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지혜, 소크라테스의 향연

철학여행까페[14]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7.12.0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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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철학의 고향 아테네 (3)

이동희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은 이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격언에서 따온 말이었다.

아테네하면 떠오르는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최후를 맞이 한 철학자였다. 그가 주로 돌아다니며 철학적 대화를 나누던 장소는 아고라였다. 젊은 크세노폰은 아고라의 비좁은 길에서 소크라테스를 처음 만났다. 소크라테스는 그때 지팡이를 들어 길을 막고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생선을 어디에서 파는지 아는가?”

“물론, 시장에서 팔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디서 덕을 쌓을 수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를 따라 내 말을 들어 보게.”

이렇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은 크세노폰은 나중에 장군으로 활약하고 ‘소크라테스의 회상’, ‘키루스의 교육’ 등 문필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청년 플라톤도 소크라테스를 만나고 삶이 바뀌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까지 정치에 뜻을 둔 문학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정신을 이끌어 줄 훌륭한 스승이란 것을 알아보고 그때까지 썼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고 삶이 바뀐 청년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동희
아고라에 있는 시몬의 집터

나는 아고라에서 소크라테스가 활동했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일화에 등장하는 구두장이 시몬의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구두장이 시몬이 일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소크라테스가 시몬을 방문할 때 알키비아데스가 동행했다. 그들이 시몬의 집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
어가려 하자 알키비아데스가 머뭇거렸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그대는 여기에 있는 구두장이를 경멸하는가?”

알키비아데스는 지체 높은 귀족이기에 그렇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답했다.

“아테네 시민 전체가 하나의 시민이다. 만일 그대가 이 한 사람을 경멸한다면 그대는 전체시민을 경멸하는 셈이다.” (아엘리아누스)

산파 어머니를 딴 ‘산파술’ 전파

이 일화에 나오는 시몬의 집은 민회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있다. 이 시몬의 집은 아고라 유적지 발굴 작업에서 실제로 발견되었다. 발굴과정에서 그 집 주인이 구두장이 시몬이라는 것을 알리는 출토물인 술잔이 나왔다. 술잔 바닥에 소유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시몬의 집의 발굴로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활동한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서 주로 활동을 했지만, 소피스트들처럼 ‘말’을 주고 팔지 않았다. 소피스트들이 지혜로운 자를 자처하고 다녔다면, 소크라테스는 겸손하게 자신을 무지한 자라고 자처했다. 소피스트들이 이미 지혜를 가졌다고 했다면 그는 “나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 그는 무지하니까 지혜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델포이 신전은 무지한 자를 자처하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내렸다.

사실 철학이라는 말인 ‘Philosophia’는 지혜를 사랑하다, 추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야 말로 지혜를 추구하는 자로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와 또 다른 점은 사실 대가를 받지 않고 가르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가르침을 준 사람은 귀족 가문부터 시몬처럼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사실 그는 가르치기보다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였다.

‘메논’이라는 책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무지한 노예 어린아이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기하학의 원리를 터득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질문을 던져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스스로 지혜를 터득하게 하는 그의 이러한 철학적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파였던 까닭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산모 곁에서 아이를 잘 낳도록 돕는 기술을 가졌던 것처럼 그도 사람들의 정신을 태어나게 하는 기술을 가졌던 것이다.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몇 번의 원정 전쟁에 참여해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런 원정을 떠난 것을 제외하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떠나지 않고 평생 젊은 청년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젊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나라에서 신봉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이몬이라는 것을 신봉한다는 죄목으로 고소당했다.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최후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 아테네 시민들이 정신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아테네 시민들에게 등에처럼 달라붙어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이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에게 사형을 언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재판 과정은 플라톤이 쓴 ‘변명’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파르테논 옆 필로파포스 언덕에 가면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언도 받고 갇힌 감옥 터가 있다. 이 감옥터에 가면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 그리스 관광협회가 발간하는 안내 책자에도 이곳을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감옥 터가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당시 필로파포스 언덕에는 행정관청이 존재하지 않았다.

‘크리톤’과 ‘파이돈’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는 모습이 너무나 의연하고 감동적이어서 나는 꼭 감옥 터를 찾아보고 싶었다. 문헌을 다시 조사해 보니 소크라테스의 감옥 터는 아고라에 있었다. 나는 아고라의 시민 법정 터 위쪽에 감옥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한참이나 그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학교에서 교양으로 철학을 가르칠 때 항상 학생들에게 읽히는 단편이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날 감옥에서 친구인 크리톤과 나누는 대화를 기록한 ‘크리톤’이다. 내가 이 크리톤을 읽히는 까닭은, 많은 학생들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 독재정권 하에서 어떤 어용지식인이 크리톤을 그렇게 해석하고 그것이 교과서에 실린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크리톤은 그런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부유한 친구였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릴 때 크리톤은 그에게 외국으로 도주할 것을 권유한다. 간수도 매수했고 배도 구해 놨고, 그렇게 도주해도 아무도 비방할 사람이 없다면서.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을 줄 알면서도 아테네를 떠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는 그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에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 크리톤은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를 읽게 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서 도주해 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간절하게 부탁한다.

철학은 죽음에 대한 연습

크리톤이 이렇게 까지 나오자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서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따져 보고 그것을 따르자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가 떠날 수 없는 까닭을 크리톤에게 설득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자기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았고, 커서는 아테네의 법률에 따라 살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한다. 만약 아테네의 법률이 싫다면 가족과 재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를 했지만 자신은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떠나지 않은 것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률에 대한 자신이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주장대로라면, 그가 도주하지 않고 사형을 선택한 것은 법률에 대한 자신의 동의를 지키려했기 때문이다. 악법은 그 법에 대해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악법이고, 그러한 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 그것은 폐기되거나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법은 ‘악법’이 아니라 자기가 동의했던 ‘법’이다. 이것은 법이 존립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죽음에 대한 연습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에 따라 죽음을 의연하게 선택했다. 그가 죽으면서 남긴 최후의 말은 이런 것이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 주게!”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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