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는 어디로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유명무실하게 운영된 위원회를 없앤다는 취지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발표안을 유심히 뜯어보면 미심쩍은 게 하나씩 보인다. 규제개혁위원회, 한미FTA 국내대책위원회 등 입맛에 당기는 위원회를 제외하곤 이번 정부가 별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오히려 경계할(?) 분야 위원회들은 모두 퇴출선고를 받았다. 대선 기간 중 부패 논쟁에 시달렸던 당선자는 반부패전담기구인 국가청렴위를 통합하는가 하면, 개발성장을 경제회생의 해법으로 여기는때문인지환경과 관련이 깊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없애겠다고 한다. 수도권 규제해제가 살길이라는 당선자는 또 국가균형발전위원회까지 내칠 참이다. 특히 인권단체들은 인권 시계를 70년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검거형’ 집회 대응방침에 이어 국가인권위 대통령 직속 전환 소식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위원회 정리는 정부부처 개편보다 저항이 훨씬 덜하다. 파견공무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굳이 위원회 구조가 가진 거버넌스(민관협치)의 시대적 역할까지 강조하지 않더라고 ‘날림’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기획취재팀 |
행정.사회학계에서는 명목상 운영되는 위원회나 측근들의 자리보전에 급급한 정부 위원회가 사라지는 져야한다는데 토를 다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위원회 개편 방향을 조금이라도 꼼꼼히 뜯어보면 위원회의 설립취지와 활동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묻지마’식으로 위원회를 없애려는 흔적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지난 16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해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 처 청 등 416개 정부 산하 위원회 가운데 51%인 215개를 폐지하고 201개만 남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수의 참여정부 비판 단골 레퍼토리인 ‘위원회 공화국’을 해체하기 위해 각 위원회의 존립근거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사망선고를 내리고 있다는 평가다.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중복되고 낭비적인 위원회가 있었지만 이로 인해 위원회 전체를 묶음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위원회의 장점인 독립적인 업무수행, 합의제 취지는 의미가 있으므로 내용에 따라 계승 또는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관영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도 “국민 권익과 연관성이 높은 위원회들에 관해서는 단순한 기능 위주의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국민 득실을 고려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가 폐지, 통합계획을 졸속으로 지목하는 위원회는 국가청렴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정보공개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이다. 이들 위원회는 대부분 국제적인 권고 또는 요구에 의해 필요성이 제기되고, 반부패, 지구온난화, 정보민주화 등 새롭게 제기되는 이슈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국민적 동의하에 만들어진 위원회들이다.
우선 국가청렴위원회는 부패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01년 재정된 부패방지법을 근거로 2002년 대통령 소속 부패방지위원회로 출범한 후 2005년 현재 명칭으로 재출범한 반부패 전담 국가기구다.
청렴위 출범 당시 시민사회는 이를 독립기구로 설립하고 산하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둘 것을 요구했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행정자치부의 공직윤리업무가 청렴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반부패기능 통합 논의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위는 청렴위 업무를 국민고충처리위, 행정심판위원회 등과 통합한 국민권익위원회에 이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부패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질적인 기능을 통폐합 하는 경우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 보다 부패청산 의지와 기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영출 교수는 “청렴위 통합은 반부패와 관련해 우려스런 부분이다”며 “청렴위가 집행부처의 기능 중복을 정리했고 반부패 업무의 특성상 독립성을 가진 위원회로써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국 98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인수위 발표 전인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국가 청렴도가 OECD 국가 중 하위권인 25위인 상황에서도 연일 발생하는 부정부패가 심각한 현실”이라며 “오히려 청렴위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 폐지 계획 또한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졸속 폐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속발전위원회는 1992년 리우환경회의 권고로 2000년 설립된 기구다. 지난해 8월 제정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의 내달 시행을 앞두고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국가지속가능발전 이행계획 수립 등 페이퍼업무 뿐 아니라 장항산업단지 건설을 위한 갯벌매립계획을 둘러싼 갈등 해결 등 행정부처가 수행하기 어려운 조정역할을 수행했다.
정보공개위원회와 국가기록관리위원회 폐지계획도 정보공개 선진화 필요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정부부처 뿐 아니라 의회, 공기업 등 공공기관 정보공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보공개 뿐 아니라 보관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취재선진화 방안 논란에서 보수언론들까지 공공기관 정보공개의 문제점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정보공개법이 제정 이후 이를 장기적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위원회가 정보공개위원회다. 국가기록관리위원회는 2006년 10월 ‘기록물 관리실태에 문제가 있다’는 학계 및 시민사회의 지적을 받아들여 국회에서 개정된 기록물관리법에 명시된 위원회다.
전진한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보공개위원회와 국가기록관리위원회는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내는 핵심이자 마지막 마지노선”이라며 “오히려 이 조직은 더욱 확대,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밖에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의 병행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정부혁신분권위원회 등의 폐지도 수도권규제완화 정책의 신호탄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수위는 이렇게 유지 필요성이 높은 위원회들을 퇴출시키는 폐지기준으로 단순 자문위원회, 환경변화로 존치 이유가 없는 경우 등을 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정상호 한양대 연구교수는 “위원회는 자문위원회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자문의 내용과 실효성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계획에서는 정책집행의 효율성만 따지다보니 위원회가 맡았던 민간참여를 보완할 대책도 발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심재훈 기자
심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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