대비’하여 소위 ‘세컨 라인’ 후속타자들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11월 25일 여성활동가 일단이 랑군 다운타운에 시위대로 등장하는 등 삼엄함을 뚫는 후속타들도 드물지만 이어지고 있다. 이제 버마 민주화 운동은 무기력한 야당과 갇혀 있는 지도자에 매달릴 게 아니라 이렇게 실질적 전술을 기획할 줄 아는 이를 주목해야 할 때다. 국제사회 역시 정체도 모호한 비폭력 평화 노선만을 지지하며 점잔만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반세기 독재를 무너뜨리는 민주화가 어찌 그런 양반걸음으로 근처라도 닿을 수 있겠는가.

버마=이유경 특파원

버마=이유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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