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업을 기대하며

내 인생의 첫 수업[29] 최승국l승인2008.01.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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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자신의 삶의 여정에 큰 영향이나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은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또 다른 이는 스승으로부터, 또 어떤 이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현들은 다양한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수양을 통해 도를 터득하고 이를 사회 속에서 풀어내 왔다. 나의 경우는 위의 사례들과 조금은 다른 경로를 통해 오늘의 내 모습, 즉 운동가로서의 길을 택하게 되고 녹색세상을 열어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삶

내가 운동가의 삶을 선택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바로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의 불만 섞인 잔소리와 이에 오버랩되어 내 생각을 머물게 한 아버지의 삶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은 80년 광주항쟁 이후 신군부에 의한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이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 거센 불길처럼 타오르던 시기였다. 당시 국어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께서는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곤 하셨다. “너희들은 대관령이 막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모르고 바보같이 공부만 하고 있다. 공부만 한다고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강릉에 소재하고 있었고 그 시절 강원도, 특히 영동지역의 정치의식은 매우 낮은 상황이었기에 아무도 광주항쟁이나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아리송하지만 뭔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평생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농사를 짓고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소작농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사회학과를 택하게 되었고 당시의 민주화운동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의 길을 가게 했다.

두 번째 내 삶에 큰 변화의 계기는 87년 대통령 선거이다. 87년 6월항쟁의 결과 직선제가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선거 당일 구로구에서 부정투표함이 발견되었고 우리는 부정투표함을 확보하고 구로구청에서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농성을 벌였다.

구로구청 부정투표 현장

나는 부정투표함을 지키면 거짓된 역사를 뒤집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고 구로구청 투쟁에 참여하였지만 무자비한 공권력에 한 젊은이의 꿈은 한낮 환상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당시의 운동방식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되었고 오랜 방황과 함께 휴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방황의 끝은 90년 가을, 시민운동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세 번째는 가치관에 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일이다. 환경운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학생운동 시절 가졌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고 환경운동도 사회변혁운동의 한 갈래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시기 어떤 계기로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 중 내 가치관에 큰 충격을 주는 이야기가 있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두 체제 모두 경제발전, 부국강병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이지만 90년대 그 이야기는 혁명적 발상으로 여겨졌다.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모두 인간만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 그 속에 진정한 생명존중의 마음도, 생태계의 질서도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다. 이대로 가면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는 없다. 인간과 생태계의 조화를 함께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사고를 발전시켜 갈 수 있었다. 이것이 녹색연합이 추구하는 ‘녹색주의’ 가치관의 출발점이 되었다.

죽비 같던 법륜 스님의 말

인생의 변화는 거창한 계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작은 인연을 어떻게 본인의 삶과 연결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크든 작든 그러한 인연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그것을 긍정의 방향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내 인생의 새로운 수업도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되어갈 것이다.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

최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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