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이기라

철학여행까페[16]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7.12.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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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1509 로마 바티칸 박물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플라톤과 더불어 서양의 학문을 지배해왔다. 학문의 영향력에서 그는 스승 플라톤 보다 더욱 위력을 발휘하였다. 근대 학문은 그를 극복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중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견해를 내놓은 것은 곧바로 이단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이런 일화가 있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학 이론에 따라 암말의 이가 몇 개인지를 두고 설왕설래를 벌일 때, 그 곁에서 논의를 듣던 어린 종이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어린 종은 마구간으로 달려가서 암말의 이를 센 다음 다시 달려와서 수도사들에게 자랑스럽게 암말의 이가 몇 개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어린 종은 칭찬 대신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학 이론을 부정한 죄로 커다란 벌을 받았다.

암말의 이 숫자까지…

이렇게 서양정신사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테네에서는 그를 기리는 동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차례 아테네를 방문해 곳곳을 다 돌아다녀 보았는데도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은 눈에 띠지 않았다. 아테네 국립대학 앞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동상만이 입구 양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리스토텥레스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을 처음 본 것은 그리스 북부의 도시 데살로니키를 방문해서였다. 그곳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동상은 없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상만이 있었다. 아직도 아테네와 북부 마케도니아지역 간의 지역감정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지역출신의 철학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인지.

이동희
이라스토텔레스 동상.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다. 그의 출신지는 스타이기라였다. 나는 지난번에 데모크리토스를 찾아 압데라에 간 김에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스타이기라를 찾아 본 적이 있었다. 스타이기라는 아토스 반도 입구에 있다. 지도에 스타이기라고 표시되어 있는 동네에 들어서니 산 속의 한적한 마을이 나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우윳빛 대리석으로 새로 만든 거대한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이 서있었다. 나는 우선 동상을 촬영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동안 내내 드는 의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출생지가 바다에 접한 있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그곳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갖고 온 자료를 더 검토하고 다시 그의 고향을 찾아 떠났다. 한참 가다 보니 안내문이 하나 더 나왔다. 그 안내문을 보자 나는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This is real birthplace of Aristoteles! (여기가 진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이다!) 내가 아까 들렀던 스타이기라는 현재 행정상 지명인 동네이고, 진짜 스타이기라는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세계적인 철학자를 내세워 관광 상품화해서 두 동네가 경쟁하는 것을 보니 심정이 착잡했다. 그래도 겨울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나 이외에는 없었다. 안내문을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가를 가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속으로 들어가 보지 못한 채 밖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가를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겨울인데도 머릿결을 간지르며 불어오는 미풍과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아름다운 해안이었다.

“여기가 진짜 고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아민타스 2세의 주치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마케도니아 궁정을 드나들었고,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왕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어렸을 때 부모가 돌아가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록세노스라고 하는 사촌에게 맡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 때 아테네의 명문 학교인 아카데미아로 와서 수학했다. 그가 아카데미아 학생이 되었을 때, 플라톤은 아직 시라쿠사이에 있었다.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20년 동안 머무르며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나중에는 교수의 신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카데미아를 떠난 이유는 스승 플라톤이 죽고, 실력이 형편없던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아카데미아 원장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망해서 아카데미아를 떠났다. 때마침 친구이자 아타르네우스의 참주인 헤르미아스가 불러 주어 그는 아쏘스로 갔다. 헤르미아스는 노예출신으로 참주의 지위에 까지 이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의 의붓딸인 피티아와 결혼을 했고, 그가 페르시아인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 때, 비통한 마음으로 그를 기리는 비명을 썼다. 그는 헤르미아스가 마련해 준 아쏘스에서 철학을 계속 가르쳤다.

아쏘스는 소아시아, 지금은 터키 서해안에 있는데, 현재 지명은 칼람바카로 되어 있다. 나도 그곳을 찾아 가 본 적이 있다. 한때 그곳은 로마제국 초기 항구도시로서 번성한 지역인데, 지금은 외진 곳으로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아직 유적 발굴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서 2년 정도 지내다 필리포스왕에게 부름을 받아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게 된다. 그를 알렉산더의 스승으로 추천한 사람은 헤르미아스였다. 헤르미아스는 필리포스왕에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알렉산더의 교육을 맡기라고 조언을 했다. 알렉산더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알렉산더는 원정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연구 자료로 동물들을 보내 주곤 했다.

이동희
아쏘스로 가는 길.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통일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돌아온다. 대왕의 스승이라는 후광을 달고서. 그는 아폴론 리케이오스 신전 가까이에 있는 곳에 리케이온이라는 학교를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는 산책을 하며 가르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런 습관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페리파토스학파 또는 소요학파라 불리기도 했다. 그가 세운 학교의 명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를 능가하기도 했다.

그가 가르치는 철학은 플라톤의 철학과 달랐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를 역설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의 세계가 다른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 속에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스승이자 정신적 친구인 플라톤을 비판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그의 정신 때문이었다. 그는 플라톤의 영향을 벗어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은 소중하다. 그러나 진리는 더욱 소중하다.”

플라톤의 영향을 떠나 그는 실제적인 관찰과 논리적 체계에 기초해 모든 학문의 분야를 체계화하고 정리했다. 동물학에서부터 논리학, 윤리학 그리고 형이상학 등 그가 건드리지 않은 학문의 영역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서양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도 가장 오르기 어려운 험한 산이자 한눈에 조망할 수 없는 높은 산이다.

철학의 높은 봉우리

기원전 알렉산더가 죽자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에 대항해 궐기를 하고 마케도니아 출신의 사람들을 몰아낸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소송을 당할 위험에 처했다. 그는 위험을 피해 어머니의 영지인 칼키스로 피신을 했다. 그러나 그는 피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63세의 나이에 위장병으로 사망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서 피신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아테네인들이 철학에 대해 똑같은 죄를 두 번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테네인들이 철학에 대해 저지른 첫 번째 죄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도주함으로써 아테네인들은 철학에 대해 똑같은 죄를 두 번 저지를 기회를 잃었지만, 철학의 도시 아테네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을 철학과 동일시할 정도로 철학에 몰두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에 대한 경탄과 경이 그리고 물음 때문이었다.

“철학은 경탄, 경이 그리고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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