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을 생각한다

이재영_독설의 역설 [27] 이재영l승인2007.12.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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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여름 나는 마포의 한 사무실을 얻어 혼자 상근하기 시작했다. 후에 그 사무실은 국민승리21이 되었고, 진보정당창당추진위원회를 거쳐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신임당직자들에게 언젠가 민주노동당이 깨져야 한다고, 당은 분화 발전하는 것이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이제 민주노동당을 떠날 때가 된 듯하다. 민주노동당이 빨리 성장하였으므로, 그 당 운동의 분화 발전 시기 역시 빨리 다가왔다.

물론 민주노동당 아닌 새 진보정당의 창당 시기가 내달이 될지, 내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진보정치운동의 흐름을 민주노동당에서 새 진보정당으로 트는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많이 알려진 바대로 민주노동당을 넘는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첫 이유는 ‘주체사상파’ 때문이다. 20년 노동운동을 한 노조 위원장이나 한총련 학생이나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고, 민주노동당 10년 역사 중 앞 절반의 시기에는 전자가 후자를 선도했지만, 뒷 절반에는 후자가 전자를 표로 압도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독도에 공수부대 보내자는 당이 되었고, 당직자의 언행을 감시해 북한 정권에 넘기는 당이 되었고, ‘자주적 핵무장’에 열광하는 당이 되었다. 평소 점잖아 말을 아끼는 고려대 최장집 교수나,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이나, 경향신문 이대근 에디터로부터 매몰찬 야유와 조롱을 받는 당이 되고 말았다.

민족주의나 주체사상이 당 외부로부터 욕먹기 좋은 소재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작년쯤부터인가 민주노동당에서는 탈당자가 입당자를 넘는 유례없는 현상이 간혹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사회혁명에 대한 환멸과 진보적 인적 자원의 이탈을 부추기는 걸림돌로 전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노동운동이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근로대중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가장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한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0% 안팎에 불과하고, 그나마 민주노총은 그 절반쯤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일이지만, 진실과는 먼 주장이다.

유럽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남유럽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독일 같은 대륙 유럽에서는 50% 내외이고,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는 100%에 근접한다. 그리고 그 조직률과 비슷하게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의 집권 기간이 짧거나 길다.

노조 조직률과 진보정당 집권의 인과 관계를 따지자면, 진보정당의 최초 집권은 일정한 노조 조직률에 힘입지만 그 이후에는 오히려 노조 조직률 확대가 진보정당의 정치적 역량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다거나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책은 이미 대기업 노조 조직률의 포화를 이룬 민주노총보다는 정치를 통한 대대적 조직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게로 향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무능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눈치를 살피느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당과 노조가 어디에 설 것이고,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를 재계약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깨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 당이 더 이상 도전하거나 혁명하지 않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끝난 당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아닌 권영길을 선택했다. 물론 권영길을 지지한 개개 당원에게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총화되어 득표력 뒤질 것이 뻔한 후보를 내세우는 반정치적 당이 민주노동당이다. 대선을 통한 성장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고 결정한 당이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이 권영길을 선택한 것은 주체사상파가 자신들의 경쟁자인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억제하려 해서이기도 하지만, 당원과 당 간부들이 민주노동당이라는 틀거리 안에서는 보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규범화돼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히트 상품인 부유세를 거부한 최고위원회는 “중산층의 반발이 우려되어”라는 이유를 들었다. 대학평준화 공약을 거부한 정책 책임자는 “교육운동단체들이 반대하는 것 같아”라는 핑계를 댔다.

무릇 정치는 도전이고 모든 도전은 실패를 동반한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도전을 두려워하고, 끝끝내 승리를 거부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진보 정치와 자유주의 정치 사이에서 부동(浮動)하는 인텔리 운동권의 정당이고, 정규직 기업노조의 정치세력화이고, 무엇보다도 집권이나 변혁이 아니라 창당과 의회 진출 목적에 맞추어 구성된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한국 경제처럼 가속성장을 통해 성공했고, 성공했으므로 실패에 다가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운동이라면, 그 운동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 운동 역시 분화할 것이고, 당은 변전(變轉)할 것이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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