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문화적 저항운동의 정점

<특별기고>1968-2008 : 프랑스의 68년 5월운동 40주년 정수복 파리특파원l승인2008.01.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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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회를 꿈꾸는 새로운 기획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시대의 도래
시민사회 변화는 일상서 출발한다

2008년은 1968년 5월운동의 4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유토피아적 경향이 강했던 프랑스 5월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봄으로써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다양한 참여자들이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삶을 꿈꾸는 능력을 키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68년 5월운동은 계획되기보다는 자연발생적인 성격이 강했던 운동이다. ‘제2의 프랑스 혁명’으로 불리는 68년 5월운동은 전후 프랑스 사회를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몰아 넣었던 극적인 사건이었다.

파리와 프랑스 전역에서 900만에 달하는 대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학교와 공장, 공공건물을 점거하고 밤을 지새우며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삶을 주제로 토론하였다. 68년 5월운동의 진앙지였던 낭떼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였던 알랭 투렌은 68년 가을에 출간된 5월운동을 분석한 책의 제목을 ‘5월운동 또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라고 붙였다.

68년 5월은 타부와 금기를 거부하고 기존의 모든 것에 대한 비판이 가능했던 꿈같은 순간이었다. 5월운동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각과 감수성이 폭발한 문화혁명이었다. 68년 5월운동은 2차 대전이 종식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에 일어났다. 전후 출산율이 급증하던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나 풍요의 시절에 성장기를 보낸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되어 공장 노동자들로 확산된 68년 5월운동은 프랑스 사회에 문화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프랑스 사회의 문화적 지각변동

68년 5월운동은 냉전적 이데올로기 상황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독일점령 시기 ‘레지스탕스라’고 불리는 항독 투쟁을 통하여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면서 전후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시민사회신문DB
68년 세대는 모든 구속과 억압과 타부를 깨고 욕망의 해방을 주장함으로써 기성세대의 금욕주의 윤리에 도전했다.
미소를 정점으로 하는 냉전체제 속에서 파리가 세계적으로 좌파 지식인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지적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프랑스 공산당의 존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냉전기 프랑스의 지성을 상징하는 쟝-폴 사르트르는 1950년대에 “공산주의는 20세기의 넘어설 수 없는 지평”이라고 말하면서 양심 있는 지식인이라면 공산당원이 되지 않더라도 공산당의 동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오늘날 그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현실인식 능력이 없는 교조적 입장이었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1968년 5월운동 과정에서 당시 학생운동의 지도자 다니엘 콘벤디트와의 라디오 토론에서 프랑스 공산당이 드골 정권과 합작하여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1968년 5월 운동은 공산당을 비판하는 좌파 이데올로기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새로운 지평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고쉬스트’라고 불리는 공산당 왼쪽의 극좌파들의 활동이 그 하나이고 ‘뉴 레프트’라고 불리는 개혁적 신좌파가 다른 하나이다. 먼저 극좌파들은 소련공산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프랑스 공산당을 비판하면서 트로츠키와 모택동,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초상을 대학의 벽에 붙였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모델로 한 프랑스의 마오이스트들은 지식인의 민중화를 주장하면서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파리 교외의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프랑스 공산당이 쇠퇴하는 반면 트로츠키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의 극좌파들은 아직까지도 10퍼센트 내외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다른 한편 1968년 5월운동은 1958년 알제리 사태 이후 위축되었던 사회당이 새롭게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71년 에피네에서 열린 전국대회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프랑스 사회당은 68년 5월 운동의 주도 세력들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68년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려는 새로운 좌파 정당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사회당은 계급문제와 더불어 성차별문제, 세대문제, 지역문제 등을 모두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였다. 이후 사회당은 공산당과 ‘좌파연합’을 형성하여 선거에 임하였고 공산당과 ‘공동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시하면서 1980년 미테랑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68년 5월운동은 프랑스 공산당과 드골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정치질서에 반대한 정치운동이었으면서 동시에 문화적 저항운동이었다. 전후의 지속적인 산업화로 사회구조가 바뀌고 자유롭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모습이 요구되던 시기에 프랑스의 가족, 학교, 기업 내의 인간관계는 매우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기에 정신분석학자들은 5월 운동을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듬직한 보호자의 이미지를 내보이며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던 드골 대통령에 대한 거부는 바로 사회생활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통제와 규제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었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반항의 이미지를 풍기는 영화배우 마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자기 세대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청바지를 입고 조니 할리데이의 음악을 즐겨 듣던 당시의 젊은 세대는 자유로운 남녀 관계와 성해방을 주장하였다.

정수복
68년 5월운동 당시 학생들에 의해 점거됐던 소르본느 대학 앞 광장

68년 5월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파리 교외의 낭떼르 대학의 학생시위가 남녀학생 기숙사의 상호방문 시간을 밤 10시로 정해 놓은 것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었고, 때마침 이 학교를 방문한 교육부 장관이 “그런 주장하지 말고 새로 지은 수영장에서 젊음의 열기를 식혀라”고 한 발언으로 불이 붙었음은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파리의 밤을 밝힌 바리케이드의 밤에 남녀 대학생이 깃발을 들고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은 5월운동이 정치적 저항과 더불어 성해방을 추구하는 것임을 상징한다. 당시 마르쿠제와 빌헬름 라이히의 책이 대학가에서 널리 읽혔다거나 1969년에 프랑스의 반항적 가수 세르즈 겡스부르가 ‘69년은 에로틱한 해’라는 노래를 히트시켰던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욕망의 해방을 주장하다

68년 세대는 모든 구속과 억압과 타부를 깨고 욕망의 해방을 주장함으로써 기성세대의 금욕주의 윤리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상의 언어생활에도 나타나 부자간에 또 사제간에 존칭이 없어지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상황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반한 새로운 감수성을 표현하였는데 이들은 이후 연극, 영화, 음악 등 문화의 각 분야와 언론과 인도주의적 활동의 영역에서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주도 세력이 된다.

영화감독 고다르와 ‘리베라시옹’ 지를 창간한 세르쥬 쥘리, ‘국경없는 의사회’를 만든 현 외무부 장관 베르나르 쿠슈네르,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 다니엘 콘벤디트 등은 68세대의 주요 인물이다. 1990년대 미국을 거쳐 한국에 상륙한 ‘프랑스 이론’이라는 사상적 흐름도 68년 5월운동의 분위기를 통해 새로운 사상운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알랭 투렌의 새로운 사회운동론, 르페브르와 보드리아르의 소비사회와 일상성 비판, 미셸 푸코의 정신병원과 감옥을 포함한 억압과 감시의 체제에 대한 이론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라캉으로 대표되는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외티푸스 사상 등은 68년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지만 68년 5월 운동 이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발전하였던 것이다.

운동은 다시 만들어진다

역사에는 새로운 사상과 사회운동이 끓어오르는 시기가 있고 기존체제를 유지시키기기에 급급한 시기가 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꿈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현실화되면 운동의 열기는 사라진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꿈이 만들어진다.

68년 5월운동의 꿈은 지난 40년 동안 현실적 힘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앞으로 올 40년을 위한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할 때가 왔다.

새해를 맞이하여 정권교체를 경험한 한국의 시민운동도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꿈꾸기를 시작할 때이다.



정수복 파리특파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청연구원

정수복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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