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골목들의 기억

내 인생의 첫 수업[26] 지금종l승인2007.12.1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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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사회운동에 뛰어든 것이 엊그제 같은 데 어느덧 스무 해를 훌쩍 넘어버렸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회운동에 뛰어든 계기를 돌이켜보면 인생의 불예측성을 실감하게 된다.

전두환이 광주에서 민중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했던 암울한 시절, 나는 음악다방 DJ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음악과 술로 일상을 소일하던 내성적이고 다소 우울한 청년이었다. DJ는 음악을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었지만 염세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던 내게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음악다방 DJ 시절

부조리, 폭력, 기만, 위선, 비리, 냉담함 등으로 얼룩진, 내 눈에 비친 세상은 도무지 살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은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던 내게 서서히 다가 온 것은 이른바 운동권이 된 친구와 그 친구가 전해주던 진실이었다.

교과서와 학교, 교사에게서 배우지 못한 역사와 사회, 문학을 통해 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새롭게 알아가는 사실에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곤 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국민교육’을 시켰단 말인가.

우리 사회에 깔린 무언지 모를 암울함과 불안함, 사회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모든 사물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 관해, 그들의 삶에 관해 다시 천천히 살펴보았다. 내 가족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름대로 잘 나가던(?) DJ 일을 때려 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1984년에 발간됐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고 나서다. 이 시집이 준 충격은 굉장했다. 나는 밤을 새워 시를 읽고 또 읽었다. 노동자의 아픔이 깊은 공감으로 다가와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분노해 노동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내게 있어 이 시기가 변증법에서 말하는 ‘양질의 전화’를 겪은 때가 아니었나 싶다. 올바른 역사를 알고, 우리 사회 현실과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의 고양이 양적으로 축적되던 과정에서 ‘노동의 새벽’은 삶의 전환을 촉발한 계기였던 것이다.

‘노동의 새벽’을 만나다

사실 노동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이 공장에서 일을 하자니 일을 마치고 나면 물먹은 솜뭉치처럼 몸이 무거웠다. 그 시절만 해도 노동 강도는 심했고, 노동자는 인격적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공장가서 처음 받은 일당이 3천원에서 3천300원이었으니 DJ 일을 할 때 한달 수입이 약 30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이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 당시 전반적인 노동현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퇴근 후 학습을 하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며, 새로운 세상을 위해 투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담은 전단을 밤을 새워 한 장 한 장 등사기로 밀어 가슴 속에 품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고, 그것을 집집마다 밀어 넣었다. 괴물 아가리처럼 느껴지던 검은 골목길들…. 내 발자국 소리와 두근대는 심장박동, 거친 호흡만이 정적을 깨던 그 골목길들은 왜 그리도 길어보였던지. 이 시절이 역사와 사회에 대해, 또 사람에 대해 알게 된 때이다. 나는 지금도 힘든 일이 닥치면 그 때 일을 떠올리며 견딘다. 이 무렵이 진정한 의미에서 내 인생의 첫 수업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의 마음 남아있나

나는 요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병을 앓던 그 때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 차가운 공포를 인간다운 세상을 바라는 열망 하나로 이겨내던 그 마음이 아직은 조금이라도 남아있나?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더불어 진보의 내용, 활동방식 등 스스로에 대한 혁신에 시급히 나서야 할 때이다.


지금종 새진보연대 대변인

지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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