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헌법과 평화경제

평화운동가 김승국의 ‘평화헌법 만들기[1] 김승국l승인2007.12.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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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차 대전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한 원인으로 평화헌법 제9조 및 평화헌법과 관련된 경제개혁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의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

첫째로 전후(제2차 대전 이후)에 특별한 요인이 일본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사고방식이다. 그 가장 큰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헌법 제9조일 것이다. 군사비라는 것이 감소하였다. 전전(제2차 대전 이전)의 통계를 보면 알겠지만 국가예산 가운데에서 군사비의 비율이 대체로 25∼30%가 평균이었다. 물론 전쟁이 터져 50%,60%가 되었다. 그런데 전후의 방위비가 지금은 6∼7%이다. 국민 총생산에 대한 비율은 대체로 1%이하의 국방비이다. 따라서 큰 국방비에서 작은 국방비가 되었다. 그 대신에 민간의 투자를 상당히 왕성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둘째로 전후에 3대 개혁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 개혁이 있었다. 제1의 경제 개혁은 농지개혁인데, 이것은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바꾼 것이다. 언뜻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변화인 듯하나, 농민이 자신의 토지에서 생산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자극을 받았다. 그리하여 농업생산이 왕성해지고 식량 생산의 기초를 뒷받침하여 부흥의 원인을 이루었다.

제2의 경제개혁은 재벌의 해체이다. 재벌 해체는 역시 하나의 커다란 성장의 자극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전후에 재벌이 해체되어 누구라도 유효한 발명·발견이 있으면 이용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기술의 수입이 장려되었다. 그리고 생산을 왕성하게 하려는 의욕이 강해졌다. 이게 경제성장의 한 요인이 되었다.

<시민사회신문 DB>
일본은 평화헌법으로 국방비를 대폭 절감하고 그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을 기술개발 사회 인프라 확충에 전용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한미연합사 앞에서 있었던 국내 평화집회의 한 장면.
제3의 커다란 개혁은 노동조합의 육성이다. 노동조합은 전후에 처음 나온 게 아니지만 일본의 모든 관청·회사에 ‘인정받은 노동조합’이 1946년부터 등장했다. 노동조합이 맨 처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항하여 ‘먹고 살만한 임금’을 얻는 것이었으며, 경영자 쪽도 이러한 임금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국민 전체에 구매력을 주었다. 바꿔 말하면 국내 시장을 육성하였다. 국내 시장의 육성으로 농촌에 대한 세탁기의 보급, 일반 가정에 대한 텔레비전의 보급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수출이 왕성하므로 국내 시장이 직접적으로 문제 되지 않지만 국내 시장을 밀쳐놓고 수출만으로 나라가 번영하는 게 경제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이처럼 근본은 국내 시장의 육성이므로 노동조합 운동이 도움이 됐다.

전후 3대 개혁 주목

여기에서 헌법의 문제를 별도로 하더라도 전후의 3대 개혁이라는 것이 경제 성장의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일본의 경제 성장을 밖에서 보고 논의하는 사람은 모두 맨 처음에 이런 요인을 건너뛴다. 그러나 차츰차츰 나아가는 사이에 이러한 단기적인 ‘전후의 특유한 사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아무래도 일본에 있을 법하다는 점을 느낄 것이다.

전전·전후를 통하여 일본의 경제 성장의 원인이 된 ‘Long Range Factor’ 즉 장기 요인을 든다. 장기 요인의 첫 번째는 저축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의 저축률은 상당히 높다. 일본은 전전·전후를 통하여 전체 선진국의 평균 저축률의 2배 이상을 나타냈다. 이게 일본이 외자에 의지하지 않고 (국내의) 저축만으로 발전을 이룬 이유이다.

제2의 장기 요인은 상당히 풍부한 노동력의 공급으로 혜택을 입었다. 노동력이라고 해도 결코 인간의 숫자뿐만 아니라 교육이 있다. 교육받은 노동인구를 이 정도로 풍부히 갖고 있다는 게 매우 드문 일이다. 게다가 장기간에 걸쳐 풍부한 노동력의 공급이 확보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경영자가 세계의 경영자 중에서 가장 혜택 받았다고 생각한다.

