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한국 선진화의 원년’이라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가 가장 먼저 칼을 댄 곳은 교육계였다.

지난 2일 교육부의 업무보고를 받은 후 대통령직인수위는 대학입시 업무는 단계적으로 대학에 넘기고 초중등 교육에 관해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으로 대폭 이양하기로 했다. 이로써 대학 신입생 선발권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서 맡게 됐고 지방자치단체들은 특목고 설립 자유 권한을 부여받았다.

왕태영 기자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가시화되면서 사교육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이에 대해 교육·시민단체들은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교조는 4일 발표한 논평에서 “소모적인 입시경쟁교육을 정부가 주도하면서 학업성취도의 책임은 시도 교육청과 학교,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 범위와 내용 확대 등의 수정을 요구한 ‘교육관련 정보의 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추진될 경우 지방교육청과 지자체는 평가 우위경쟁에 전력을 기울여 오로지 평가와 시험 준비가 교육의 전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교조는 “대학입시 자율화는 고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계를 무시하고 본고사 형태의 대학별 고사로 가게 될 것이며 고교 서열화와 고교등급제는 시간문제”라고 지적하며 “또한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20% 미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시도 교육청으로의 권한 이양은 교육복지 예산의 축소, 비정규직 교원 채용 증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교육부터 드러난 시장만능주의

이러한 우려는 이명박 당선자가 대선 후보일 때 교육공약을 발표한 뒤 교육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한 바 있었다. 당시 여러 차례의 교육관련 토론회에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 캠프에서는 공식적으로 불참을 알려왔었고, 공개질의에 대한 대답도 피했었다. 이명박 대선 후보의 교육공약은 국민들 앞에서 확실하고 철저하게 검증되지 못한 채 당선자의 교육정책으로 현실화될 위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는 오는 11일 전교조 사무실에서 ‘새정부 교육정책 분석과 교육운동 진영의 대응’이란 주제의 내부 워크숍을 열 예정이다.

대선 기간 동안에는 각 후보들의 교육정책이 이슈만 됐지 논의가 제대로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자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교육연대의 그간 운동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향후 행보를 정하게 된다.

전교조도 실패한 교육정책의 피해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요 교육정책이 결정되는 2월 안에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정책에 대한 공개 토론회 개최를 강하게 주장했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이제 학교 담장을 넘어 교실까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무차별적으로 교육의 시장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 정치는 성공할지 모르겠으나 교육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 공동회장은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구체적인 내용 없이 교육의 자율화라는 컨셉만 있을 뿐”이라며 “최근 교육문제가 더 불거지면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자신들의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정책 말 바꾸기

여성정책에 대한 반발도 크다. 인수위가 4일 여성가족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 참석한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보육의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시장 기능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무보고에선 여성가족부가 여성권익 및 능력개발에 실질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고 보육 예산도 지난 5년간 약 5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국민들의 정책체감도가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보육정책은 소득층의 경우 자율성을 확대하고 저소득층은 질 좋은 포괄적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 도입이 논의됐다.

하지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에서는 아동과 가족에 대한 돌봄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업무의 집중과 부처의 강화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밝혀왔다.

여성가족부 업무보고가 있기 하루 전인 3일에는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 논의에 여성가족부가 거론되는 것에 대한 여성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한국여성민우회 등 총 7개 여성단체들은 지난해 11월에 열린 대선후보초청 여성정책 생방송 토론회에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의 존치와 확대 및 개편을 묻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한 동영상을 다시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당시 이명박 후보가 “왜 그렇게 자신들이 없으시냐”며 “다른 부처에 흩어져 있는 여성가족부의 일들도 모아주겠다. 여성가족부는 뚜렷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다”고 말하며 재차 묻는 질문에 대해 “하겠다”고 답하는 모습이 나왔다.

왕태영 기자

지난 3일 오전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 중 여성가족부 통폐합 기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TV 생방송으로 진행된 여성정책토론회에 참가하여 대통령직에 당선될 경우 여성가족부의 존치와 강화를 약속했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는 당시 토론회 녹화테이프가 공개됐다.

남윤인순 여성연합 공동대표는 “인수위의 정부조직 통폐합 논의에 여성가족부가 1순위라는 얘기가 들려 긴급대응의 필요성을 느껴 기자회견까지 개최하게 됐다”며 “여성유권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여성정책총괄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존치 뿐 아니라 확대 및 개편까지도 약속했는데 정반대의 논의가 되고 있어서 우려 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성급한 대응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남윤 대표는 “물론 여성가족부의 폐지가 금방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개편방안의 기조가 정해지는 시기에 여성계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어 공동입장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지난 2001년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성차별 문제를 해소하고 남녀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신설된 여성부는 이후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된다. 여성부가 신설된 후 여성인권의 향상이 눈에 띄게 있었고, 보육 등의 가족 업무 등을 이관받아 성평등 정책을 통합 수행해 왔다.

여성계는 “현재 여성의 정치경제적 참여와 의사결정권, 소득 수준 등을 평가하는 UNDP의 여성권한척도 2007년 조사에서 한국은 93개국 중 64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며 “몇몇 분야에서의 여성 진출을 성평등이 모든 분야에서 이뤄진 것처럼 확대 과장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또 여성권한척도가 선진국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성평등교육 등을 전담하는 여성정책 전담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난 대선후보초청 공개토론회에 앞서 여성계가 대선후보들에게 보냈던 공개질의서에서도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는 “독일 등 대부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여성·가족정책은 별도의 독립된 기구에서 추진하고 있다”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성평등 가족관련 부처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상희 기자

전상희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