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자기모순 '허전'

대선이 있는 해에는 항상 대권주자들의 장밋빛 공약(公約)이 넘친다. 특히 선거 즈음에는 여러 공약 중에서도 복지에 대한 공약이 보다 부각되곤 한다. 민생과 직접 관련되는 부분이니 각 후보 진영에서도 그 밀접한 ‘표심’과의 관계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 최대의 후보가 나서고 있다는 이번 대선에서도 기초보장이나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후보가 많은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점점 눈에 두드러지고 있는 우리사회 빈곤과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 그리고 현재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민심이반을 포착한 탓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공약이나 후보들의 견해는 해당 후보 진영이 가지고 있는 이념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되곤 한다. 대개 보수진영 후보들의 경우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최소한의 효율성과 잔여성이 강조되는 입장을 나타내고,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한 ‘낙수효과’(trickling-down effect)로 자연발생적 복지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반면 진보진영 후보들의 경우에는 탈빈곤을 위한 제도의 대폭적 확충과 국가책임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대권 후보들이 복지공약을 어떻게 내어놓는가의 판단에서는 일단 현 정부의 사회복지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배경요인으로서 감안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사회복지 정책이나 제도, 프로그램을 과거 정권에 비해 중요시하고 양적으로 확충하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복지 영역의 주요한 몇몇 프로그램에 시장 기제를 도입하면서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우회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많은 비판과 공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사회복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조는 ‘복지의 양적 확충의지’와 ‘시장화 기제추구’의 양립하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 참여정부 스스로 자기모순이 드러나기도 하고 이와 관련된 여러 논란이 벌어져 왔다. 이런 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보수적 입장의 대권 후보들은 현 정부나 국민의 정부가 실패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복지확충전략을 비판’하던가 아니면 ‘복지에서의 시장 기제 확충부분을 비판’하여야 한다. 보수적 입장에서는 전자의 비효율성을 비판하고 싶지만 대선이라는 상황 때문에 여의치 않고 후자의 시장화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경전 문구와도 같다.

이번 대권 후보들, 특히 보수적 입장의 대권 후보들은 ‘사회복지의 양적 확충’ 부분이 국민들로부터 받는 지지를 간과하기 어렵다보니 일단 사회복지에 대해 그 확충과 관련된 공약을 나열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번 대선 공약에서는 보수적 지형의 후보나 반대 입장의 후보 할 것 없이 사회복지 프로그램 개폐의 주장을 통해 이념적 차이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너 나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사회복지의 중요성과 확충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기초보장제도와 관련하여 최근 몇 년간 주요한 사안이 되었던 ‘상대빈곤선’의 채택은 참여정부의 입장에서 그 혁신성이 부담스러워 채택하지 못했다. 중장기적으로 관련 예산의 증액이 부담스러운 탓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동영, 권영길, 문국현, 이인제 후보 모두 상대빈곤선 채택을 지지하고 나섰다.

누가 보수적이라고 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다른 7곱명의 후보는 이에 대한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를 반대하는 후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사회복지와 관련된 많은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보수성이 두드러지고 참여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인 이명박 후보의 복지공약이 일부 표현방법만 달라졌을 뿐 중요한 부분에서 참여정부의 최근 사회복지제도 개혁방향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후보들의 사회복지공약은 모두가 확충이라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재원’에 대한 구상 부분이다. 상대빈곤선의 채택만이 아니라 복지확충은 재원의 증가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불분명한 입장이라면 그 후보는 헛된 공약(空約)을 남발하고 있으며 집권시 이런저런 핑계로 공약내용을 뒤집고, 사회복지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해도 과하지 않다.

일부 후보는 확충할 복지 프로그램의 종류는 무수히 나열하면서 그 재원은 ‘불필요한 예산에 대한 구조조정’, ‘예산 효율적 집행’, ‘성장을 통해 얻어지는 자연적인 세수 증가’, ‘복지 재원 증가추세의 자연스러운 연장’ 등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다. 복지에 대한 진실성이 없는 후보이다.

주요 후보 중 상당수가 구체성 없이 슬로건에 머무는 수준의 복지공약을 내어놓고 있으며, 재원을 고려하지 않기도 한다는 점은 무척 우려스럽다. 대권을 향한 의지만큼 사회복지에 대한 실질적 의지도 고양되기를 바란다. 아마도 후보 진영에 맡기기보다는 시민사회 진영의 지속적인 견인과 요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