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건강

색깔있는 역사스케치 [25] 정창수l승인2008.01.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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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란 주된 식량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주식은 쌀이다. 이 땅에서 벼가 언제부터 제배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충북청원군 옥산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만1천년 전 이상) 볍씨가 발견되어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있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따르면 “백제 2대 문루왕이 즉위6년(32년)2월에 명을 내려 처음으로 벼를 심을 도전(벼논)을 만들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도 고구려 사람들은 쌀을 먹지 못했다. 그들은 벼농사를 모르고 밭작물만을 재배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쌀은 처음에는 주식이었으므로 화폐와 같은 역할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지존의 자리에 오른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세종 때만해도 세금으로 400여만석의 쌀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중 상당부분을 비축하고 여진과 일본에 쌀을 수출했으며 일부는 원조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평화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에서 쌀이 곧 국력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이러던 쌀은 조선시대 개항이후로는 큰 분쟁의 씨앗이 된다. 조선의 경제를 잠식한 일본은 1891년 한해만도 전체 생산량의 3분의1 인 94만석의 쌀을 일본으로 유출했다. 쌀값 폭등으로 당시 일본인이 만든 전당포에 옷과 물건을 맡기고 고리대를 뜯긴 사람들로 경제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당황한 조선정부는 쌀 방출을 막는 방곡령을 내렸다가 이 또한 일본의 압박으로 철회되었다. 아무튼 이 때 가장 큰 재미를 본 사람은 미곡상이며 정미소 주인인 서양인 타운센트였는데 이를 조선 사람들이 발음이 잘 되지 않자 ‘담손이 방앗간’으로 불렀고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정미소이다.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재상이던 이용익의 주도로 안남미를 들여왔다. 안남미는 베트남에서 생산된 인디카 계통의 쌀로 우리 쌀과 달리 찰기가 부족하다. 더구나 혼을 빼앗긴다며 정체성 훼손을 우려한 농민들은 격렬히 저항을 했고, 쌀은 군대의 경호를 받으며 수입되었다. 당시 ‘수입쌀을 먹으면 애비 에미도 몰라 본다’ 등의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미국쌀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차이가 있다면 정치적 압력으로 수입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1969년에는 100만톤의 쌀을 수입했는데 곡물메이저들이 쌀을 먹는 일본과 한국 때문에 생산하는 캘리포니아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밀가루나 쌀이나 팔면 그만이었다. 또한 이 쌀은 정치자금 확보에도 큰 보탬이 되었고 그 와중에 코리아게이트의 박동선 같은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여하튼 쌀 부족에도 불구하고 저곡가 정책을 쓰고, 혼분식 장려로 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켜 전두환 정권에 이르러서는 쌀 소비량이 감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쌀 수입을 강요하여 한때 1천만석의 쌀이 재고로 남기도 했다. 이것이 정부미였고, 정부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온 계기가 된다.

최근에 우리 식단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1997년에 102kg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이 78.8kg으로 줄어 채소류 154kg, 과일류 62kg에 비해 현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주식은 채소가 된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전체적인 식사감소 때문으로 끼니를 거르는 횟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히 쌀의 감소뿐만 아니라 건강의 악화를 불러오는 현상이기 때문에 심히 우려스럽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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