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애의 철학자 묵자의 평화경제

평화운동가 김승국의 ‘공동체의 평화'[3] 김승국l승인2008.01.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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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날을 지새운 중국의 전국시대에 태어난 묵자(墨子)는 ‘겸애(兼愛)’ ‘비공(非攻)’에 입각한 평화 공동체운동을 전개했던 사상가이다. 전국시대의 전쟁이 빚어낸 참상과 그 피해는 엄청나며, 이것은 곧 민생의 파탄으로 연결되었다.

묵자는 침략전쟁의 전반적인 참혹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견고한 투구, 예리한 무기를 만들어 죄 없는 나라를 공벌하러 간다. 남의 나라 변경에 침입하여 곡식을 마구 베어버리고 수목을 자르며, 성곽을 허물고, 도랑과 못을 메우고, 희생을 멋대로 잡아 죽이며, 조상의 사당을 불태워 버리며, 백성들을 찔러 죽이고 노약자를 넘어뜨리며, 나라의 보물을 강탈하면서 끝까지 나아가 극렬하게 싸운다.”(묵자 ‘비공’ 상)

이와 같은 전국시대의 전쟁은 토지와 이에 딸린 농노를 차지하기 위한 약탈 전쟁이며, 천하의 패권을 쥐기 위한 겸병(兼倂)전쟁이었다. 이로써 정전제는 무너지고 민생은 파탄되었다. 묵자는 당시의 민생 파탄을 ‘삼환(세 가지 환난)’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환난이 있으니 굶주린 자가 먹을 수 없고, 헐벗은 자가 입을 수 없고, 고달픈 자가 쉴 수 없는 것이 이것이다.”

전쟁에 의한 삼환에 더하여 민(民)에 대한 형벌이 가혹했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당시의 형벌은 얼굴에 먹물을 뜨는 묵형, 코를 베는 의형, 불알을 거세하는 궁형. 발꿈치를 자르는 월형, 목숨을 끊는 사형 등 오형이 있고, 오형의 죄목은 각각 500가지로 도합 2천500백가지 죄목이 있었다고 한다.

안자(晏子)는 이와 같은 엄형주의의 실정을 ‘구천용귀(?賤踊貴)’라는 말로 표현했다.그는 ‘온 나라의 시장에서 정상인의 온전한 신발은 값이 싸고, 죄를 지어 발꿈치를 잘린 병신들이 신는 뒤축 없는 신발이 비싸다’고 풍자했다. 형벌이 가혹한 탓에 형벌을 받은 병신이 성한 사람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전국시대와 아프가니스탄

요즈음의 국제정세로 말하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 묵자의 생존 시에 벌어진 듯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처럼 전쟁이라는 직접적 폭력이 민생파탄을 낳은데 이어 민중에 대한 가혹한 형벌(탈레반과 북부동맹의 가혹한 형벌)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의 전쟁은 계급사회의 반영물이다. 전쟁을 통해 신분사회, 부익부 빈익빈의 계급사회 체제가 강화된다. 끊임없는 전쟁의 이익을 얻은 부자의 땅은 동서남북으로 이어지지만 가난뱅이는 송곳 꽂을 땅도 없게 된다.

중국 고대에 전쟁을 주도한 지배계급은 막대한 이익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예(禮)라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신분차별 사회를 형성했다. 예기 ‘곡례(曲禮)’편에 의하면,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 등의 귀족과 대부 등 지배계급(전쟁 주도 세력)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고 예만 적용되며, 대부(大夫) 이하의 사민(四民)과 천민에게는 예가 적용되지 않고 형벌만 적용되는 신분차별사회였다. 이로써 법이 적용되지 않고 예만 적용되는 ‘인(人) 계급’과 예가 적용되지 않고 법(형벌)만 적용되는 ‘민(民) 계급’이 양분되는 계급사회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계급사회의 양대 구성원인 인과 민을 합하여 ‘인민’이라고 부른다.

왕태영 기자
지금은 사라진 평택 대추리의 평화동산.

