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영 기자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은 지난 4일 오후 17대 대선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조망하는 포럼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개최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학 교수, 이광일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부관장

▶발표=조희연 민운연 소장

대선에서 신보수 후보가 과반수에 근접한 48% 이상의 지지를 받게 된 데에는 먼저 신보수 후보와 경쟁하는 중도자유주의 후보나 급진진보후보가 대안적 프레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신보수 후보의 무수한 도덕적 흠결-탈세, 위장전입 등-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가 이동할 수 있는 ‘대안적인 목표점’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중도자유주의 후보는 ‘혁신된 개혁적 경제담론’을 가시화하지 못했고 급진진보 후보는 ‘반(反)신자유주의적 급진경제담론’을 대중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대안적 프레임은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정책적 콘텐츠로 구성된다. 단적으로 노무현 정부와 단절된 ‘포스트-노무현 프레임’, 즉 민주정부의 통치 실패를 상쇄하는 혁신된 프레임을 형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신보수 정권이 구체화하게 될 지향은 ‘친기업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회생담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보며, 국가성격이라는 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적 경쟁국가’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에 조응하는 새로운 국가의 재구조화라고 볼 수 있다.

신보수의 주요한 화두는 ‘선진화’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라는 슬로건은 신보수를 산업화 시대의 구보수와 차별화하면서 자신들의 참신성과 단절성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친기업적인 신개발주의가 상당 부분 ‘박정희식 선진화’ ‘폭력적 선진화’ ‘불도저식 개발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게 있다고 보여진다. 60~70년대의 친기업적인 구개발주의적 큰 성찰 없이 그대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맥락에 대입되는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취임 후 수일 만에 만난 재벌총수들에게 ‘투자고충을 위해서 전화를 수시로 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과거 구 개발주의 시대를 뛰어넘는 ‘친기업적인’ 그것도 ‘친재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들의 투자촉진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식의 자세로는 구개발주의의 실패를 넘어설 수 없다. 잘못하면 60~70년대의 불도저식 개발주의의 부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장화와 상품화, 상업화를 확대하고 시장자율적·친기업적 정책을 전면화하고자 하는 흐름과 반대로 사회 공공성의 이름으로 이러한 시장적 질서를 공적·사회적으로 규율하며 나아가 친기업적 정책에 반대하고자 하는 흐름 간의 대립이 강화될 개연성이 크다.

앞으로 신보수 정권에게는 자신들의 ‘새로운’ 친기업적 신개발주의 드라이브가 동반할 ‘새로운’ 도전들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하는 과제가, 중도자유주의 정치세력 및 사회세력, 급진진보적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에게는 이러한 도전이 동반할 대중들의 ‘새로운’ 정서를 어떻게 새로운 프레임 속에서 전유할 것인가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신보수 정권시대의 등장을 아시아 민주화의 일반적 경로에서 보면 ‘퇴행’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새로운 경로로서의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신보수 정권 시대의 개막과 이후 저항의 행로는 또다른 의미에서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국가에게 새로운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실용’이데올로기와 진보정치

▶발표=이광일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부관장

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선거를 이념이 탈각되고 실용이 압도한 선거라고 합창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러한 평가는 보수의 언어로 현실을 가리고자 하는 반지성적인 평가이다. 지금 지구적, 일국적 수준에서 전개되는 정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발상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97년 이른바 IMF위기 이후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신자유주의로 전화한 이후 한국정치의 궤적 또한 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번 선거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념이 탈각되었다고 하니 기이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신보수’와 ‘구보수’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무현 정권으로 상징되는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과 이번 대선을 통해 새로운 집권세력의 주류를 형성하게 된 이른바 ‘신보수’와의 경계가 더욱 희미해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반공’, ‘평화’라는 범주를 끌어들여 그들 사이의 차이를 계속 부각시키려는 시도는 정치를 주의주의의 영역에 가두어두려는 기존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것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이번 대선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패배한 진정한 이유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기능을 할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완패한 세력은 진보정치세력이다. 민주노동당, 사회당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 정당의 재편, 향후 정치적 행보와 관련하여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민주노동당을 대표하는 두 정파들, 이른바 ‘평등파’와 ‘자주파’가 과거에 뿌렸던 땀과 눈물로 현재 자신들의 진보성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굳이 ‘87년 체제’의 종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와 진보는 과거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비대칭적, 억압적 사회관계들을, 따라서 그 안에 내재된 권력관계들을 넘어 그것들을 끊임없이 재구성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진보는 오직 지금 이 순간 그러한 관계의 어디에 서 있는가를 유일한 판단의 준거로 삼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당은 어떤가. 그 대선후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선출되었는가. 그것이 내세운 ‘사회적 공화주의’는 또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가. 그에 대해 대중은 물론 그 당원들조차 의아해 한다.

