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소크라테스’ 시노페 출신의 디오게네스

철학여행까페[17]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01.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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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코린토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

아리스토텔레스를 쓰고 나서 몇 주 동안 연재를 하지 못했다. 그동안 애독해 준 독자들에게 미안하지만, 작년 년 말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충격으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미국 출장길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황망하게 다시 한국으로 날아왔지만 끝내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죄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눈물과 회한으로 아버지를 대전 현충원에 모시고 오니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철학자가 된 까닭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무욕’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고지식했고 무능력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아버지가 남겼던 말씀은 이런 것이었다. ‘욕심을 버려!’

왜 아버지는 ‘무욕’한 삶을 살라고 했던 것일까. 무욕한 삶이란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무욕’ 한 삶을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욕의 삶을 실천하다

디오게네스는 소크라테스 그룹에 속한 철학자이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행했던 ‘거리의 철학’의 전통을 가장 잘 이어 받은 제자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제자 그룹 중 주류라면, 디오게네스는 비주류에 속한다.

둘 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지만 플라톤과 디오게네스는 서로 앙숙이라고 할 정도로 생각이 달랐다. 플라톤은 인간을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이라고 정의했다. 그 소리를 들은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에게 털 뽑은 닭을 보내 그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라고비판했다.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이 욕망을 버릴 것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화려한 집에 사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 했다. 비오는 날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의 침실에 뛰어 들어 진흙투성이 발로 침대를 마구 더럽혔다고 한다.

‘냉소적 이성 비판’을 쓴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는 디오게네스의 이런 행동을 플라톤의 귀족적 이상적 철학에 대한 ‘평민적’ 대응이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는 플라톤과 달리 소크라테스의 전통인 ‘거리의 철학’ 전통을 고수했다.

디오게네스는 사사건건 플라톤을 물고 늘어졌다. 플라톤은 디오게네스를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욕을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렇게 부름으로써 디오게네스를 소크라테스의 반열에 오르게 한 셈이었다. 디오게네스는 그에게 삼킬 수 없는 가시였다.

디오게네스는 시노페 출신이다. 시노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7세기에 세운 도시이다. 오늘날 터키 북부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시노페라는 도시는 이렇게 생겨났다고 한다. 시노페는 강의 신 아소포스가 강의 신 라돈의 딸 메토페와 결혼하여 낳은 딸이다. 요정 시노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제우스는 신처럼 빠른 발을 가진 시노페를 붙잡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했다.

이동희
플라톤과 디오게네스 닭을 놓고 인간에 대해 논하다
그렇게 붙잡은 시노페의 사랑을 구하기 위해 제우스는 그녀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자 영리한 시노페는 항상 처녀로 남게 해달라고 대답했다. 제우스는 화가 났지만 하는 수 없이 시노페의 처녀성을 지켜 주었다고 한다. 제우스가 시노페를 붙잡은 곳에 도시가 세워졌는데, 그 도시의 이름이 바로 시노페다.

이런 신화가 있는 고향 시노페에서 디오게네스는 돈을 위조하다 걸려 추방당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환전상이었는데 시노페 시로부터 위탁받은 공금을 다시 주조하여 가짜 돈을 만들었다. 이 사실이 탄로나 아버지는 종신형에 처해졌고, 그 아들은 추방형을 받았다.

고향에서 쫓겨 난 디오게네스는 아테네로 오게 된다. 그는 아테네에 오자마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안티스테네스가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안티스테네스에게 자신을 제자로 삼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안티스테네스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그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제자 두기를 지극히 꺼려하는 안티스테네스는 몽둥이를 휘둘러 그를 쫓아내려 했다. 디오게네스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스승님, 마음껏 때려 주십시오. 그러면 뭔가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몽둥이는 나를 쫓아 버릴 수 있을 만큼 그리 단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몽둥이로 때려주십시오”

어쩔 수 없이 안티스테네스는 디오게네스를 제자로 삼았다. 디오게네스의 스승 안티스테네스는 ‘진짜 개’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사람들은 안티스테네스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키니코스’학파라고 불렀다. 키니코스는 떠돌이 개라는 뜻의 쿠온에서 나온 말이다. 철학사에 보면 키니코스 학파를 개견(犬)자에 선비 유儒자를 붙여 견유학파라고 점잖게 번역을 해놓았는데 실제 뜻대로 번역하면 ‘개 같은’ 학파이다. 그들은 개들처럼 떠돌아 다녔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아테네의 속물들을 가차 없이 물어뜯었다. 디오게네스도 플라톤을 물어뜯었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의 허영과 위선도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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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만나는 디오니소스
디오게네스에 관한 일화는 많다. 잘 알려진 이야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가 만난 이야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를 정벌하고, 코린토스에 있었다. 대부분의 정치가나 학자들이 대왕에게 인사를 하려 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괴짜 철학자의 명성을 익히 들었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디오게네스는 오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코린토스 교외의 크라네이온으로 이 괴짜 철학자를 몸소 찾아 나섰다. 디오게네스는 양지 바른 곳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대왕이 와도 기척도 안하는 그를 보고, 알렉산드로스가 기분이 상했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나는 개 같은 디오게네스요.”

“내가 무섭지도 않은가?”

“그대는 선한 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선한 자를 뭣 때문에 두려워 하겠는가?”

“그대가 바라는 것을 말해 보라.”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주었으면 하노라.”

대왕은 디오게네스가 건방졌지만 그에게 점점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시종 무관들은 무례한 디오게네스에게 벌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을 말리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만약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일세.”

디오게네스는 걸레 같은 옷 하나와 음식을 담는 그릇과 사발 하나만을 가지고 둥그렇게 생긴 개 집에서 살았다. 그는 집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개 집 속에서 살았다. 나중에 그는 떠돌이 개처럼 개집마저도 완전히 없애 버렸다.

그는 옷이 많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단벌옷으로 지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벗고 다녔다. 그는 아이가 우물에서 손으로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는 사발과 그릇마저 내던져 버렸다.

그가 이렇게 산 것은 영혼의 최고선인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감정과 육체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금욕의 노예’ 가 되고 싶지 않았다.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그것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맛있는 음식에 입을 대는 그런 사람이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허영과 사치 그리고 위선을 버렸다. 그는 성욕이 오르면 시장 바닥에서 태연하게 자위를 할 정도로 뻔뻔했다. 뻔뻔한 게 아니라 아예 남의 시선이나 평판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테네시민들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이냐고 그를 비난하면, 오히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아, 배고픔도 이렇게 뱃가죽을 몇 번 쓰다듬어 주는 걸로 해결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

디오게네스는 뻔뻔한 이런 행위를 통해 아테네 시민들의 위선을 이렇게 개처럼 물어 뜯은 것이다. 너희들은 성욕이 끓어오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추잡한 짓을 하지 않느냐고.

그는 이런 행동들을 통해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철학을 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무소유’와 ‘무욕’을 통해 어떤 것에도 얽히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보여 준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90세 가까이 되어 스스로 숨을 멈추어 죽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유해를 땅에 묻지 말고 맹수들의 먹이감으로 던져주라고 유언을 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그의 유해처리를 놓고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 그를 묻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그들은 그의 무덤에다 돌기둥과 대리석 개로 만들어진 기념비를 세웠다. 나중에 위조범이라고 그를 쫓아냈던 고향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세워 그를 기렸다.

“시간이 동상을 갉아먹겠지만, 디오게네스여/ 그대의 영광은 영원하리라/ 그대는 인간에게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보여주었고/ 행복의 지름길을 가르쳐주었으니”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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