좌전(左傳) ‘은공(隱公) 11년’에 의하면 ‘예란 민과 인을 차례지우는 것(序民人)’이다. 이는 인과 민이 분명히 다른 계급임을 말하는 것이다. 인’ 분명 귀족이나 대인 등 지배계급을 지칭하고 있다. 인이 술어로 사용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은 ‘귀족다움’ 또는 ‘군자다움’을 말한 것이 분명하다.(기세춘, 2006)

이처럼 전쟁(직접적 폭력)이 민생파탄, 가혹한 형벌(구조적 폭력)을 낳으면서 계급사회 (인과 민의 차별이 있는 사회)가 강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묵자가 고안한 평화의 담론이 ‘비공’ ‘겸애’ ‘교리(交利)’이다. 묵자는 ‘비공’ ‘겸애’ ‘교리’의 세 개의 가치가 상호관계를 가지는 평화담론을 제시함과 동시에 이러한 평화담론을 실천하는 평화공동체를 내오기 위한 반전평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평화공동체의 기반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위해 ‘절용(節用)’ ‘비락(非樂)’을 주창했다.

비공-겸애-교리의 상호관계

묵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하여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우선 전쟁은 계절적으로 여름의 더위와 추위를 피하여 봄과 가을에 빈발하므로 이것은 농사일에 커다란 장애가 되며 결국 민생의 파탄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격 당하는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공격을 하는 쪽에서 보더라도 전쟁이 빈발하면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사회의 혼란뿐만 아니라 생산활동에 중대한 타격이 되어 이른바 백성들의 세 가지 근심(三患)은 날로 커지게 된다. 둘째로 전쟁에서 비록 승리하더라도 나아갈 때의 인원과 장비는 돌아올 때의 엄청난 피해가 뒤따르므로 결코 이익이 될 수 없으며 특히 인명의 손실은 후손이 끊어져서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손실을 초래한다. 또한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침탈하는 겸병 전쟁에 대하여는 비록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그 넓은 토지는 남아돌고 이것을 경작할 노동력은 부족하게 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묵자는 ‘오늘날의 위정자가 진정 이익을 바라고 손실을 싫어한다면, 또 안정을 원하고 위험을 싫어한다면 공전(攻戰)만은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침략전쟁은 사회적 재부(財富)와 생산의 파괴를 가져오므로, 처음 의도한 손익계산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묵자의 공리적 관점에서 비롯된 ‘비공’의 논리이다.(윤무학, 1992)

사회적 손실을 가져와 ‘서로 이익(交利)’이 되지 않는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공리적 관점에서 비공론을 묵자가 전개하고 있으며, 이 비공론은 겸애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교리(상호이익)에 어긋나는 겸병 전쟁은 겸애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겸애 차원에서 비공하면 교리(사회적인 상호이익)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묵자의 중심 사상은 ‘겸애(兼愛)’이다. ‘겸’은 신분상의 등차를 두지 않는 것이고 ‘애’의 실질 내용은 ‘이(利)’를 보장해 주는 데 있다. 그것은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자기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태도와 전혀 다르다. 친소, 원근의 차 없이 남의 이익을 존중해야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함께 대할 수 있는 서로의 평등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묵자는 화란이 일게 되는 원인을 ‘불상애(不相愛)’에 있다고 본 것이다. 불상애는 차별애(差別愛)를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가 남을 이롭게 할 줄 모르고 사람에 차별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을 크게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해악 중에 가장 심한 것은 대국이 소국을 침략하고 귀족이 천민을 박대하는 일이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인인(仁人)’이 반드시 힘써야 할 일은 천하의 이(利)를 일으키고 해(害)를 물리쳐야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류 공동의 이익 증대를 가리킨 말이다. 박애나 자선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할 것이 요청된다. ‘교리(交利)’는 이익의 상호 존중이며 차별 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자리(自利)를 일단 유보하고 타리(他利)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겸애’가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남의 이익을 서로 존중하기 위하여 묵자는 또한 ‘비공’의 이론을 전개시켰다. 제후들 사이에 계속되는 겸병 전쟁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것은 대중의 이(利)를 침해하는 가장 큰 불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운구, 1991)