그렇다면 이 초라한 3.07%(민주노동당+한국사회당 대선 득표율)를 가지고 진보정치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좌고우면할 일이 남아 있는가. 진정 대중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면, 그리하여 그들의 관심을 ‘더불어 사는 관계’에 대한 관심의 방향으로 구부리고자 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을 버리고 진보정치를 재구성하는 길밖에 없다.

그 방법이 어떠하든 민주노동당은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고한 자주파’들이 지닌 발상들, 행태들과 단절하는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최소한 급진민주주의적인 소양을 지니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분열된 사회관계들에 더욱 천착하면서 진보의 언어와 틀을 재구성하기 위한 첫발이, 따라서 ‘초심’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

진보·개혁진영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발표=박순성 참여연대 운영위원장·동국대 교수

현재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전반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있다. 비정규직의 대량양산은 구조화되고 있으며 산업구조도 노동계급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전통적인 토건국가전략에 덧붙여 새로운 형태의 국토개발전략이라고 할 금융·상업·관광 중심의 ‘두바이식 성장 전략’이 한국 경제를 지속적으로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성장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재의 양극화는 성장과 함께 심화될 것이다.

때문에 경제·사회·정치·외교·문화 차원에서 변화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미래지향적 가치에 기초한 실현가능한 정책대안을 내어놓을 때 진보·개혁 진영에게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은 그동안 ‘문제들’ 자체를 지적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으나 대북정책을 제외하고는 체계적 분석과 정책대안을 내어놓는 데에서는 한계를 보여 왔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와 세계화의 영향력으로 국민들의 의식 구조가 바뀌었다. 정치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사회의식을 말한다. 미래지향적 관점과 변화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진보적 가치체계(평화, 인권, 환경, 발전 등)의 재정립, 사회경제제도와 정책수단의 체계적 재구상이 필요하다.

진보·개혁 진영이 대중과 성공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존중·애정이 모든 소통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대중을 폄하하는 모든 생각과 말은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인뿐만 아니라 지식인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70~80년대와 비교하여 진보·개혁 진영은 상당 정도 엘리트주의적이고 중상층 지향적이며, 또한 중앙정치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며 대중의 현실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진보·개혁 진영은 가치의 전선이다. 근대사회의 진보적 프로젝트에서 핵심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의 ‘종합적’ 실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거대담론으로 진보·개혁 진영을 묶어내기란 쉽지 않다. 한국사회성격논쟁, NL/PD 대립 구도, 분단체제론 이후 한국 사회를 하나의 거대담론으로 묶어내려는 진지한 시도는 없었으며, 이는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는 있었지만 진보·개혁 진영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모호함은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강점이 되기도 한다. 이미 한국 사회는 하나의 잣대로 이념 지평을 그리기는 불가능하다. 가치체계의 재구성과 전망의 재구상이 필요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프레임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진보·개혁 진영의 기반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역할 분담과 상호 보완을 통해 구축될 수 있다. 정치공학에 편향되지 않은 제도정치의 작동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운동정치는 제도정치의 사회적 기반이며 진보·개혁 진영의 물적, 인적, 이념적 자산은 시민사회운동으로부터 나온다. 싱크 탱크는 정책과 담론의 산실이며 동시에 운동정치와 제도정치를 매개하고 진보·개혁 진영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가 될 것이다.

정리=이재환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