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의 응어리가 풀어진 것 같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7년 만에 대통령과의 만남 양병철 기자l승인2017.08.09 13:0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늦었지만, 진정성 느껴졌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청와대에서 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후 이같이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7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오늘은 그 어느날 보다 짧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해 15명의 피해자가 각 2분가량 발언 시간 제한을 두어 오후 3시 정도에 끝내는 것으로 예상했던 대통령과의 면담이었다. 한 피해자는 청와대행으로 출발하기 전 “2분 안에 결판을 내야 된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소속 활동가들은 피해자들을 격려하며 환송한 후 스마트폰으로 언론이 전해주는 소식에 주목했다.

▲ (사진=강찬호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대표쇼설네트워크)

돌아오기로 예정된 3시가 훌쩍 지나고 4시가 넘어서야 피해자들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피해자들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이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한결같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 경청해주었다”, “대통령이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줘 피해자들은 원 없이 이야기했다”,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오늘 아마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텐데 편하게 발언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충분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피해자들의 이야기부터 먼저 들으려 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이 세상에 알려진 후 7년 동안 그 누구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책임 기업이든, 정부든 자기들의 변명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보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사회의 무관심이었다. 피해자들은 절망과 소외감을 느꼈고 이 세상과의 높은 벽을 확인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가습기살균제 피해, 정부 대표해 가슴깊이 사과”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정부 최초로 국가 책임을 인정, 사과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결과적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피해사례를 빨리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그동안 정부의 미흡했던 대처를 인정했다.

▲ (사진=환경운동연합)

이와 관련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 대표는 “피해자들은 처음부터 정부와 가해 기업과 사과를 제1요구로 바라왔다”며 “이명박 정부는 쳐다봐주지도 않았고 박근혜 정부는 반쪽짜리 미봉책을 내놓았을 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책임 인정도 엄청난 일인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까지 해줬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과의 면담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밝혔다. 그 중에서도 ▲앞으로 대통령 차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직접 챙기겠다는 점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피해자들의 거듭된 지적에 공감해 주었다는 점 ▲원진레이온, 고엽제, LG화학 노동자 건강피해 사건을 거론하며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양상을 한가지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

이와 함께 ▲기존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을 원점부터 짚어보겠다는 점 ▲가해기업 수사와 처벌 등 진상규명을 재검토하겠다는 점 ▲가해기업 수사와 처벌 등에 대해서 범부처별로 나서줄 것을 지시했다는 점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모두 15명 어린 아들을 잃은 아빠, 동생을 잃은 누나, 아버지를 잃은 딸, 어머니를 잃은 아들,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어린 피해자, 아이가 아픈 엄마 등 모두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가 가족을 잃고 건강을 잃은 피해자들이다. 참석자들이 피해사례를 말할 때마다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끝이 아니라 앞으로가 진짜 시작입니다”

피해자들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참사’나 ‘재난’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시원하게 답변을 듣지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 오후 1시 30분 경복궁 주차장에서 15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태운 버스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청와대로 출발하기 전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피해자들을 격려하며, 정부책임을 촉구하고 책임자 처벌과 제대로 된 피해 대책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가습기넷)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때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과 인정’을 내세우며 여러 차례 정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이다. 현실에서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피해자 조사, 구제법 개정,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검찰 재조사 등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은 대통령과의 일회성 만남에서 그칠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부의 과제이다. 또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안전하고 책임 있는 국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력히 정부에 촉구했다.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병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90 서울 구로구 새말로 60 (구로동 산1-3번지) 10층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838-522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