제3의 장기 요인은, 그 노동력이 상당히 근면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하듯이 전쟁이 없는 상태 아래서 노동조합운동으로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2차 대전 이후에, 일본은 비로소 경제의 고도성장을 달성하고 세계의 기술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전전의 일본은 비서구권에서는 가장 선진된 나라였으나, 서구에 대해서는 기술면에서 도저히 적수가 아니었다. 그러던 일본이 2차 대전 후 오늘날 세계의 기술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평화헌법을 채택함으로써 국내자원을 소비적인 군사목적으로 소진할 이유가 없게 된 대신에 그것을 평화산업과 이를 위한 개술개발, 그리고 각종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구미 각국들이 국방에 막대한 국가예산을 쏟아놓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사실상 무임승차함으로써 구미 각국의 기술수준을 따라 잡겠다는 숙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한 결과가 오늘의 일본 경제의 번영을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는 농지개혁에 의해서 농촌에 옛날부터 뿌리박혀 온 반봉건적 소작제도가 거의 자취를 감춤으로써 빈부격차가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이중 곡가제, 농수협의 육성, 농업 하부기구의 정비, 지방공업의 육성과 지방 교통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 사이의 소득격차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고, 이로써 국내 시장이 크게 확충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로 전후의 평화·민주헌법 아래서 노동조합의 세력이 강화되어 부의 균등배분과 국내시장 확대에 적지 않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농가소득 향상의 여파로 도시의 노임수준이 높아짐으로써 자본재에 대한 노동의 대체, 즉 기술혁신이 기업의 성쇠를 좌우하는 변수로 등장하게 되었고, 이것이 일본의 기술수준을 구미와 손색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하는 데 매우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경제가 참다운 의미에서 번영의 길로 들어 설 수 있었던 것은 설사 미 점령군에 의한 타율의 산물이었다 하더라도 민주·평화헌법의 시행과 농지개혁·노동조합의 활성화 등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정치·경제적 개혁에 의해서였으며, 그 의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주종환, ‘한국 현실경제와 이론’ 서울, 일빛, 1994)

지금은 일그러졌지만

평화헌법과 함께 이룩된 정치·경제적 개혁(농지개혁·재벌해체·노동조합 활성화)이 경제성장의 단기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이 단기적인 요인이 경제성장의 장기적 요인(높은 저축률·질 높고 근면한 노동력을 풍부하게 공급받음)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면 평화헌법으로 국방비를 대폭 절감(전전의 군사비 비율 60%에서 전후의 군사비 비율 6%로 절감)한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을 기술개발·사회 인프라 확충에 전용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는 말이다.

이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하면 ①평화헌법이라는 상부구조에 의해 ‘평화경제의 기초(하부구조)를 이루는 생산관계’가 형성되고(농지개혁·재벌 해체·노동조합 운동의 활성화와 함께 군비축소형 생산관계가 형성됨) ②이 생산관계가 경제성장의 장기적 요인을 촉발함으로써 생산력의 급증을 유발하여 ③국민 모두가 비교적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자위대 창설에 이은 군사대국화로 이러한 평화국가의 상이 점차 일그러졌지만)가 되었다.

또하나의 사례 코스타리카

평화헌법이라는 상부구조가 평화경제의 생산관계를 형성한데 이어 생산력의 급증·평화경제를 위한 자본축적을 유발함으로써 잘사는 평화국가로 거듭난 사례는 일본에 그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는 일본 평화헌법 제9조보다 더욱 강력한 평화헌법 제12조를 지니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 제12조는 교전권을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보다 더욱 강력한 평화의 의지를 지니고 있다.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는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 다만 공공질서의 감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찰력은 보유한다. 대륙간 협정에 의하거나 국가방위를 위해서만 군대를 조직할 수 있다. 군대·경찰력은 어느 경우이든 문민권력에 언제나 종속해야하며, 단독 또는 집단적으로 심의하는 것도, 성명·선언을 내는 것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가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는 일본헌법 제9조보다 강력하다.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군대를 금지한다’는 쪽이 강하다. 일본 헌법 제9조가 군대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전력을 보유할 틈을 제공했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군대 금지의 조항이 있으므로 손쉽게 비무장 중립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막강한 전력을 지닌 자위대가 있었기 때문에 비무장 중립국가가 될 자격을 상실했다. 코스타리카는 자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도 평화롭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적극적 비무장 중립’을 내걸고 주변 국가들의 분쟁해결까지 도맡았다.코스타리카가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점에서 일본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부터 지금까지 70회의 헌법개정이 있었다. 이렇게 개헌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지만 군대폐지 조항을 바꾸려는 개헌안은 제출된 적이 없다. 코스타리카는 헌법제정 뒤 ‘병사의 수만큼 교사를 둔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군사예산을 교육예산으로 돌려버렸다.이로써 국가예산의 3분의1이 교육비로 충당되고 있다.개발도상국에서 이만큼 교육에 예산을 할애하는 나라는 코스타리카밖에 없다. 그 결과 중남미에서 가장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다. 국방비를 거의 제로(zero)로 만든 국가재정의 여유분으로 사회복지·교육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고 사회복지가 충실하다. 사회복지를 충실히 하는데 군대폐지가 한 역할이 크다. ‘제 아무리 가난해도 군대는 보유해야한다는 제3세계 국가들’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다. 코스타리카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非)군사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가며 자국의 정책을 다른 나라에 호소하는 가운데 비무장 영세중립을 주변국들로부터 인정받았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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