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헌법을 넘어 평화헌법으로

평화운동가 김승국의 ‘평화헌법 만들기[2] 김승국l승인2007.12.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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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헌법 제3조의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과, 북한 당 규약의 ‘전국적 범위에서(남한 포함) 민족해방과 인민 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한다’는 규정이 상호 모순을 일으킨다. 이렇게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의 체제를 부정하는 상호 적대적인 헌법질서 아래에 있으며, 일방이 타방의 헌법질서를 흡수하는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남북한 분단헌법의 상극

남한의 헌법 안에서도 모순 관계가 드러나는데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은 제4조의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한다’, 헌법 전문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와 모순 관계이다.평화적인 통일을 하겠다면서(제4조),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위한 영토조항(제3조)을 두는 것은 상호 모순이다.

이 밖에 남한 헌법의 제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6조(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와 북한 헌법의 제1조(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제9조(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제11조(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조선 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는 상극관계이다.

시민사회신문 DB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의 체제를 부인하는 상호 적대적인 헌법질서 아래 있다. 지난 9월 국가보안법철폐 집회 모습.

이와 같은 상극관계를 드러내는 분단헌법을 지양하는 통일헌법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다. 장명봉은 남한 헌법의 제3조 영토조항의 개선과 제4조 통일조항의 새로운 해석, 북한쪽 당 규약의 대남관련 규정의 개선을 제안한다.(장명봉, ‘남북한 헌법질서와 한반도 통일논의’ 사회과학 연구 제8호)

이경주는 ‘남북한 당국간의 통일논의를 비판적으로 견제하여 남의 민중과 북의 인민이 통일의 최대 수혜자가 되도록 견인하는 비판적-내재적 접근방법’을 권유한다. 그는 통일의 수혜자가 통일한국의 다수의 민중이 되기 위해서 통일헌법 논의가 정치적 통합 쪽보다 사회경제적 통합에 더욱 큰 무게를 두어야한다며 통일된 사회의 역사적 과제로서 인권의 확립 문제를 제기한다.(이경주, ‘통일헌법의 기본방향’ 민주법학 제16호)

통일헌법 전환 논의

국순옥은 통일국가 헌법이 지행해야할 규범으로 ‘남(남한)의 신식민지 종속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나 북(북한)의 가부장적 관료독점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제3의 길 즉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등한 인간개체의 결합에 의하여 자주적으로 조직된 협동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국순옥 ‘남북통합과 국가형태·국가체제 문제’ 공법연구 제21집)

위와 같은 통일헌법 논의의 풍부함·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방향이 주로 남북한 체제의 통합에 중점을 두는 한계가 발생한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평화의 가치를 넣는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남북한이 각기 평화국가를 지향하는 평화헌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뒤 두 쪽의 노력을 합성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남북한의 단순한 정치적 통합이 아니라, 남북한이 평화국가 연합을 이루는 평화헌법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러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일본의 평화헌법과 코스타리카의 평화헌법을 준거 틀로 삼아 ‘한반도형 평화헌법’을 상정하면 좋겠다. 일본·코스타리카 평화헌법의 정신은 받아들이지만,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일본헌법 제9조)과 ‘항구적인 제도로서의 군대를 금지한다’는 조항(코스타리카 헌법 제12조)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

평화의 가치를 넣자

한편 일본·코스타리카의 평화적 생존권에 관한 조항을 폭넓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코스타리카 평화헌법의 비전(No More War)의지를 평화헌법에 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침략전쟁 부인, ‘합리적 방어의 충분성’ 원리(고르바쵸프 정권이 취했던 안보원칙)에 입각한 전수(專守)방어, 군비축소, 군에 대한 문민통제, 비무력적 방법에 의한 국제공헌, 무기수출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사전 예방, 비핵화·비핵지대화, 중립화(영세중립·무장 중립·비무장 중립), 영토·주권 존중, 상호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평등,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 등이 평화헌법의 주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평화헌법은 평화통일의 진행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즉 국가연합 단계의 평화헌법 내용과 연방제 단계의 평화헌법의 내용은 다를 것이다. 국가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혼효된 6·15 공동선언의 제2항을 중심에 놓는 평화헌법이 현 단계에서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6·15 공동선언의 완성태가 평화헌법으로 외화되는 게 좋다.

