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의 힘을 느끼다

내 인생의 첫 수업[28] 나효우l승인2007.12.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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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 떨리고, 뿌듯함보다는 자그마한 실수가 더 마음에 남는다. 특히 서로가 배우고 익히는 학습과정에서 일어나는 첫 경험들은 실수투성이면서도 언제나 자극적이고 신선하다. 그 실수투성이를 통해 몇가지 얻은 경험들이 있다.

먼저, 수업내용 못지않게 참가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화형 교수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에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발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진아였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4학년 학급 반장에 추천되었을 때 담임선생이 ‘나효우는 말할 줄 모르니 추천명단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면서 칠판에 적힌 내 이름을 직접 지웠을까. 그러나 일요일에는 자그마한 교회를 다녔기에 말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자주 있었다. 당시 한 학급에 70~80명이 다니던 초등학교와 달리 기껏해야 5~7명 모였던 주일학교에서는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자고로 학습모임은 10명이 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수업대상이 어린 코흘리개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를 할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묻는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동의하는지 또는 다른 의견은 없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발달된 것이 ‘대화형’ 화술이었다.

나중에 대학에 입학해서 이런 방법이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교육학)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학습에 있어서 유머를 이용할 줄 알면 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교실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80년대는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암울한 독재 군사문화가 적대적 갈등 문화를 부추기는 시대였다. 민주 아니면 반민주, 억압과 죽음의 사이에서 항상 비장한 얼굴을 하고 다녀야했다. 그런 엄혹한 문화에서 1989년 말에 만났던 나이 지긋한 한 백안의 조직가가 구사하는 ‘유머’는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당시에 한국의 빈민운동 그릅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가난한 지역의 활동가과 대표 약 100여명과 아시아 민중들의 대화 모임을 가진 일이 있었다. 그 모임을 실제로 준비한 ‘데니스 머피’는 아일랜드 혈통의 미국인 신부였으면서 필리핀에서 40년 이상 가난한 이들과 살면서 아시아대중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ACPO(아시아 대중연합)을 1971년 창립하는데 공헌을 한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거의 아무말 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열심히 노트에 기록하는 조용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난 당시에 낙골이라는 빈민지역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지내면서 혁명을 꿈꾸던 시절이라 얼굴에는 여유있는 웃음보다는 항상 심각한 모습에 비판적인 사고가 늘 지배적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 좀 멋있어 보이고 운동가의 모습이라고 착각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선배 조직가는 조용히 있다가도 모임이 서로의 말꼬리를 잡고 시비걸 때면 적절한 유머를 구사해서 좌중을 넉넉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비판이라는 미명하게 상대를 비난하거나 험담해야 자신의 존재가 살아남는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적절한 유머로 만들어 가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몇 년간 필리핀에 그와 함께 활동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기의 계산과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부족하여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랴.


나효우 아시아NGO센터 운영위원장

나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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