묵자는 전쟁으로 인한 재화의 낭비와 노동 손실을 지적하고, 전쟁비용으로 적국에게 경제 원조를 해서 적국의 인민을 도와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며 평화의 길이라고 주장했다.(기세춘, 2002)

하느님께서는 인간관계가 서로 평등하고 아우르는 사랑(겸애)의 관계임과 동시에 서로에게 이익되는 관계(교리)이기를 바라므로, 묵자는 도덕론을 관념으로 파악하지 않고 경제적인 면에서 파악하여 경험되는 현실세계로 끌어 내린다. 즉 인(仁)은 인민을 사랑하는 것이며 의(義)란 인민에게 이롭게 하는 것이다.(기세춘, 1995)

‘애(愛)’는 ‘이(利)’의 보장이고 또한 그것을 ‘의(義)’라고 하였다. 의는 민(民)이 취리(取利)하는 길이고 불의(不義)는 해인(害人)하는 길이다. 묵자는 불의를 가리켜 ‘휴인자리(虧人自利)’라 하고 이를 거척(拒斥)하였다. 그 중에 가장 큰 불의는 침략전쟁이었다.(이운구, 1991)

‘겸애’는 전체 대중의 ‘이(利)’를 보장해 주는 길이며 그것이 곧 ‘의(義)’였다. 따라서 ‘호인자리’하는 침략전쟁을 반대하였다.(이운구, 1991)

‘겸애’의 참 뜻은 대중의 이익을 최대로 보장해주는 것이며, 이를 위해 재화의 증식이 요구된다. 즉 겸애라는 평화의 강령을 실천하기 위해 대중의 이익, 재화 증식을 보장하는 평화경제가 요청되는데, 침략전쟁이 이를 가로막으므로 비공해야 한다는 말이다.

묵자서에서 ‘평화’ 이념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비공’에 대한 구체적 대안으로서 제시된 ‘겸애’라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비공’은 ‘겸애’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묵가의 겸애(차별 없는 사랑)는 교리(상호 이익의 존중)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며, 따라서 ‘겸상애, 교상리’는 묵자서 전체를 일관하는 근본관념이라 할 수 있다.(윤무학, 1992)

천하무인의 평화공동체=대동사회

‘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天下無人)’는 묵자 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전쟁과 굶주림으로 민중이 죽어가는 전국시대에 묵자는 ‘천하무인’의 기치를 내걸고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만민이 평등하고 전쟁이 없으며 생명이 안락하게 살아가는 ‘안생생(安生生) 대동사회’였다. 안생생 사회는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공유(共有), 공산(共産), 공생(共生)의 평화공동체 사회였다. 묵자는 그것을 위해 유세했고 스스로 공동체를 조직하여 생활함으로써 실천했다. 그의 모토는 겸애, 절용, 평화였다.(기세춘, 2006)

묵자의 안생생 공동체의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천하고,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으며 도둑, 노예, 과부, 고아 등 예수가 말한 이른바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들이며 ‘고난 받는 자’들이었다. 묵자에게 이들은 천하 만민이 다함께 한 가족과 같은 사회(天下無人),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安生生) 공동체의 주인공들이었으며, 예수가 새로운 세상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축복했던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안생생’은 바로 만민평등의 ‘대동사상’을 평화 경제적 측면에서 표현한 말이다.

‘묵자’의 안생생 사회론은 ‘예기’의 대동사회론과 일치한다. ‘대동사회’라는 사회구성체 논의는 ‘예기’ 예운편에 처음으로 보인다. 즉 대동사회의 대도가 쇠미했으므로 성현들이 소강(小康)사회를 열었다는 내용이다. 대동의 일반적인 뜻은 대동소이(大同小異) 대동단결(大同團結) 태평성세(太平盛世)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중에서 태평성세라는 의미의 어원은 이상사회로서의 ‘대동’이다. 이 때의 동(同)은 평(平)과 화(和)의 뜻이므로 대동사회는 평등, 평화 사회를 의미한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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