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를따라17. 주천대(酒泉臺)에서

울진지방 정신사의 산실 남효선l승인2007.12.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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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고찰 불영사 창건 연기설화의 현장

울진(蔚珍)지방은 마을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바다를 이마에 이고 무성한 산림이 삼방을 감싸고 있는 태백 자락에 파묻힌 경상도 동해안 최북단에 자리한 고장입니다. 예부터 아름답고, 울창하고 보배로운 것들이 많다하여 ‘울진’으로 불렸으며, 울진으로 불리기 전에는 ‘선사(仙傞)’라 불렸습니다. 글자의 뜻 그대로 풀이하면, ‘신선이 춤추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울진 어느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울진지방에는 풍광이 빼어난 곳이 많습니다.
남효선
울진 근남면 구미마을에 자리한 주천대는 동해 변방 울진지방의 정신사를 배태시킨 유교적 성소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선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울진의 정신사를 이 곳 주천대를 중심으로 조선 선조대에 완성되었습니다. 사진은 당시 철학강론이 활발하게 전개된 주천대 전경 모습

우선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불영사계곡이 그렇고, 울진사람들의 생명과 정신을 보듬으며 동해로 흐르는 왕피천 계곡이 그렇습니다. 또 남북 82Km에 걸쳐 펼쳐진 푸른 동해와, 바다와 뭍이 만나 빚어낸 해안의 절경은 가히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빼어난 절경입니다.

선인들은 자연이 빚은 절경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에 걸맞는 이름을 붙이고, 자연풍광을 훼손치 않으면서도 루(樓)와 정(亭)과 대(臺)를 앉혔습니다.

주천대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주천대는 블영사 계곡이 시작하는 곳이자, 왕피천과 광천(光川, 빛내)이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울진군 근남면 구미마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구미마을은 향인들로부터 맞춤한 주거지, 이른바 풍수지리상 명당지로 이름나 있습니다.

‘거북이 꼬리’로 불리는 구미산이 마을을 빙둘러 감싸고 있는 곳이지요. 마을 앞에는 울진 서면 백병산에서 발원하는 광천이 마을을 에감고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입니다.

이 곳 구미마을이 울진정신사의 발상지로 자리잡게 되는 발단은 조선 조 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왕조 최초의 반정으로 기록되는 ‘세조의 왕위찬탈’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습니다. 금오신화로 잘 알려진 주선초 정치가이자 문인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환료 생활을 뒤로 하고 강산을 떠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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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 김시습선생으로부터 출발한 울진지방 정신사의 흐름은 조선 선조대에 이르러 만휴 임유후선생과 서파 오도일 선생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사진은 이들의 청학사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울진지방 후학들이 세운 '삼선생 유허비'모습

당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철학가인 동봉 김시습 선생이 세상을 주유하다가 마침 동해 변방 울진을 들러, 이곳 구미마을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동봉(東峯) 선생은 이곳 구미마을에 머물면서 농사일과 해사로 면면히 살아가는 울진인들에게 유교철학을 전수했습니다. 당시 울진의 이름없는 유생들에게는 이보다 더 값진 일이 없었을터입니다.
동봉선생으로부터 울진지방에 비로소 철학이 태동하기 시작한때문이지요.

동봉선생의 철학은 이후 우암 송시열선생이 울진 기성 황보마을로 유배를 오면서 한층 공고해집니다. 주지하다시피 송시열선생은 당시 조선을 ‘송시열의 나라’라고 칭할만큼 정치적.정신사적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입니다. 당대의 뛰어난 철학가 두 분을 연이어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동해 변방 울진 유생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배태된 울진 정신사는 조선 선조 초 울진현감으로 부임한 만휴 임유후(任有後)선생과 서파 오도일(吳道一) 선생과 격암 남사고(南師古) 선생에 의해 완성됩니다. 바로 주천대는 울진 철학사의 큰 흐름을 완성한 만휴선생과 서파선생과 이들을 따르는 유생들이 철학을 논하고 당시의 정세를 진단하던 강론과 사색과 모색의 장이었습니다.

이들로부터 배태된 기일원론적 철학관은 울진지방의 정신사의 도저한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후일 이들의 철학세계를 이어 온 울진지방의 후학들이 이곳 구미마을에 ‘고산서원(孤山書阮)’을 세우고 동봉, 만휴, 서파 세 선생을 배향했습니다. 비로소 울진지방 정신사의 산실이 탄생한 것이지요.
남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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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울진지방의 정신사를 완성한 동봉, 만휴, 서파선생 등 삼선생을 배향한 고산서원 모습. 현재는 액편만 간직한 채 쇠락한 모습으로 울진지방을 도저하게 휘감았던 당시의 모습만 전해주고 있다.

지금 고산서원은 액편만 남은 채, 당시 울진지방의 정신사를 주도하던 도저한 발걸음 소리는 어디론가 흩어지고 쇠락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또 이들의 강론이 쟁쟁하게 퍼졌을 주천대는 이들의 족적을 기리는 유허비 몇 점만을 안은 채, 오늘날에는 그저 풍광좋은 여름철 놀이터로 변했습니다.

주천대는 이들의 족적과 함께 신라 고찰인 불영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당시 이곳의 토착신앙의 지킴이인 아홉 마리 황룡과 ‘마지막 대결을 벌인 문화 갈등의 현장’이자 불영사 창건 연기설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구미마을 주천대에서 찍었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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