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의 분발 과제

합리적이며 비판적 시민권력 김호기l승인2008.01.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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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선거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사이의 견제 및 균형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지만, 대통령제 아래서 행정권력은 입법권력보다 우위에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대선을 통해 야당으로의 권력 교체가 이뤄졌을 경우 그 영향은 사회 전반에 미치게 된다.

이번 대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 동안 권력 밖에 있던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사회 전반에서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경제정책, 교육정책, 정부조직 개편, 그리고 대운하 건설 등에 이르기까지 인수위원회가 연일 발표하는 정책들이 결코 작지 않은 사회적 파장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연 곧 출범할 이명박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민주화는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해 온 과정이었다.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을 포괄하는 시민사회는 국가 밖에서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영향의 정치’를 주도해 왔다. 이 영향의 정치는 특히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강화돼 왔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실시와 호주제 폐지에서 볼 수 있듯이 작지 않은 성과를 가져 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시민단체의 분화다.

그 동안 우리 시민사회의 사회운동들을 이끌어 온 진보적 시민단체들에 대응해서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시민사회의 보수적 세력들을 정치, 사회적으로 결집시켰다.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이명박 정부 아래서 어떤 활동을 벌일 것인지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이들의 등장은 시민사회의 새로운 분화로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주목할 것은 정부와 진보적 시민단체 사이의 긴장 증가다.

이는 특히 노무현 정부 아래서 빠르게 진행돼 왔는데, 집권 초반 이라크 파병에서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이르기까지 그 긴장의 정도는 갈수록 높아져 왔다. 보수적 시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시민단체가 밀월 관계를 이뤄왔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다수 진보적 시민단체의 시각에서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정부가 아니었다.

바로 이런 상황 아래서 지난 대선이 치러졌다. 그리고 곧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참이다. 이명박 정부가 시민단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추측컨대 이명박 정부는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들에게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대운하 건설을 포함해 앞으로 예상되는 국정 사안들에 대해 보수적 시민단체들로부터의 어느 정도 도움과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온 시민사회와 협치를 모색하는 ‘거버넌스’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편견일지는 몰라도, 거버넌스는 진보를 표방한 정부가 구사하는 전략이지 보수를 강조하는 정부에게 그렇게 어울리는 국정운영 방식은 아니다.

다만 이명박 정부가 이제까지 정부가 담당해 온 사회복지의 일부를 서비스제공 시민단체에게 이전하려고 할 경우 자원봉사 시민단체와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진보적 시민단체는 현재 놓인 여러 조건들이 좋지는 않지만 점차 시민단체 본래의 권력 비판의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만큼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이 논란이 되고, 공론장에 의해 이 중립성이 강조되는 사회도 드물다. 오늘날 어떤 집합적 사회행동이라 해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치를 갖기 어렵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유독 정치적 중립성이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되곤 한다.

권력비판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에게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이 중립성은 허공 속에 놓인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위치한 것, 다시 말해 단체의 정치적 지향성과 어느 정도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중립성을 둘러싼 담론에서 자신과 유사한 가치를 가진 단체에게는 우호적이고 다른 가치를 가진 단체에게는 과도한 비판을 가하는 이중 잣대 또는 정치적 의도에 있을 것이다. 권력 비판의 정당성은 중립성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시민 다수의 합리적 판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입법권력의 과반수마저 집권당에게 돌아갈 경우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견제 및 균형이 약화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갖는 기본 특징을 고려할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이점에서 시민단체의 새로운 분발이 요구된다. 어떤 권력이라 하더라도 견제되거나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력에 맞서서 합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민권력을 새롭게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2008년 시민단체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장

김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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