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문제는 원론적인 문제의식이나 현실적인 해결책 모두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용하자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 은행을 외국자본이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을 개방한 상황에서 이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할 경우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은행을 갖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전에는 외국 자본 중 금융자본만 우리나라 은행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외국자본중 산업자본까지 우리나라 은행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은행을 여러 산업자본이 쪼개어 소유할 경우 과연 은행 경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산업자본 은행소유 문제
다음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 문제를 생각해 보자. 출총제는 그것 자체로는 매우 거친 제도이다. 또 여러 단점도 가지고 있다. 사전적 규제라서 사후적 규제를 중시하는 규제정책의 흐름과 부합하지 않고, 또 효율적인 투자까지 억제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와는 달리 선진국에서 유사한 제도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출총제는 매우 한국적인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 목표를 성취할 다른 정책수단을 구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출총제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출총제가 구현하려고 하는 정책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하나는 일반적인 경제력 집중 억제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회사 제도를 악용하여 자기 돈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고 지배력을 취득하는 가공 지배력 창출을 규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출총제를 폐지하려면 이 두 가지 정책목표를 구현하는 다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일반적인 경제력 집중 억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상의 경쟁정책과 관련한 규율이 실효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공 지배력 창출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환상형 순환출자나 비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장치가 도입, 강화되어야 한다.
시장주의 속 시장개입주의
마지막으로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규제완화의 타당성을 개별 규제별로 검토하는 것 이외에 전체적인 경제정책 운용기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을 시장주의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규제완화 움직임만 보면 시장주의를 중요한 정책기조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명박 정부가 매우 전형적인 시장개입주의 색채를 가질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이명박 당선자는 최근 유류세와 통신요금 인하를 거론했다. 그런데 유류세 문제야 정부의 정책결정 범위 안에 있는 것이므로 그 인하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통신요금 인하는 차원이 다르다. 통신요금은 민간기업의 영역이고 그 가격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정부라면 원칙적으로 통신요금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경쟁당국인 공정위가 경쟁정책적 고려에서 교정조치를 취할 때 뿐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가격을 인하하라는 것은 가장 전형적인 관치일 뿐이다. 물론 관치에 대해 기업들은 당연히 불편해 할 수밖에 없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규제완화가 될 수 있다. 즉 이명박 정부에서 규제완화는 그것 자체의 논리적 타당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치의 대가로 기업들에게 지불되는 지불수단일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규제완화를 우려의 눈초리로 보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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