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결과를 풀이하면서 지금 시민사회 진영은 새로운 진보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 등장, 즉 ‘신보수 정권’의 탄생과 함께 괘를 같이한다. 혹자는 진보를 기존의 비대칭적, 억압적 사회관계 안에 내재되어 작동하는 권력관계들을 더 호혜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바로 이렇기에 근대정치에서 진보와 민주주의는 분리시킬 수 없는 쌍생아로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난 4일 진보의 고민을 발산한 한 토론회를 주목한다.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가 주관한 ‘17대 대선 이후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를 말함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중이 획득한 제도정치적 공간에서의 진보적 개입전략과 대중운동 강화 등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병행하는 전략을 주문한다. 사회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제도정치 진보화-사회급진화의 병행전략 혹은 제도정치적 실천과 사회투쟁적 실천의 병행전략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조 교수는 급진민주주의적인 대항담론과 비전을 제도정치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된다는 것을 설파했다. 제도정치적 공간에서의 대안적인 진보적 정치실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에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숨어있음을 시인한다. 우선 이명박 정권이 ‘신보수적 희망’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하면, 신보수적 희망을 ‘대체’할 수 있는 ‘급진적인 새로운 희망과 그것을 표현하는 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향후 신보수적 경제담론에 대응하는 대항담론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광일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부관장은 진보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 시기 오히려 스스로를 다듬어야 하는 세력은 다름 아닌 진보정치세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관장은 자신들을 ‘중도개혁민주주의자’로 포장해 대중에게 소개해 왔던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이 스스로를 ‘좌파신자유주의정권’이라고 언급했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좌파신자유주의’라고 했을 때,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좌파’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이 부관장은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그들에게 문제시할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구조이자 관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임을 예로 든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2007년 대선을 통해 진보개혁 진영은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강조한다. 다방면에서 변화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미래지향적 가치에 기초한 실현가능한 정책대안을 내어놓을 때, 진보·개혁 진영에게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진보개혁 진영에 대해 그동안 ‘문제들’ 자체를 지적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으나, 대북정책을 제외하고는 체계적 분석과 정책대안을 내어놓는 데에서는 한계를 보여 왔다고 지적하면서 현 단계에서 핵심적인 변화 또는 변화 요인인 양극화 경향의 고착화, 동북아 외교안보 질서 변화,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 심화, 중국 경제의 성장 심화와 불안정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종합하면 진보는 이제 더 이상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성찰과 반성은 필요하지만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을 위해서는 보수적 사회변화에 수수방관할 여유가 없다. 2008년 시민사회가 새로운 형국에 봉착돼 있는 만큼 대안적 시민사회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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