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운하 강행 “국민검증기구 설치를”

노무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 새만금 개발 재개를 발표한 후 정권 내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인 지속가능한 발전에 역행하는 반 환경적 정책이란 지적을 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인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국토를 종횡하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강력히 밀고 있다.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지난 4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 건설로 일자리 70만개가 창출될 수 있다”고 함께 언급했다. 공론화 언급보다 더 눈에 띄는 추진 의지다.

이명박 정부 출범에 앞서 시민사회는 대선 전부터 지적해온 운하 건설 사업이 현실화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과도 또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 사업과도 그 내용과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환경 재앙이자 사회갈등 유발 사안이란 것이다.

기업들도 앞장서나

정권 초기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대상으로 일찌감치 운하 사업을 낙점한 이명박 당선자의 행보는 국내 기업들의 투자 유치 활동으로 본격화됐다. 결국 4일 삼성물산,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국내 시공능력평가 5위 이내의 대형 건설사들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위한 공동 협의체를 구성할 뜻을 밝혔다.

앞서 1일 인수위는 “건설업체 사장들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 참여 요청 단계도 아니고 그런 사실도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단지 자문을 구한 것이며 건설사들이 운하에 대해 적극적”이란 설명이 덧붙여졌다.

불과 몇 일만에 그것이 ‘요청에 따른 호응’이건 ‘자발적 참여’ 든 컨소시엄이 구성돼 인수위 및 한나라당 일각에서 흘러나온 올해 초 착공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공청회 등을 통해 공론화 과정을 벌이겠다던 인수위의 언급은 뒤로 밀린 형국이다.

이에 대해 전국 환경단체들로 구성된 경부운하저지국민행동(국민행동)은 “당시 인수위의 부인은 5대 건설사들에게 특혜를 주려는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뿌리치기 위한 성격이 짙다”며 “설사 건설업체에서 장 팀장에게 자문을 구한 것일 뿐이었다 하더라도 인수위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국민행동은 “지금 인수위가 해야 할 일은 건설사 사장 몇 사람들에게 사업을 설명하고 검토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검증을 받는 일”이라며 “인수위가 운하 건설 타당성에 자신이 있다면 한반도 대운하 국민검증기구 설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일찌감치 운하 건설이 환경문제를 비롯해 추진 이유의 핵심인 경제성에서도 재앙에 가까운 문제점이 드러난다며 조목조목 반발하고 나선 바 있다.

국민행동은 “그간 이명박 당선자는 경부운하 공사비 절반을 민자로 충당하겠다고 호언장담해 왔지만 투자여부를 저울질하는 민간자본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하이용료와 손실보전 등 투자자본의 회수방식”이라며 “따라서 인수위는 건설사 사장들을 만나고 다닐 것이 아니라 먼저 베일에 싸여있는 투자유치 조건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지목했다.

투자유치 조건은 무엇?

또 “해외자본과 오일머니 운운하며 국민들을 현혹해선 안되며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는 해외자본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이들이 어떤 조건으로 투자에 참여하길 원하는지 밝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측하기 힘든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운하 건설 사업이 투자유치 논의부터 투명한 설명없이 ‘일단 삽을 뜨고 보자’는 식으로 가는 실정에 대한 문제제기다. 초기 환경단체들이 가장 큰 반대 명분으로 들고 나선 공론화 부재가 역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행동은 “이명박 당선자와 그의 측근들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홍보 부족과 정치논리에 의한 반대로 폄하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18대 국회에서 대운하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대통령 당선이 곧 ‘한반도 대운하 당선’인양 운하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다음달 초에 열 계획이라는 한반도 대운하 토론회 역시 건설적인 토론 보다는 국민 여론을 수렴했다는 명분축적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국민투표 실시하자”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 2004년 서울시장 재임 시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민행동은 “한반도 대운하라고 해서 예외가 되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이명박 당선자는 인수위 내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팀을 해체하고 국민검증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증기구에서 종합된 내용을 충분히 알린 후 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밝힐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태영 기자

"세계에서 제일 큰 분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서울 시장 당시 최대 업적으로 일컬어지는 청계천. 시멘트로 물길을 만들고 전기로 물을 흐르게 하는 청계천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환경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국민행동은 “자신이 집착하는 공약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추진하고 보자는 것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갈등을 조장해 국민들의 역량을 소진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일부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선 한반도 운하 건설 찬성 국민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도 문제로 제기된 운하 건설 사업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는 상당수 국민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운하 건설 사업 곳곳에서 보이는 문제점들로 ‘당내 경선용’으로까지 치부됐던 사업을 공약화에 이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민사회는 이명박 당선자의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미리 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재환 기자

이재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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