한반도형 평화헌법의 중점은, 분단으로 왜곡된 국가권력의 성격을 평화 지향적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분단체제가 낳은 강권(强權, Gewalt)·구조적 폭력 등의 ‘분단’(Gewalt)을 지양하는 평화헌법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남북한 사회의 인간적·내발적 발전을 보장하는 경제통합이 평화헌법의 근간이 되어야한다. 경제통합에 있어서 시장, 시장 경제, 시장-국가권력-시민(인민)사회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정립하는 게 관건이다. 또한 남북한의 평화공존?남북 공동체를 위한 평화헌법이 되어야한다.

남북한은 평화국가가 될 수 없나

코스타리카가 ‘비무장 중립 평화’를 위해 ‘자주’를 지킨 점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코스타리카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이런 길을 걸은 점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코스타리카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들에 에워싸여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오면서도 ‘군대 없는 평화 국가’를 형성해 왔다. 1959년의 쿠바 혁명은 ‘군대 없는 코스타리카’에게 커다란 위기를 안겨 주었다.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이 즉각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에 따라 중남미 정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곧이어 1962년 쿠바에 설치한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 시설을 에워싸고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나아갔다. 이윽고 1979년 인구 250만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를 얻은 혁명정권이 등장하여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니카라과의 혁명을 주도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 전선(FSLN)은 미국의 눈엣가시이었다. 미국은 FSLN을 거세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코스타리카에서 하려 했으나, 코스타리카 정부의 선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한반도에 대입하면,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을 전복하기 위한 군사적 공작을 미국이 남한 정부에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퇴짜 맞은’ 꼴이다. 불행하게도 남한의 역사는 코스타리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코스타리카의 경우 평화헌법에 따른 적극적인 평화외교를 펼치면서 ‘영세 비무장 중립 선언’을 제도화했으며, 그 결과 ‘군사비 부담이 없는 경제발전’을 성취했다. 일본 역시 평화헌법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여기에서 남·북한이 일본·코스타리카처럼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의 가능성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면 어떠한 요인 때문이며, 가능하다면 어떠한 요인 때문인지를 가려내야한다.

필자가 보기에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따른 분단헌법’을 남북한이 제정한 요인 때문에,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 남북한의 분단헌법은 ‘평화경제를 위한 자본축적-경제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분단헌법이라는 상부구조가 평화경제의 기초(하부구조)를 이루는 생산관계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3개 개혁(농지개혁·재벌 해체·노동조합 운동 활성화)과 같은 ‘평화경제를 위한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부구조가 분단헌법이다.

남북한의 분단헌법이 존속하는 한 군비축소형 생산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군비축소형 생산관계가 경제성장의 장기적 요인을 촉발함으로써 생산력의 급증을 유발할 수 있을 텐데, 현재의 분단헌법 아래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비록 분단헌법의 악조건 속에서 남한이 경제발전을 이룩했으나 그 발전은 인간적·내발적 발전이 아닌 ‘박정희 개발독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불균등 발전’(구조적 폭력을 수반하는 비평화적인 불균등 발전)이다. 구조적 폭력을 수반하는 비평화적인 불균등 발전이므로 남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를 이룰 수 없다.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형 개발 모델이 남한 땅을 엄습하여 평화국가는 엄두도 못낼 지경이 되었다. ‘분단헌법+신자유주의’의 2중고 속에서 남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는 한갓 유토피아가 되었다. 북한 역시 ‘분단헌법+경제난’의 2중고 속에서 북한 인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평화국가를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므로 남북한이 평화헌법에 의한 경제성장을 도모함으로써 평화국가로 거듭나려면 각기 분단헌법을 철폐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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