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사건 진실규명해야

수사외압에 대한 재조사 촉구 기자회견 양병철 기자l승인2018.01.18 12:4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주최로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을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영화 ‘1987’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1987년 1월 박종철군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과 시민들은 군사독재 정권의 폭력에 항거하며 민주주의에 열망을 안고 거리로 나왔다.

▲ (사진=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전 국민의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헌법 개정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속에 잊혀진 사건이 있다. 가장 가난했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1975년 국가는 ‘내무부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를 근거로 ‘부랑인’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만들었다. 집이 없거나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란 낙인을 찍고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수용소’에 잡아 가두도록 국가가 지시했다.

부랑인을 2등 시민쯤으로 여겼고 감금과 배제를 당연한 통치 수단으로 여겼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 주도하에 진행한 불법 감금, 폭력, 노동 착취, 사망 등 국가폭력의 문제였다. 

1987년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거리로 뿜어져 나온 혁명의 해로 기억되지만 그해 따뜻한 봄날, 거리로 나오지 못하고 또 다시 수용소로 ‘전원조치’된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자리에 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동안 피해 생존자들은 ‘니가 못나서 잡혀 온 거야’란 끊임없는 세뇌를 받았고 그로 인해 감금당한 채 착취당한 삶을 부끄러워하며 ‘부랑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고자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다.

하지만 ‘인권’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터득한 피해 생존자들은 지난 30년의 세월을 ‘그림자 인간’처럼 보내지 않기로 했다.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소 정책이 국가 정책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실상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공저)의 출간과 대책위, 피해 생존자모임이 지난 6년간 지난하게 해온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는 ▲누가, 왜, 시민들을 잡아가두었는가? ▲수사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수사축소와 왜곡으로 우린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 왔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대상 사건으로 인정해 줄 것”을 이들은 강력히 제안했다.

최근 10여년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적폐만 주로 청산하겠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적폐를 인지하고 안 순간, 시기를 정할 수 없는 문제다. 당시 검찰수사에서는 박인근 원장 개인의 횡령 등을 중심으로 수사하다가 피해자 인권침해로 전환하려는 순간 “그만 둬”라는 수사중단 외압을 받았다.

그로 인해 피해자 입소과정, 수용 중 폭력과 강제노역, 성폭력, 과다약물 투여, 그리고 사망 사건은 전혀 수사를 착수할 수 없었다. 수사 기간 중 폭력으로 사망한 수용자의 사망진단서에 ‘자연사’로 기재된 것을 발견하고 그 허위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촉탁의를 기소하려는 것 조차 윗선의 압력으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렇듯 국가는 과거에도 또 현재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의 그 실체적 진실을 전혀 밝혀내지 않고 있다. 19대 국회, 20대 국회, 이렇게 5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형제복지원 특별법만 바라보던 피해 생존자들이 특별법 통과를 염원하며, 벌써 72일째 국회 앞에서 찬바람과 싸워가며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들은 “87년 봄은 따뜻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외되고 잊혀진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우리 모두의 철저히 조작되고 은폐된 한국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검찰의 재조사로 권력에 의해 묻혀진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조금이라도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이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에서 일어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같은 인권유린의 근거는 국가가 제공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령이 그것이다.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이 훈령을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이었다.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2014년 7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계류중이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병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